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패션 필로소피아

패션일러스트의 역사-과연 살아남을 수 있는가?

패션 큐레이터 2009. 10. 11. 02:19

 

 

김영진_유행과 형식_종이에 수채, 콩테_108×78cm_2008

한국에서 패션일러스트레이터로 산다는 것은

어떤것일까? 우선 일거리가 너무나도 없고 밥을 굶기가

가장 좋은 분야 중 하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진과 동영상에

찌들린 패션업계가 새롭게 미적 탈출구를 만들기 위해

최근 새롭게 눈을 돌리고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오늘 소개하는 작가는 김영진이란 패션 일러스트레이터다

패션삽화란 장르를 빌려 작업하면서 동시에 그의 작업은 장르의 경계에

서 있다. 섬세한 패션의 디테일과 소재의 표현을 충실히 재현하는

스타일화가 아닌 '회화적 요소'가 극대화 되는 패션 일러스트

그의 작품엔 표현주의적 기법이 강력하게 배어나온다.

 

 

한스 홀바인 <왼쪽으로 돌아선 여인> 29.1 × 19.7 cm, 펜과 잉크, 바젤 미술관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의 역사는 500여년이 넘는다

흔히 복식사에서 규정하는 패션일러스트의 역사보다, 서양미술사를

원용해 연구할 경우, 더욱 오래다. 그러나 기록에 남아있는 작품들을 통해 살펴보면

우선 16세기 초 한스홀바인의 '의복연구'를 위한 스케치 등을 그 원조로 삼는다.

이것은 화가의 초상화 작업을 위한 의상연구의 성격을 갖는 것이므로

면밀하게 말하면 오늘날의 개성넘치는 패션일러스트는 아니다.

오히려 컬러나 소재, 주름처리 등을 펜을 통해 섬세하게

재현한 것을 보면 오늘날의 스타일화에 가깝다.

 

 

패션일러스트레이션의 신화가 완성된 것은 근대다

1892년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귀족가문에서 태어난 에르테는 아르데코

시대의 패션을 일러스트를 통해 열었다. 양식화된 이미지, 물 흐르듯 유연한

인체의 이미지, 이를 따스하게 감싸는 화려한 직물과 모피, 수많은 구슬

진주장식, 환상적으로 올려진 머리 장식등, 그는 일러스트를

통해 아예 새로운 시대의 패션을 그려버린 천재다.

 

김영진_2008 s/s ANNA SUI_캔버스에 수채, 콩테_72×61cm_2007

옷이라는 하나의 실체가 존재하면서

인간은 끊임없이 옷에 대한 생각과 이미지를 실제 의상과

연관지어 해석하고 투영해야 할 필요가 생겼다.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은

의복의 디자인을 재현하는 것 뿐만 아니라, 예술의 형태로도 존재해왔다. 사실 아르데코

시대의 많은 패션은 르네 그루오나 폴 아이리브와 같은 불세출의 삽화가들이

없었다면 그 특징적 매력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김영진_오렌지색 원피스를 입은 여인_종이에 과슈, 아크릴채색_78×58cm_2008

패션일러스트레이션은 어떤 관점에서 보면

손을 통해 보여주는 재현의 럭셔리다. 손의 현존을 통해

옷을 표현하고 재단하고 만들어온 인간의 욕망을 가장 정확하게

보여주는 기술이기도 하다. 17세기 패션매거진이 역사 상 처음으로 만들어지며

그 이후로 쭈욱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은 승승장구의 역사를 걸었다.

 

인상주의 유파의 많은 화가들이 회화 작업

이외에도 패션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했다는 사실을 아는 이가

많지 않다. 1930년대에 이르러 패션 매거진 <보그>는 이전의 일러스트

표지를 사진으로 대체했다. 패션일러스트레이션의 역사를 연구하고 있는 레어드

보렐리는 일러스트를 가리며 패션의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하던 거대한 역할에서 이제는 

자그마한 역할을 맏는 천덕꾸러기가 되어 버렸다고 주장한다.  

 

 

김영진_2007 s/s Christian Lacroix_종이에 아크릴채색_78×58cm_2008

레어드 보렐리는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을 가리켜

일종의 산문시에 비유한다. 사진은 여기에 비하면 자주 짧은 하이쿠다.

문제는 패션에는 항상 스토리텔링이 있어야 하는데, 이런 점에서 사진 보다 일러스트가

훨씬 더 강력한 매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점이다. 허구적 내러티브, 이야기가

인간의 사인화된 매력, 개성을 통해 드러나기 쉽기 때문이다.

 

사진보다 더욱 강력하게 개인의 비전과 시각을 통해

필터링됨으로써 현대 패션이 가진 상상력과 일대일의 개성을 더욱

강력하게 드러낼 수 있다.

 

  김영진_디올을 입은 여인_종이에 과슈, 아크릴채색_78×58cm_2008

한국에서 패션일러스트란 장르가 어떤 대접을 받고 있는지

그걸 숫자로 표현하면 할수록 기가 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

미궁의, 그러나 막막한 경제적 현실을 안고 살아야 하는 이 장르를 포기하지 않는

아티스트들이 있다. 바로 김영진의 일러스트에는 힘차게 스쳐지나가는 붓의 속도감이 있다.

과감한 붓터치의 흔적은 거칠고도 강력하며, 감각적이고 회화적인 속성을 포함시켜

사유하려는 작가의 정신이 배어나온다. 오랜동안 고민하된 붓을 잡으면

일필휘지에 끝내려는 일종의 작업 스타일이 만든 회화인 셈이다.

 

김영진_샤샤, sasah_종이에 과슈, 아크릴채색_78×58cm_2008

그런 의미에서 볼때 김영진의 작업은

패션을 오브제로 그리는 일반 화가의 터치와 닮았다.

결국 그의 작업을 일러스트로 봐야 할지, 혹은 서양회화의 확장으로

봐야할지의 문제가 발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패션잡지의 이미지를 오려

또 다른 리터칭 작업을 함으로서, 사진이미지를 통해 전달할 수 없는

개인적 시선의 무늬를 각인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이 있다.

 

김영진_검은 원피스를 입은 여인_종이에 과슈, 아크릴채색_78×58cm_2008

패션은 항상 참신함을 추구한다.

과거에서 부터 신체부위의 변화, 즉 부각시켜야 할

혹은 에로틱한 대상으로 선보여야 할 신체의 일면들을 세월에 따라

전략적으로 배분하고 나눔으로써, 성감대의 존을 만들어낸 역사다. 현대패션은

이제 더 이상 그런 짓을 하지 않지만, 그만큼 스토리의 부재에 시달린다.

사진이란 즉물적 이미지 대신 허구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회화로의 복귀가 필요한 시점이다.

 

일러스트레이터들이여.....힘을 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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