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패션 필로소피아

패션사진의 전설 사라문展-패션사진을 읽는 독특한 방법

패션 큐레이터 2009. 10. 16. 12:30

 

패션사진의 살아있는 신화 사라문展

 

전시회에 갔습니다. 미술과 패션, 스타일리스트등 다양한 분야의 스페셜리스트들이 목요일 늦은 7시 부터 한 시간동안 '내가 만난 사라문'이란 테마로 특별 도슨트를 했습니다. 제가 세번째 시간이었고 다음차례가 제가 존경하는 미술평론가 박영택 선생님이세요. 전시공간이 조금 좁은 편인데 40여명 되는 분이 설명을 들으시느라 불편하셨을거 같습니다. 패션매거진에 나오는 포화도 높은 모델 중심의 화려한 상업사진에 익숙한 분들이 많다보니, 몽환적이고 초현실적인 사라문의 사진이 '독특함'을 넘어 이해하기가 만만치 않다고 느끼는 분들이 많습니다. 한겨레 신문사의 이번전시를 외부에서 도우면서 저도 이 점을 많이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목요일 늦은시간 많은 분들이 신청을 하셨더라구요. 다시 한번 느낍니다만, 한국은 갤러리 폐장시간을 늘려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직장인들은 평일엔 가볼 래야 가볼 수가 없는 직무구조잖아요.

 

 

70살이 넘은 곱단한 사진가 할머니, 사라문의 160점 작품이 전시 중입니다. 패션이나 섬유미술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그녀가 함께 작업한 세계적인 반열의 패션 디자이너들이 작품을 독특한 그녀의 시선을 통해 보실수 있습니다. 이세이 미야케나, 후세인 샬라얀, 장 폴 골티에, 샤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품들이 선보입니다. 놀라운 건 독특한 개성을 가진 디자이너의 작품이 사진작가의 일관된 시선을 통해 어떻게 이미지를 재탄생시키고 있는가 하는 것이죠.

 

 

사라문은 현재 살아있는 사진작가입니다. 그녀 자신이 파리의 오트쿠튀르의 모델 생활을 9년동안 했고, 스타일리스트로도 일했습니다. 항상 사진기 앞에서만 일을 하던 그녀가 작가로 변모하면서 사진기 뒤에 서게 된거죠. 남성이 주도하던 패션사진계에서 여성작가의 섬세하고 독특한 시선이 녹아든 사진을 발표하면서 그녀는 파리의 고혹적인 매력을 가장 유려하고 몽환적으로 표현하는 작가로 인정받게 됩니다. 패션 사진은 크게 스냅과 초현실주의, 일반 패션초상화 사진으로 나뉩니다. 여러분이 알고 있는 패션사진의 개념은 대부분 세번째 패션초상화입니다. 옷의 형태와 재질, 소재감, 디자이너의 디테일적인 측면을 극대화 해서 보여주는데 초점을 맞추지요.

 

이에 반해 사라문의 사진은 목선과 드레이프라고 불리는 굵은 주름선, 모델의 손 동작, 엉덩이의 대칭성과 균형등에 초점을 맞춥니다. 옷과 모델사이의 경계를 사라지게 하는 독특하고 몽환적인 사진을 선보여요. 자신이 모델출신이어서 그랬는지, 거짓으로 36번의 오케이 사진까지 내며 결정적 순간을 포획하는 그녀의 독종같은 사진가의 면모는 잘 알려져있죠.

 

'결정적 순간'이란 사진미학을 완성한 까르티에 브레송의 다큐멘터리를 그녀가 괜히 찍은게 아니지 싶습니다. 피사체의 본질과 이를 가장 잘 표현하는 구도의 포착, 빛의 조건, 예기치 않게 등장하는 대상물이 합일을 이룰 때 사진은 완성된다고 하죠. 무한한 기다림속에 건져낸 찰나의 빛. 바로 브레송의 사진미학입니다.

