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1 그저 최선을 다하고 있다니까요......
서울패션위크를 맞아 SETEC에 다녀왔다. 작년엔 실망감이 컸지만 그래도 '혹시나'하는 마음에 시간을 쪼개어 방문, 패션 디자이너 리차드 니콜의 패션쇼를 봤다. 횟수로 8회, 5년째 지속되고 있는 서울패션위크는 한 마디로 존재감 없는, 국민혈세의 낭비터다. 돈은 돈대로 바르고, 효과는 전무하다. 서울을 세계적인 패션도시로 키우겠다던 오세훈 시장의 헛짓은 무능한 행정능력만큼, 딱 그만큼의 수준을 드러낸다. 올해로 5년차면, 다른 국제행사처럼 어느정도 자리를 잡아야 할텐데, SETEC은 항상 텅 비어있고, 부스는 한산하며, 디자이너는 한숨을 내쉰다. 관련공무원은 '최선을 다하고 있다면서' 열심히 백열전구를 수도꼭지에 끼우며 불이 들어올 거라고 말한다.
국제적 행사로 키우겠다는 야심은 어디에 갔을까? 바이어 부스를 4시간을 지켜봤지만 텅비어있다. 비싼 비행기표와 파티를 남발하며, 해외 관련 기자와 패션 저널리스트를 불러들이는 꼬락서니는 올해도 마찬가지. 문제는 패션쇼에 와서 작품을 봐야할 그들이, 정작 쇼에는 보이지 않는다. 하긴 외국의 유명한 패션 블로거 한명을 보긴 했다. 사진 속 선글래스에 검은 터번 쓴 여자다. 말끝마다 세계적인 행사로 거듭나겠다고 해놓고선, 나 조차도 월요일날 패션 포럼이 열리는지 몰랐다. 그나마 이곳에서 자원봉사하는 독자를 통해서 표와 정보를 얻었으니 할말 다 했다. 패션 위크는 열리기 6개월 전에 이미 해외 코레스 관련 기자들과 저널리스트들에게 모든 관련 정보들이 송고되고, 참석 가능한 바이어 리스트가 확정된다. 부스를 산만하게 만들어놓고 관람 동선에 대한 기본 책자 하나 없다. 참가 업체의 기본 카탈로그도 보이질 않는다.
S#2 우리 공무원은 잘못이 없거든요.......
출품 디자이너의 작품 전체를 카탈로그화 하는 작업, 도록도 없다. 바이어들이 모든 부스를 샅샅이 뒤져 작품을 보는 줄 아나본데(그러니 도록은 필요없다고 생각하나보다) 실제로 빅 바이어가 머무는 시간은 기껏해야 하루다. 아니 세계적인 패션 위크라도 각자 스케줄이 부딛치지 않게 그나마 시간을 짜내고 짜내 충돌을 막다보니, 패션쇼장에 체류하는 시간이 매우 짧다. 그러다 보니 짧은 시간에 강력한 이미지의 힘을 보여줘야 하는 통에 디자이너들은 죽어난다. 단시간 내에 정보를 요약해서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것. 그것이 후방지원팀이 할 일이다. 이건 디자이너의 몫이 아니다. 제발 정신 좀 차리자. 서울패션위크의 홈페이지를 한번 가보라. 아직까지 디자이너 기본 정보 조차도 정리되어 있지 않다. 문화 페스티벌 부분은 '현재 만들고 있습니다'란 말이 나오고 있다. 23일이 폐막인데 참 잘하는 짓이다.
S#3 관 주도의 패션위크, 혈세먹는 하마가 되다
서울패션위크의 주관은 서울시청과 지식경제부다.수년째 지속되는 썰렁한 반응을 보고도, 현장 계약비율이 높아졌느니, 총 발주금액이 늘었느니 하며 보고서나 부풀릴것이 뻔하다. 김문수 경기도 지사가 혈세를 퍼부은 요트행사를 하고선, 그냥 바이어와 업체 간 말이 오간 걸, 계약 확정이라고 거짓말로 부풀리는 작태는 이번에도 여지없이 드러날 터. 해를 거듭할수록 볼 것 없고, 먹을 것 없는 존재감없는 이벤트로 만드는 건, 디자이너들이 아니다. 바로 행정관료와 무능한 오세훈 시장의 '디자인없는 디자인 정책' 물량으로 밀어부치면 뭐 하나 건질게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지경부다. 이들이 서울패션위크를 혈세먹는 하마로 만드는 장본인이다. 전례에도 없는 짓거리들, 그 중에서도 저널리스트들을 초대한답시고 일등석 비행기를 끊어주고 특급 호텔을 잡아주는 행태는 변하지 않았다. 그 비용으로 디자이너들 프레젠테이션이나 부스 공간 디자인에 더욱 신경썼으면 좋았을것을.
