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패션 필로소피아

여자들이 하이힐을 신는 이유는-신발의 초상展

패션 큐레이터 2009. 10. 19. 00:24

 

 

지난 토요일, 성곡미술관에서 열린 『신발의 초상전』에 다녀왔습니다. 구두의 역사에 관련된 부분이라, 특별 도슨트로 여러분과 만났습니다. 수천년 전 최초의 나무껍질 신발부터 현대의 폴리우레탄 운동화에 이르기까지, 신발을 둘러싼 이야기를 하자면 한도 끝도 없습니다.

 

 

우리가 신고 있는 신발의 형태가 언제 정착이 되었는지 왜 어떤 구두코는 뽀족하고 어떤 건 장방형이 되었는지, 별의 별 이야기가 이 구두속에 감춰져있죠. 더구나 신발의 역사는 단순하게 인간의 발을 감싸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시대별 문화의 차이와 경제적 입장, 사회적 이동성을 추구하고, 자신의 미와 정체성을 서로에게 소통하고자 했던 이들의 역사를 가장 간명하게 보여주니까요. 그림 오른편에 있는 발레슈즈는 루이 14세 시절 본격적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한 토슈즈입니다. 이때부터 극장 무용의 방식에도 큰 변화가 생기게 되요.

 

 

프랑스 로망 신발 국제 박물관의 64켤레 작품과 더불어 터키와 아프리카의 신발들, 여기에 현대미술작가들의 사진과 데생 설치작업까지, 신발의 다양한 초상을 매체를 빌어 재해석한 전시였습니다. 위의 작품은 패션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의 2007년 샤넬 컬렉션에서 선보인 작품입니다.록앤롤과 바로크를 테마로 만든 작품이죠. 시대에 대한 저항, 화려함의 극치가 만든 다양한 곡선의 형태들, 이것이 서로의 시간차를 두고 어떻게 교류하고 만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라거펠트가 디자인한 플랫폼 슈즈를 보면, 권총을 힐의 부분에 대치시켜서, 저항의 시대를 살아갔던 록앤롤 세대에 대한 오마주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2007년 샤넬 라인에서 선보였던 작품이었죠.

 

 

신발의 초상을 설명하는 전시인만큼, 구두가 가진 다양한 기호적 의미를 푸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했습니다. 우선 바로크와 록앤롤을 테마로 해서 시대에 대한 태도를 구두를 통해, 인간이 표현했는지를 보여주었고, 정치혹은 호사란 2번째 테마전시장에선 춤의 역사와 관련된 발레슈즈의 변천, 여기에 정치적 권력의 정점을 표현하기 위해 하이힐을 신었던 루이 14세의 하이힐 형태와, 여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작품들을 선보였습니다.

 

 

샤넬의 1957년 투톤 하이힐도 만나실 수 있고, 고대 이집트와 터키 사람들의 하이힐의 전형인 클로그도 보실수 있습니다.

 

 

하이힐은 원래 남자와 여자가 공히 함께 신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정작 자신이 신고 있는 신발의 종류 조차도 명확하게 알고 있지 않은 분들이 있어서, 하나씩 개념들을 집어드리며 전시 도슨트를 했습니다. 끈이 없고 발가락 부분이 막힌 여성용 구두를 지칭하는 팜프스와 영화 『사브리나』에서 오드리햅번이 유행시킨 낮은 팜프스를 의미하는 갓터슈즈, 여기에 얼핏보면 팜프스와 비슷하지만 앞부분에도 굽이 있어 많은 여성분들이 흔히 통굽이라 부르는 플랫폼 슈즈에 이르기까지, 신발의 초상만큼 용어도 다양합니다.

 

 

여성구두에서 리본과 끈이 등장하게 된 시기는 로코코였습니다. 이후 여성의 구두는 화려함과 우아함, 쉬크한 매력의 방점을 찍는 최고의 아이템이 되었죠. 여성의 힐 부분을 보면, 부풀어오른 여성의 둔부를 형상화 시킨 디자인이 눈에 들어올겁니다. 특히 빅토리아 시대에는, 버슬스타일이라고 해서 둔부가 돌출되는 드레스 스타일이 유행했죠.

 

 

오랜동안 구두를 신다, 헤어진 부분을 수선하기 위해 전문 구두공을 만나본 분들은 이런 일들을 경험하신 적이 있을 겁니다. 구두뒤축만 보고도 여러분의 성격과 발걸음, 맵시를 알아맞추는 구두공의 발언을 들을때죠. 닮고 닯은 신발의 안쪽을 들여다보면 신발 주인의 발가락이 남긴 오목한 부분과 부드럽게 파인 뒤꿈치 자국이 눈에 띕니다. 신발 밑창의 상처들로 부터 우리는 신발 주인의 몸의 자세, 걸음걸이, 그가 얼마만큼 돌아다녔는지까지 유추할 수 있죠.

