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패션 필로소피아

쪽빛도시 나주에서-마음 속 푸른멍울을 풀다

패션 큐레이터 2009. 10. 20. 01:46

 

 

나주는 쪽염의 도시입니다. 흔히 인디고 블루라고 불리는

이 쪽빛은 정확하게 말하면 먼셀 색상환에서 규정하는 블루와는 다릅니다.

그만큼 각 나라의 하늘빛이 섬세한 차이가 있다는 점이겠죠.

 

저번 전남대 특강으로 내려간 길에 쪽염의 도시 나주에

들렀습니다. 제 블로그의 독자이신 그라시아님이 이곳 천연염색관에

새로 공방을 내셔서, 얼굴도 뵙고, 쪽염색 실습도 하고 싶어서 오랜동안 별렀었죠.

 

 

그라시아님이 운영하시는 공방에서 갓 빻은 커피 한잔 마시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눕니다.

 

 

사진 속 보이는 곳이 바로 나주 천연염색관입니다. 이번에 1종 박물관으로

승격되었는데요. 염색에 관련된 문화와 역사, 실증적 고증, 상품개발 등 다양한 역할을

하는 유일한 박물관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자연은 철마다 가장 적합한 채도와 순도를 가진

빛깔을 우리에게 선사합니다. 봄에는 치자로 노란색 염색을

여름에는 쪽으로 푸른빛깔을 내고, 가을에는 감염과 홍차, 양파껍질을 이용

갈색을 내죠. 그리고 겨울에는 소목과 코치닐, 락을 이용해 따스한 붉은색을 토해냅니다.

 

 

염색관 앞에 나오면 바로 널브러진 쪽밭이 보입니다.

사진 속 약간 자줏빛이 도는 것이 바로 쪽입니다. 저 빛깔을 염료로 쓰면

바로 남색에 보라색이 혼합된 오묘한 빛깔이 나오는 거죠. 우리가 흔히 인디고 블루라고

부르는 이 쪽빛은 라틴어로 인티컴이라고 했는데, 이것은 인도에서 수입된 염료라는

뜻을 갖고 있어요. 인류역사상 가장 먼저 사용된 것이 바로 이 쪽염입니다.

 

 

이것이 쪽꽃입니다. 7-8월 이삭형의 꽃이 필 무렵 잎파리를 떼어보면

초록빛 표면의 잎사귀 사이로 보랏빛 속살이 드러나죠. 그걸 끓여내서 염색하는 겁니다.

쪽은 마디풀과에 속하는 1년생 염료식물로서 인도와 중국 페르시아 지방은 이 쪽을 이용해 푸른빛깔을

냈어요. 오늘 염색을 배운 나주는 영산강을 이루는 물줄기와 바닷물이 합류했던 지리적 환경과

고온다습한 기후로 인해 쪽 재배지로 적당해 한국의 역사상 최고의 쪽 생산지였습니다.

 

 

이곳은 나주쪽염의 인간문화재인 정관채 선생님의 집입니다.

들러서 인사를 드리려고 했는데, 아쉽게 출타중이셨습니다. 높다란 대문 대신

외출중임을 표시하는 긴 봉이 인상적이지요?

 

 

그날 나주에 가서 쪽염색을 배웠습니다.

제가 워낙 푸른색을 좋아하는 데다가, 짧은 여행길이지만

내려가는 길, 마음속에 자꾸 솟아오르는 우울한 기운이며 푸른멍울을

쭉 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전통방식의 쪽염은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인도식 쪽염을 했습니다. 우선 물을 끓이면서 그날 염색할

스카프에 한쪽을 고무줄로 묶어줍니다. 그러면 발염할 때 색상차가 나는

홀치기 염색이 되죠.

 

 

우선 스카프를 한번 물에 깨끗하게 빨아줍니다.

그래서 혹시나 표면에 있을지 모를 불순물들을 제거하고요

노랑색 바구니에 있는 약품들이 오늘 해볼 쪽염색 재료들이에요.

 

 

 쪽분말에 소다회라는 잿물을 넣고
80도 온도가 되면 하이드로를 첨가해서 환원을 시키고..
그 다음이 염색.. 발색의 과정을 겪죠. 제가 한 인도쪽이라는 분말쪽염색법입니다.

 

 

쪽풀은 끓여서 하는 염색이 아니고 쪽풀을 항아리에

넣고 물을 부어서 이틀쯤 놔두면 푸르스름한 물로 변하고
이후 쪽풀을 건져내 그 물에 패각회(조개껍데기를 구워서 가루로 만든 것)를

넣어 당그레질을 하면 패각회가 색소를 머금고 가라앉는데 가라앉은 앙금만 추출합니다.
니람이라고 불리는데 쪽색소라고 보시면 되요. 니람을 온도와 잿물농도와 당그레질과 잘 맞춰주면

환원상태가 돼서 드디어 염색을 할 수 있는 쪽물이 됩니다. 지금의 설명이 전통 쪽 염색이죠.
 

 

스카프를 풍덩 이 쪽물에 넣고(쪽을 끓인 후 식히는 과정은 생략했습니다)

물을 들이기 시작합니다. 초기에는 옅은 초록빛이 난답니다. 이후에 산화와 환원을

거치며 남색으로 변화하게 되요. 놀랍죠.

 

 

자 이제 물들인 후엔 세척을 해야 합니다.

1차 2차 3차 세번을 깨끗하게 빨아내면 색상이 우리가 알고 있는

인디고 빛깔로 변화하게 되는 거죠.

 

 

홀치기염을 해서 군데 군데 색상의 미묘한 차이들이

녹아있죠. 천의 군데군데를 조금씩 접어모아 실로 단단히 묶고 그 천을

염욕에 담가 직물에 채색무늬를 만드는 수공염색법을 흔히 홀치기염이라고 합니다.

이외에도 판염이라 해서 판재를 이용해 디자인을 조각해 염색하기도 합니다. 

 

 

햇살좋은 날, 무르익어가는 논밭을 통과해 오는 시간

억새밭을 지나며 느끼는 짙은 가을 미풍이, 염직한 천의 속살을 헤매다 갑니다.

이제 마를때까지 저는 선생님과 산책길......에 나섭니다.

 

 

쪽밭을 배경으로 오늘 염색작업을 가르쳐주신

그라시안 선생님의 모습을 찍습니다. 광주에 있는동안 선생님 덕분에

짧은 1박 2일이지만 정말 행복하게 보냈네요. 저는 아직도 염색 마치고 난 후 저녁식사

시간 때 그라시아 선생님의 사부이신 분으로 부터 들었던 이야기를 잊지 못합니다.

 

염색이란 결국은 자신의 성찰에서 시작되며, 자신의 고유색을 내기 위해선

철저한 자신의 이해가 필요하다는 말씀이었죠. 덜도 말고 더도 말고, 딱 현재의 자신을

드러내는 일, 그 색이 직물에 더해질 때, 가장 아름다운 색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염색하면서, 마음속에 짙은 우울도 떨쳐버리고, 푸른 멍울을 짙은 남빛으로

녹여낸 것 같아서 행복한 하루였네요. 홍기의 1박 2일이었습니다.

 

해금주자 신날새가 연주하는 What a wonderful world 를 올립니다.

그러고보면 참 고마운 것이 한둘이 아닙니다. 이 작은 블로그 공간을 통해 익히고

경험하고 맛보았던 것들이, 많은 분들이 도움을 통해서 이루어졌죠. 세월이 갈수록 사람의

중요함을 배웁니다. 좋은 사람들 좋은 햇살과 바람, 물.....이 소중한 것들

우리 곁에 오래오래 있어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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