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패션 필로소피아

더할나위없이 좋은 디자인-광주 디자인 비엔날레 리뷰

패션 큐레이터 2009. 10. 10. 14:04

 

 

광주 디자인 비엔날레에 다녀왔습니다.

전남대학교 특강이 2시 부터여서 아침부터 서둘러 가까운

비엔날레 전시관에 들렀지요. 파라솔들이 보이길래 뭔가 찾아보니

디자인 비엔날레를 축제 속 중앙광장으로 표현하기 위해 '와글와글 노래장'

의 컨셉을 빌려서 만들었다고 하네요.

 

 

입구를 통해 들어가는 길입니다.

수많은 비엔날레와 아트페어를 다녔습니다만

개인적으로 패션과 디자인, 건축과 같은 테마를 함께 전시하는

공간을 좋아합니다. 이 세가지가 어떻게 어우러지는지, 어떤 방식으로 전시하고

있는지 살펴보다 보면, 지금 이 시대의 디자인 담론의 수준을 가늠하기

손쉽기도 하고, 한눈에 조망할 수 있기 때문이죠.

 

 

집에 관한 상상력들을 보여주는 곳입니다. 이번

디자인 비엔날레의 테마는 '더할나위 없는'입니다. 부제가 CLUE 네요.

다시 말해 더할나위없이 멋진 또 다른 세상을 풀어가는 실마리, 그 단서로서의 디자인의

개념을 정리해가는 전시인 셈입니다. 이번 집에 대한 디자인 상상력 코너에선

한국 건축조형의 백미라 불리는소쇄원을 테마로 집의 생각을 펼칩니다.

 

 

집은 인간에게 안식과 휴식을 주는 공간입니다.

삶을 담는 그릇이지요. 이 그릇 속에선 인간의 다양한 활동들이

펼쳐집니다. 이 소쇄원이란 공간을 풀어내고 해체하는 과정도 이런 관점에서

이루어집니다. 나아가 새로운 생각들을 덧붙여보는 작업이 들어가죠.

 

 

소쇄원은 단단하고 연약한 것, 유동적이면서도 정돈된 미,

정확하고도 우연한 미의 결합체입니다. 인공낙원을 꿈꾸었던 인간의

욕망이 결집된 곳. 스승이었던 조광조의 '이성적 사유'로 완전하게 될 세상의 꿈이

무너지자, 제자였던 양산보는 작은 강산의 서늘하고 깨끗한 물가에 이 소쇄원이란 낙원을

차렸습니다. 인간의 움직임에 따라 시선과 빛깔이 변하는 곳,"풍경을 구성하는 요소들은 사물로서의

완강함을 버리고 존재의 껍질로부터 풀려난다"는 김훈의 글이 떠오릅니다.

 

 

그런 소쇄원의 모습을 형상화하고 싶었던걸까요?

다른 전시관으로 연결되는 통로 위엔 대나무로 만든 퍼포먼스장이

있더군요. 그 위에서 끊임없이 유동적인 육체의 움직임을 보여주는 공연자가 있습니다.

 

 

이제 집을 넘어 한글로 갑니다.

글자는 내용의 반영이자 상징이며 또한 문화입니다.

어제 10월 9일 한글날을 맞아 새롭게 광화문 광장에 선 보인 세종대왕

동상을 대서특필하느라 언론은 정신이 없네요.

 

 

이번 디자인 비엔날레에선

훈민정음 해례본 내용 전체를 누구나 쉽게 볼수 있도록

33장 66면을 펼쳐놓았습니다. 천지인의 원리가 기하급수적으로 팽창하는

저 무궁한 한글의 원리를 우리 스스로 잊고 산건 아닐지요?

 

한글은 특히 형태와 의미와 소리의 체계를

하나로 '어울림'을 통해 그 철학의 바다를 구성합니다.

 

 

예향의 도시, 가야금 산조와 판소리의 고장

이곳을 지켜온 전통예인 97명의 악기를 하늘에 매달았습니다.

큐레이터의 말을 들어보니, 저들의 악기가 하늘의 별이 되어 땅을 비추는

형세를 표현하고 싶었다고 하네요. 가야금 산조의 시조인 김창조, 그의 손녀 김죽파

그리고 현대 가야금의 명인 황병규 선생님의 가야금을 한곳에 모아 언론의

스폿라이트를 받았습니다. 처음엔 의아하게 생각했습니다.

 

"소리는 디자인이다"라고 한다면 여러분의 머리속엔 어떤 생각이 떠오릅니까? 이번 디자인 비엔날레를 보면서 처음엔 '이게 여기 왜 있어'라고 물었던 코너가 바로 이 '음'의 방이었습니다.