 

 

항상 구두에 관련된 영어 표현들을 보면 이런 생각에 빠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Cool your heels 라고 하면 말 그대로 여러분의 하이힐을 식힌다는 뜻인데, 뒤집어 보면 힐의 온기가 식을 만큼 오랜동안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뜻이죠. 남자분들, 절대로 연인의 하이힐이 식을 정도록 오랜동안 기다리게 하시면 안될듯......

 

 

굽 형태의 발전에는 인간신체의 해부학적 지식의 확장과 연관된 역사가 녹아있습니다. 지금 여러분들이 편하게 신고 있는 살바토레 페라가모류의 신발들이, 최상의 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오랜동안 발의 형태에 조건을 부여하고 이를 형상화했는지 알아야 한다는 거죠.

 

 

맨발로 걸을때의 불편함을 덜고자 제작된 이 신발은 언제부터 여섣들에게 끊임없이 변화하며 수백켤레를 소유하고 싶은 사회적 오브제로 변화하게 되었을까요?

 

 

중국의 전족의 역사를 보면서, 고대 10세기경에 출발한 이 여성신체잔혹사의 배면에는 여성을 성적대상의 철저한 오브제로 사용하려는 남성들의 그릇된 욕망이 들어있음을 알수 있습니다. 3세가 되면 실크로 발을 감아서 더 이상 자라지 못하게 하죠. 문제는 작은 발을 에로틱하다고 느꼈다는 식의 말로는 설명이 부족하다는 겁니다. 오리처럼 뒤뚱뒤뚱 걸음걸이를 걷게 될수 밖에 없는 전족을 통해, 여성은 질 부위의 수축력을 관장하는 근육이 발달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고, 이런 면모를 오래전부터 발견해온 남자들이 여성들을 철저하게 착취 한것이죠.

 

 

여성들은 왜 하이힐을 신을까요? 건강에도 좋지 않고 발의 피로감만 드는 이 신발의 형태에는, 단순하게 건강상의 이유로 거절할 수 없는 사회적 의제를 만드는 힘이 담겨 있습니다. 위에 보시는 하이힐이 1920년대 샤넬과 더불어 구두계의 혁신을 일으켰던 로저 비비에의 스틸레토 힐입니다. 그는 이 스틸레토 힐의 원조이지요. 에바 가드너와 엘리자베스 여왕, 심지어 팝의 황제 비틀즈도 그의 열혈 고객이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로코코 시대의 수제화들이 보여준 레이스와 자수장식 화려한 구두코의 볼록선들, 다양한 미학적 요소들을 현대로 되살려 여성의 극단적 우아미의 세계를 창조해냈던 구두디자이너입니다. 예전 로코코 시대의 이상적 귀족의 모습은 '베짱이'의 모습입니다. 단 일할 필요없이 군중을

지배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존재들, 하이힐은 바로 그런 자들의 사회적 위상을 드러내는 한 형태이기도 했습니다.

 

 

오늘은 일이 있어 일요일이었지만 사무실에 나갔습니다. 퇴근길 굽이 닮은 옛 구두를 버리고 새 신발을 하나 샀는데요. 저는 퇴근하면 가볍게 구두를 닦아줍니다. 하루종일 긴장의 고삐를 풀지 않았던 끈을 다시 풀어주죠. 제가 끈이 있는 옥스포드 형태의 구두를 좋아하는 이유입니다. 그렇게 처진 하루를 깨웁니다. 시간의 흐름속엔 구두의 표면위엔 내 얼굴위 잔주름처럼, 작은 잔주름이 살포시 생겨납니다. 일과 노동, 생의 이력, 살아온 삶의 깊이에 대한 질문과 대답을 이 주름으로 대신합니다. 내일도 출근길에도 이 구두끈을 매며 하루의 긴장감을 세워야 겠지요.

 

이제 또 한주의 시작이네요......일주일동안 어떤 발자욱을 찍을지 고민하며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앞선자의 발걸음은 뒤따르는 자의 선례가 될테니까요. Following the footstep이란 표현에도 녹아있잖아요. 구두를 신고 걷는 여러분의 발걸음엔 자아의 정체성과 신념, 세상에 대한 화해의 방식, 자신의 개성이 오롯하게 녹아나는 법입니다. 발걸음을 조율하고, 동선의 리듬을 다시 한번 되살펴보는 여러분이 되시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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