 

그녀의 사진에는 사물과 인물이 불가해한 이미지로 나열됩니다. 카메라의 흐린렌즈와 동작의 흐릿함, 모델은 피사체가 되어 고정되어야 마땅하나, 끊임없이 유동적으로 움직인 탓에, 우리가 잘 아는 초점 잘 맞춘 사진은 어디에도 없죠. 변덕스럽고 몽상적인 이미지를 만드는 방식 때문에 기존의 패션사진이 갖지 못했던 또 다른 가능성, 바로 옷과 모델, 그둘을 둘러싼 정신적 아우라를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듭니다. 이번 전시회를 기획한 큐레이터의 설명처럼, 느닷없이 우울한 가을날의 오후나 예민한 현실 속에 휴식의 다락방을 찾고 싶을 때, 사라문의 사진은 패션이란 테마를 넘어, 사람과 사람의 우연한 만남이 주는 청신한 기분을 느낄수 있을겁니다. 그녀의 사진은 예전 빅토리아 시대의 화가 제임스 맥닐 휘슬러가 자주 표현했던 낮과 밤의 경계를 그린 그림을 보는 느낌을 줍니다. 개와 늑대의 시간을 표현하는 청록과 주홍, 노랑과 빨강,이 4가지색감으로 감성을 표현하죠.

 

 

이번 전시에선 다양한 디자이너의 작품들을 만날 겁니다. 샤넬의 1997년 드레스에서 부터 장 폴 골티에의 성도착증을 표현한 의상까지, 사라문의 스펙트럼속에 녹아있습니다. 저는 이번 전시를 보면서, 사라문과 이세이 미야케라는 일본 디자이너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해봤고, 이를 설명드렸습니다. 두 사람의 작업은 매체는 다르겠지만 사뭇 닮아있습니다. 이세이 미야케의 패션 작업은 상당히 철학적입니다.

 

파리로 진출한 일본의 거장 디자이너들이 한결 같습니다만, 이번에 소개된 이세이 미야케와 콤 므 데 가르송의 작업은 유독 사라문의 사진 속에서 더욱 빛을 발합니다. 이세이 미야케는 어떤 점에서 보면 디자이너라기 보단 예술가에 가깝습니다.

 

그는 항상 화가가 캔버스에서 자신의 사유를 시작하듯, 한장의 천을 패션영감의 시작으로 봤습니다. 옷도 건축처럼 3차원의 신체를 가진 인간을 위해 만드는 것이죠. 두 영역 모두 공간에 대한 점유를 표현합니다. 집이 인간이 거주하는 공간을 만든다면, 옷은 외부를 향해 활동하는 인간을 감싸는 보호공간과 미적 공간을 만들어내죠.

 

저는 향수를 자주 사용하기 때문에 다양한 브랜드를 사용하는데요. 겐조를 예전에 썼다가 최근에는 Scent by Issey Miyake를 써봤어요. 흔히 향수의 발향과정을 이야기 할때, 노트란 단위를 사용하거든요. 시간의 흐름에 따른 향의 변화라고 보시면 좋아요. 패션이나 사진이나 건축이나 어떤 점에서 보면 이 향수가 몸에 익어가며 발산하는 향과 다를바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탑 노트는 히야신스와 겔버넘의 향이 났고, 중간노트에서는 버베나와 자스민의 향이 어울리죠. 마지막 잔향에는 결국 꽃잎이 여린 속살을 열어젖히기 직전, 촉촉하게 대지속에 뿌리내린 그 짙은 향을 발산합니다. 사라문이 찍은 이세이 미야케의 작품은 마치 향수를 뿌리고 한번의 쇼핑을 마친 후 내 몸에 완전히 붙어버린 향을 맡는 느낌입니다.

 

이세이 미야케도 사라문의 사진을 좋아해서 그녀의 작품을 컬렉팅한데다, "나는 옷을 만들때 절반만 만든다, 나머지는 내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이 완성한다"는 그의 말을 가장 정확하게 사진으로 표현합니다. 패션은 옷과 모델, 그 둘을 둘러싼 빛과 공기, 아우라의 결합을 통해 최종의 미를 선보이니까요.

 

 

이번 전시 작품 중 마음에 들었던 디자이너 후세인 샬라얀의 작품을 찍은 사라문의 사진입니다. 청록빛 펠트 드레스를 입은 모델은 마치 인상주의 화가 드가가 그린 밤의 무도회에 나온 청색의 무녀들을 연상시키죠. 드가는 당시 1800년대 말, 인상주의의 발흥이라는 시대적 변화 속에 명멸하는 파리의 밤 문화를 자주 그렸죠. 화려하지만 고독한 도시, 파리는 한벌의 고독한 이브닝 드레스처럼 여인들의 몸을 감쌉니다. 인상주의 시대, 그림 속 여인들의 패션이 화려하다고 하지만, 정작 그 내면의 속살을 들여다보면, 갖가지 매춘과 원나잇 스탠드가 판치던 도덕불감증의 시대, 바로 제국주의와 산업자본주의가 잉태한 소비주의 시대의 1세대를 살던 사람들입니다.

