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Healing/내 영혼의 갤러리

망치위에 새긴 이야기-박주현의 특이한 조각작품

패션 큐레이터 2009. 8. 8. 23:31

 


박주현_기다림 2_도끼_35×25×15cm_2008

 

조각가 박주현의 작품을 본 것은 작년 인사동에 있는

조각 전문 갤러리에서 였습니다. 그때 망치 위에 섬세하게 새긴 조각

작품을 보고 정교하다는 생각과 더불어, 도구적 인간과 도구로서의 인간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한번 해볼수 있었다는 점에서 주목했었던 작가였지요.

오랜만에 작가에게 문자가 왔습니다. 전시를 하고 있으니

오프닝에 들러달라는 소식이었습니다.

 

 
박주현_사랑_빨래 방망이_35×15×15cm_2009

 

작가 박주현 선생님은 문명사회를

사는 인간들의 모습을 도구를 빌어, 그 중에서도 장도리를

이용해 이야기 합니다. 망치를 선호하는 이유가 뭐냐고 물었었는데

망치가 도구를 만들기 위한 도구 중 태두를 이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더군요.

 

작가는 망치의 목질부, 그러니까 지지대 부분을 섬세하게

깍아내어 도구로서의 망치가 지향해야 할 세상을 정연하게 그려냅니다.

원래 망치라는 도구를 보면, 태두인 머리 부분과 자루로 나뉘어지는데, 그는 머리 부분을

아래로 향하도록, 도구가 가진 역할적인 위계를 뒤집어, 장도리의 자루 위에

우리가 담아야 할 이야기들을 구현해냅니다.



박주현_고독_다듬이 방망이_30×15×15cm_2009

 

망치 이외에도 다듬이 방망이를 깍아

그 위에 고독하게 사유하는 인간의 모습을 조형했습니다.

도구 위에 올려진 이야기들은 마치 한편의 연극의 무대 위에서

펼쳐집니다. 다듬이 방망이의 선단부를 의자로 깍고 그 위에서 무게 중심을

겨우 잡으며 두 손을 깍지낀 채 자신의 누드를 가리는 인간의 모습.




박주현_대장장이_망치_30×15×15cm_2009

 

인간을 가리켜 도구를 사용하는 존재라고 해서

흔히 호모 파베르(Homo Faber)라는 라틴 학명을 붙였지요.

19세기 자본주의와 제국주의 시대에는 이 도구를 사용해 작업하는 인간의 속성을

인간의 주요한 모습으로 섬기며 부각시켰습니다. 인간 자체를 계몽하는

도구의 속성을 강조했고, 세상을 바꾸는 존재로서의 인간을

도구를 사용하는 인간의 모습과 동일시 했지요.

 

하지만 생산과 발전을 위해

끊임없이 도구를 개발하는 인간은 파괴와 확장도

당연시 했고, 신성한 노동은 인간성을 파괴하고 기계와 상품이

인간을 소외시키는 부조리를 빚어냈습니다. 작년 제가 읽었던 책 중에

MIT에서 공학자로 일하는 킴 비센티의 <호모 파베르의 불행한 진화>란 작품이 있습니다.

테크놀로지가 인간을 위해 어떻게 진화해야 하는지에 대해 인문학과 사회학적

상상력을 통해 새롭게 풀어가는 혜안과 시각에 놀라움을 표하고 싶었던

작품이기도 했지요. 결국 인간을 지향하는 기술이 되려면 어떤

요소들이 가미되어야 하고, 지금까지의 사고 방식 중

어떤 부분을 치유해야 하는지를 짚어주죠.



박주현_빗속으로..._장도리_30×15×15cm_2009

 

도구를 사용하는 인간을 넘어

그 도구를 통해 구현해내야 하는 세상의 논리와

아름다움을 조형하는 상상력 가득한 인간들이 살아가는 세상.

그저 삽질 이외에는 머리 속에 든 것이 없는 기계론적 세계관 속 인간으로

살아가기 보다, 도구를 통해, 인간의 이성과 감성이 어떻게 조율되고

새롭게 조형되는지를 고민하는, '인간적 요소'를 빚어내는

창조자로서의 인간이 되고 싶습니다.




주현_피아노_장도리_30×15×15cm_2009

 

이성과 감성이 조화된 인간의 도구적 사용 능력이

극대화 될때, 따스한 인간의 감촉을 잊지않는 기술자가 될때

삶은 도구가 연주하는 아름다운 선율로 세상에 가득하게 차오르겠지요.

청중을 위해 몰입하는 행복한 연주자의 피아노 연주처럼 말입니다.




박주현_人_망치_35×25×15cm_2008

 

망치의 자루부분 위에 조형된

인간의 모습을 봅니다. 마치 아크로바트 처럼

여러명이 서로의 무게를 감내하며 지향하는 세상의 탑을

지어가듯, 서로의 무게를 안아내고, 감싸고 껴안는 기술,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는 인간이 되지 못하고, 도구에 종속되고 도구를 통해 스스로 만든 세상에 소외되는

우리가 되지 않기 위해 잊지 않아야 할 것들을 생각하는 우리가 되면 좋겠습니다......

요즘같은 때는 특히 그렇네요. 개발논리가 여전히 인간과 자연의 조화와

화평을 깨뜨리며 무한삽질의 도전으로 이어지는 요즘은 특히나

더더욱......그러합니다. 도구들이 눈물흘릴까 두렵네요.

 

 러브홀릭의 노래로 듣습니다. 영화 <국가대표>의 삽입곡

Butterfly, 다가오는 한주도 멋지게 비상하는 여러분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저는 8월 말까지 정신없는 스케줄과 원고량을 소화해야 합니다. 글이 자주 올라오지 않더라도

이해해 주시고 힘내라고 격려해 주세요. 저도 다시 한번 껍질을 깨고 넘어야

할 산을 다시 한번 올라야 할 것 같습니다. 요즘 조금씩 조금씩

정상의 테두리가 흐릿하게나마 보이기 시작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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