부산 국제영화제를 예로 들어보자. 첫해 나는 부산에서 미진한 준비 속 부산한 프로그래머들을 도왔다. 해를 거듭하면서 팬 아시아 지역 최고의 영화제로 명실상부 자리를 잡은 부산 국제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를 아시아의 팬덤 사이트로 만든 건, 영화를 선별하고 선보이는 방식에 있다. 컨텐츠를 인위적으로 조장하는 것이 아니라, 책임감있는 프로그래머들이 수많은 밤을 새며, 테마를 위해 특화된 영화를 고르고, 메세지를 심어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초기일수록 승부수는 기본에서 온다.
기본은 굳건한 토대위에 세워진다. 바로 국가 브랜딩의 하위적 차원과 맞물려야 한다. 서울패션위크를 갈때마다 도대체 이 행사는 누굴 위한 것인가 하는 의문점을 품는다. 즉 세분화된 관람층의 연구조차 안되어 있다. 포지셔닝은 커녕, 특성화된 단 한줄의 '존재감'이 만들어지기란 애초에 불가능하다. 결국 관이 동원된 급조된 행사가 혈세를 파먹으며 지속되는 것 이외에는 다른 설명이 어렵다. 패션 내부의 디자이너 간 알력이나, 자존심 싸움은 부차적인게 아닐까 싶다. 그랜드 컨셉을 만들면 모든게 따라온다. 동조하지 않는 디자이너는 배제하면 된다. 그가 아무리 한국 최고의 디자이너라도 마찬가지다. 초목적과 그랜드 컨셉을 설득하고, 이에 따라 디자이너들의 작업을 끌어내면 되지 않나? 그런데 이런 작업을 하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눈씻고 찾아봐도 없다. 큰 원칙이 없이 세워진 토대는 너무나 미약하다. 패션위크가 뭔가? 말 그대로 그 나라의 문화적 감성을 패션으로 녹여낸 후 상품화 하는 장이 아니던가. 해외 디자이너를 불러 패션쇼를 시키면서도 전날밤에야 예행연습을 하게 할 정도로 스케줄이 바빳던 걸까? 오늘 본 디자이너 리차드 니콜은 관객들 앞에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했다. 얼마나 속이 상했을지 안 봐도 비디오다.
기본을 지키지 않는 서울패션위크의 미래는 암울하다. 패션산업과 패션위크는 상호보완적인 체계를 구축한다. 여기에 반드시 존재하는 것이 차별화의 요소다. 런던위크에서 본 보수성과 정격미, 뉴욕패션위크에서 본 아방가르드적 성향들, 밀라노에서 본 의류 소재에 대한 천착, 우리는 과연 무엇을 가지고 있는가? 영화제가 영화상품에 대한 잠재적 관람군을 확충하는 기능을 하듯, 패션쇼와 관련 이벤트는 기존의 오트 쿠튀르에 대한 대중의 생각에 영향을 미쳐야 한다. 문화이벤트와 행사, 패션쇼, 디자이너의 통일된 작업이 일관성을 갖고 사람들에게 다가가야 한다. 미숙한 스테프(5년째 도대체가 개선의 여지가 안보인다)와 무덤덤한 기획사와 행정공무원들. 이들에게 무엇을 기대할 것인가? 디자이너를 병렬하면, 볼거리가 완성될거란 생각을 했을, 대형 기획사의 무능력에도 허탈의 박수를 보낸다, 그랜드 컨셉 없이, 장소를 채운 가당찮은 용기는 도대체 어디에서 발원한 것인지. 통조림 찍듯 조잡하게 만든 부스는 이상봉의 옷조차도, 그냥 로드샵에 걸린 상품처럼 만들었다. 냄새먹는 하마는 값도 싸고 기능도 잘 하던데, 이 혈세먹는 하마는 국민들의 자존심만 짓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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