 

아날로그와 디지털 음악, 게임음악, 영화음악, 악기의 방에 이르기까지, 언뜻보면 디자인의 철학과 굳이 연계될 수 있는 측면이 어떤 것이길래, 굳이 이 방이 있는 것인가 의문이 들었습니다. 적어도 가야금의 소리를 들을 때까지는 말이지요.

 

산조란 즉 '흩어지는 가락'이란 뜻입니다. 그 가락은 시나위에서 발전된 것으로 전라도의 남서부지역에서 전통적인 샤머니즘 의식을 치를 때 연주되는 즉흥곡의 한 형태입니다. 가야금으로 산조가락을 옮긴 남도무악의 하나로 특별한 규칙이 없이 소곡을 연이은 것으로 격정이나 정경등을, 마치 희로애락을 말하듯 왼손 농현의 기교로써 나타내죠. 김죽파 선생의 산조를 가리켜, 그 맛을 이르기를 오랜동안 끓여낸 곰탕같은 맛이랍니다. 사실 국악에 깊은 이해가 없는 저로서는 이런 이해가 피상적인걸 잘 압니다.

 

김죽파 선생님의 가야금을 전시해놓은 공간입니다.

한국의 남도에서는 노래를 '소리'라고 했습니다. 인생의 희노애락을

소리를 통해 해소하고 풀었습니다. 북이 들어가고 가야금이 들어가면서 산조가

태어납니다. 굿판의 시나위에서 태어나 판소리의 장단과 조를 바탕으로 키워낸 우리의 음악입니다.

각자의 유파를 만들며 지금까지 이어오는 이 산조에는 문화적 혼종성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역동적이고도 섬세함 우리의 힘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오른편 아래의 가야금이 바로 황병기 선생님의 가야금이구요.

전시장을 거니는 그 순간에도 소리는 내 주변에 편만합니다. 여기 저기

공간 속, 삶에는 소리가 펼쳐져있죠. 이 소리들은 각자의 영역과 빛깔을 규정하면서

'어울림'의 미학을 만들지만, 결코 자신을 그 중심과 통일체로 부터 고립시키지 않습니다.

 

소리는 흩어짐으로서, 공기속의 입자들과 어울리며

결합함으로써 하나의 파동을 만들고, 그 파동은 우리의 귀에 전달됩니다.

그때 이 파동은 일종의 무늬를 만들게 되죠. 그것이 음의 실체입니다. 결국 어울림이

없는 음은 없는 것입니다. 시대의 풍경을 읽어내는 다양한 거울 중에서 이 음을

중요하게 여긴 선조의 지혜를 이제서야 조금은 이해할 것 같습니다.

 

 

이제부터 옷에 대한 디자인의 사유가 펼쳐집니다.

이 부분은 따로 제가 작성할 예정이라 가볍게 넘어가겠습니다.

 

 

디자이너의 스튜디오, 경계를 넘어서

저고리의 재해석, 인형의 옷과 같은 소 테마를 잡아

옷 디자인에 대한 생각을 펼칩니다.

 

 

종이접기 기술을 이용해 만든 의상이라네요.

오리가미 기술을 통해, 한장의 천을 가지고 사유한 흔적이 보입니다.

 

 

이제는 음식편입니다. 음식만큼 어울림의 미학을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는 우리의 매체도 없습니다. 다양한 자연의

산물이 하나로 응집되어서, 혼합된 맛을 표출하니까요.

 

 

음식의 무국적 시대를 살아가면서

유독 한국적인 정서를 지키고 싶은 영역이 바로

이 음식코너입니다. 중국산 나물과 채소, 과일이 우리의 식탁을

지배하는 요즘, 먹고 산다는 말처럼 혼란스런 표현도 없지 싶네요.

 

 

오방색이로 표현되는 이 땅의 식재료의 빛깔들을 하나하나

곱단하게 모아 전시했습니다. 플래쉬를 터트릴수 없어서 그 색감을

담지 못한 것이 아쉽네요. 사진 위의 고추빛깔이 참 좋았는데 아쉽습니다.

 

 

우리의 문화와 그 원형을 디자인과 결합할 때

얼마나 다양한 경우의 수가 나올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전시였습니다. 물론 고쳐야 할점, 한번쯤 시도해보면 좋았을 것을......이란 아쉬움

은 어느 전시를 가도 남습니다. 어울림에 대한 몇 가지 생각을 다시 확인한

것으로도 이번 비엔날레 전시를 본 값은 충분한 듯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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