야베 초쇼 <백화> 2009년
지난 토요일, Ted Seoul 컨퍼런스의 2부가 끝난 후
부랴부랴 서둘러 인사동으로 나갔습니다. 캘리그라퍼인 이상현님과 일본의
야베 초쇼의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는데요.
캘리그라피란 그리스어의 칼로스(아름답다)와 그라프(글)의
결합어입니다. 한국에선 흔히 서예라고 불렸고, 최근엔 레터링이나 서체작업이라고
많이 불리게 되었죠. 결국 우리가 알고 있는 한글의 재해석, 해체와 재구성을
현대적으로 하는 작업하는 분들을 가리켜, 캘리그라퍼라고 부릅니다.
최근 캘리그라피는 전통적 개념의 서예의 옷을 벗고
조형예술의 범위로 확장된 형태의 시각미술로 새롭게 태어나고 있습니다.
문자를 조형하는 과정에는 이미 과거의 서도를 통한 자신의 수양의 의미도 담겨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한 자 한 자 글을 깍아 쓰는 작업은, 한획에 터럭에
자신의 생명과 스타일을 담아내는 작업이기 때문이지요.
이상현, <훈민정음 이야기> 175*170cm 2009년
"살아있는 글씨는 책을 덮은 후에야 보이더라"는
어느 시인의 말을 생각해봅니다. 흔히 책이라 불리는 이 텍스트를
하나하나 해체해보면, 바로 활자화된 형상의 글씨가 있습니다. 단순하게 블로그를
쓰면서도, 문체를 바꾸면 글의 느낌이 다릅니다. 레터링 디자이너들이 땀을 흘려가며 작업을
하는 이유겠지요. 언제나 한 줄기 흘러가는 시냇물이 되길 꿈꾸며 발묵에 들어가는
한 자의 미학, 에로틱한 여인의 속살같은 한지의 겹 속으로 스며들어가
비로소 하나가 되는 그 농밀한 세계가 아름답습니다.
그렇게 한 자 한 자 써내려간 캘리그라피는
단순하게 아름다운 글씨의 세계를 넘어, 내 안에 있는 상처를 발묵을 통해
드러내고, 응고된 채 말라버린 침묵의 벽을 뚫고 들어갑니다. 그렇게 유연하고 자유로운
선의 아름다움으로 그저 종이위의 한 영혼이 그리는 바람의 흔적은
한정된 공간에서나마 자유롭고 싶은 우리들의 바램입니다.
이상현 <정호승님의 시 「기다림」>과 <환한 웃음>
"돌을 땅에 묻고 물을 주면 싹이 돋을까 누나에게 물었더니
누나가 웃으면서 싹이 돋는다고 해서 영월 동강에서 주워온 돌맹이 하나
꽃밭에 묻고 가끔 물을 준다" 정호승의 <기다림>
정호승의 시에는 항상 슬픔과 기다림이 거대한 주제로 등장합니다.
내면의 슬픔을 견고하게 버티는 시인의 마음이 고운탓인지 그는 많은 독자를
갖고 있죠. 기다림을 통해 그는 생의 슬픔을 깊고 넓게 확장합니다.
그런 시의 여운이 캘리그라피를 만나니 더욱 힘이 실립니다.
짙은 황토빛이 가득한 캔버스는 마치 씨앗을
뿌린 대지를 상징하는 듯 하고, 그 위로 붉은기운과 검은 획이 만나
농밀한 시간의 교합을 표현하고 있지요. 그 속에서 푸른 희망의
열매가 자랄 것입니다. 작가의 글씨 속에서 그렇게
아름다운 잉태의 시간을 맞이하겠죠.
머그잔 표면위에 조형한 글씨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기계 자판으로 글을 오래 쓴 탓에
종이 위에 힘을 실어 한 자 써보려 해도 금방 손이
피곤해지는 이 도시의 망명인에겐, 혼을 담아 한자 한자 조형하는
이 캘리그라피의 세계는 마치, 구름위를 걷는 여행자의 발걸음을 닮았습니다.
초대해주신 작가 이상현 선생님과
예쁘게 도록 만드느라 고생하신 디자이너 방수정 선생님.....
멋진 카피를 준비한 천수림 기자님 수고하셨어요. 우리 모임에서 만나
알게된 선생님의 전시였습니다. 그날 함께 하지 못했지만 신지혜 아나운서도
보고 싶었답니다. 정호승의 <그리움>이란 시가 더욱 도드라지게
마음을 파고든것도 그런 이유겠지요.
세계적인 해금주자인 꽃별의 연주를
올립니다. A little light in your Heart. 아름다운 서체만큼
현의 소리가 제 마음의 작은 빛이 되어 가네요. 세상엔 어쩜 이다지도
감사의 제목이 많은 것인지......놀랍습니다. 그리고 이 부족한 사람을 아껴주는
이들이 이다지 많은지, 매일 매일 생의 예배를 올리는 마음으로
감사하며 살아가야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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