 

백화점과 오픈샵이 들어서고 갖가지 패션 아케이드가 만들어졌죠. 이 당시 사진의 발명과 재봉틀의 발명, 인공염색기술의 발달로 패션은 무한증식이 이루어집니다. 파리의 밤, 청색과 녹색이 교묘하게 어울리는 고독의 도시, 파리의 정조가 사라문의 사진 속에는 아스라히 녹아 있습니다.

 

푸르스름한 섬광들이 그녀가 찍은 사진 속에서 보는이들의 눈동자에 박힐 때쯤, 저는 다시 한번 후세인 샬라얀의 옷으로 돌아갑니다.

 

후세인 샬라얀은 졸업 작품으로 땅에 묻어 두었다가 다시 파내 옷감을 분해시킨 실크 드레스를 선보여 일대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이후 20여회 이상 의상 컬렉션을 발표했으며, (1999년과 2000년) 두 차례에 걸쳐 ‘올해의 영국 디자이너’ 상을 수상했죠. 그의 시선은 항상 패션과 다른 시각미술과의 접점을 통해 확장되어왔습니다.

 

후세인 샬라얀이 디자인한 펠트 드레스가 어쩜이리도 인상주의 시절, 무희들이 입었던 튀튀치마와 어울리는지, 포화도 높은 인공조명으로는 오히려 만들어낼 수 없는 독특하고 영묘한 화면 전체의 정조에 눈길이 갑니다.

 

이제 마지막 작품입니다. 작품 제목은 모건, 바로 엑스칼리버의 주인, 전설 속 영웅 아더왕 이야기에 나오는 악한 마법사 모건의 모습입니다. 파리의 옛 길 위에, 배경막을 쳤습니다. 배경막을 자세히보니, 숲길이 나와 있는데, 이제 막 그곳을 통과한 듯한 소녀가 보이지요. 시간이 지날수록 어려지는 마법사 멀린처럼, 아더왕의 배다른 동생 마법사 모건의 어린시절 모습입니다. 그녀가 입고 있는 격자무늬의 체크는 영국의 스코틀랜드가 시조로 되어 있지만, 사실은 켈트족의 산물이었죠. 아더왕의 이야기도 사실은 켈트족의 이야기였던 것 처럼 말입니다.

 

 

이렇게 옷 한벌에 담긴 사연을 찾다보면, 의외로 우연하게 만난 한장의 사진이 선연하게 드러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있나보죠. 우연하게 전시장에서 사람들을 만납니다만, 저는 이 우연히 항상 그림을 통한 필연으로 연결되길 소망합니다. 이번 전시회 큰 제목도 우연입니다. Coincidences 우연들이라고 해야 좋을까요? 전시 특별 도슨트를 시작하면서 시인 유하의 글을 읽어줬습니다.

 

"꽃피는 소리, 민들레의 음표들, 브라스밴드 행렬로, 나무를 타고 오르는 나팔꽃,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바람의 종달새울음, 그리고 내 수만의 몸들을 빠져나와 달려가는 영혼의 바람소리, 그대가 받은 이 생도 아주 우연한 음악"

 

저는 시인 유하의 마지막 표현이 너무 좋더군요. 우리의 생이 아주 우연한 음악과 같다는 말이죠. 사라문의 사진도 정말 우연하게 만나게 된 풍경이 많답니다. 시를 읊어드렸을때 떠오르는 이미지를 갖고 사진을 보시면 좋을듯 합니다. 도슨트를 하면서, 특강이나 다양한 포럼에서, 패션과 미술, 디자인의 만남을 이야기할 때마다, 우리의 이 우연한 만남이 언젠가는 꼭 행복한 필연이 되어 돌아오리라 저는 생각합니다. 부족한 도슨트 설명 들으시느라 애쓰신 분들께 그저 고맙구요.

 

오늘 글은 여기서 마무리 할께요.

 

뱀발......*

사라문이 성이 문씨냐면서 한국분이냐고 묻는 분이 있었습니다. 절대로 아니니까 오해하지 말아주세요. 그리고 사라문은 요정 세일러문의 언니가 아니랍니다. 농담같지만 자꾸 물어보시는 분들이 있어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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