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패션 필로소피아

모피, 자전거를 만나다-1500만원짜리 꿈의 자전거

패션 큐레이터 2009. 9. 28. 19:01

 

 

펜디와 수제 자전거로 유명한 이탈리아의 아비치사의 디자인 콜레보레이션 작업을 보고 왔습니다.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옥상에 있는 하늘정원의 한켠에 놓여진 꿈의 자전거를 봤지요. 1500만원 한다는 협업의 결과물을 보고, 안타깝게도 실망감이 크게 도는 건 무슨 이유일까요? 상품기획에서 가장 안타까운 사례가 돈은 돈대로, PR 및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비용은 쓰고도 호응을 얻지 못하는 경우일 겁니다. 이번 자전거 콜레보레이션 작업이 딱 그꼴입니다.

 

 

펜디의 셀레리아 브랜드와 이탈리아 핸드 메이드 자전거 아비치의 협업을 소개합니다. 추가 부속물이 없이 심플하면서도 레트로한 스타일과 첨단 소재를 결합시켜 만든 아비치 자전거는 콜렉터들에게, 고가의 자전거 팬들에게 인기가 많습니다. 사진 속 자전거가 아비치 사의 아만테 모델을 통해 펜디의 모피작업/패션 액세서리 작업과 함께 일궈낸 협업작품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저는 이 작품이 별로더군요. 심플함을 무기로 하는 수제 자전거에 모피가 들어가니 기본적으로 제품 전체에서 느껴왔던 이미지의 통일성이 깨어지는 느낌입니다. 1500만원하면 뭐 합니까? 로만가죽과 쥬커 나일론 소재로 만들어 흙탕물이 튀는 걸 막아주는 뒷바퀴 커버도 저로선 답답하게 느껴지더군요.

 

보온물병에서 GPS, 가죽으로 만든 핸들과 브레이크 커버는 정교함이 뛰어납니다. 단 레트로란 기존의 느낌이 너무 바뀌는 듯 해서 저는 불편합니다. 펜디의 모피기술이 최상급인건 알지만 이걸 그냥 자전거에 엊는 수준으로는 제대로 된 명품의 느낌이 나지 않더라는 것이죠.

 

 

GPS랑 앞에 미니 트렁크 내부도 봤는데 가방은 매우 튼튼하게 설계되어 있습니다만, 이 비싼 트렁크를 자전거 앞에 달고 과연 달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장식용인지 실제 타고 달리기 위한 것인지, 제품의 위상자체가 조금 엇갈린다고 할까요? 심플함의 대명사 아비치와 스타일리시한 모피의 펜디의 결합이 썩 궁합이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 드는 건 이때부터였습니다.

 

 

가죽으로 만든 핸들 부분의 스티치 작업을 보세요. 얼마나 손으로 꼼꼼하게 만들었는지 아실 수 있을거에요. 

 

 

이건 가젤의 모피로 만든 가방입니다. 이걸 안장처럼 뒤에 얹고 달리도록 되어 있더군요. 아비치 사의 자전거 라인을 찾아보니 실제 가격은 1300유로 정도 하는데 여기에 펜디의 소품과 모피를 얻으니 1500만원이 되는 모양입니다. 실제 거품 가격은 펜디의 모피 가격이 되겠군요. 사실 거품이라 했지만 펜디의 모피기술은 세계 최고라고 자부합니다.

  

 

함께 놓여있는 핸드백과 가방은 셀러리아 브랜드의 제품들이고요. 함께 있는 모피 또한 그렇습니다. 다들 수제로 만든 것이지요. 셀러리아는 원래 말안장을 만드는 워크샵을 뜻하는데요. 그만큼 가죽과 모피의 처리 전 과정이 철저하게 수제로 이루어지고, 장인의식이 세련되게 각인되어 있는 상품들입니다. 스티치 하나하나 박음질의 양상을 보시면 바로 알수 있을거에요.

 

 

오일을 먹여서 무두질한 가죽끈으로 일일이 정성스레 꿰매었군요.

 

 

박음질의 양상이 아주 균일하고 촘촘하게 배열되어 있네요.

 

 

위의 상품은 이번 펜디셀러리아에서 나온 겨울용 모피입니다. 여행용 모피라 가볍습니다. 예전 모피하면 부피가 크고 긴 느낌의 디자인들이 주를 이뤘는데 이 당시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가 펜디사에 수석 디자이너로 들어오면서 모피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을 바꾸게 되죠. 물론 여행용 모피는 르네상스 시대 메디치 가문의 여성들의 복식에서도 찾을 수 있답니다.


 

펜디를 통해서 '스타일로 입는 모피'란 개념이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펜디는 모피를 디자인적 관점에서 풀어나갑니다. 상감박기(inlaying), 광택내기(vanishing), 꿰매기(stitching), 재단(shearing) 등의 기술을 통해 무거웠던 모피의 무게를 덜어냈죠. 그중 러시안 검은 담비 모피(Russian sable)는 일반 모피 무게의 1/5밖에 되지 않는 ‘가벼운 모피’ 였는데 이걸 주로 사용해 가벼운 모피제품을 만들었거든요.

 

이탈리아는 역사적으로 피혁산업의 최전선에 있는 나라였습니다. 특히 로마산 가죽은 최상급으로 유럽궁정에서도 이걸 소재로 옷을 만들었죠. 로마의 피혁길드는 가장 강력한 조직이기도 했습니다. 원래 피혁의 우수성은 내구성으로 결정되는데요. 이 내구성이란 것이 모피가 달린 동물의 표피인 펠트(pelt)로 옷을 만들었을 때 이 펠트에서 털이 빠져나오는 정도를 말하거든요. 이 중에서도 가장 높은 퀄리티의 로만가죽의 40퍼센트만 선별해서 손질하는 겁니다.

 

 

전통적인 로마식 기법인 타질리오 비보(taglio vivo)는 고대부터 이어져 내려온 방식으로 가죽이 접히지 않게 하기 위해 두 조각의 가죽을 겹쳐놓고 커팅 하는 것인데요, 여기에 기름을 먹인 실을 사용한 박음질이 더해져 펜디의 셀러리아가 완성됩니다. 철저한 장인의식과 풍성한 로마문화의 예술적 감성이 덧붙여진 것이죠. 개인적으로 이번 콜레보레이션은 와닿질 않네요. 협업이라는 것이 무조건 상이한 브랜드가 자신만의 장점을 살려서 제품을 만들기만 하면 되는 것은 아니잖아요. 적어도 제품의 종류와 그것의 감성적인 매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어떤 각자의 인터페이스를 사용해야 하는지도 중요할테니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자전거보다 가벼워 보이는 펜디의 모피가 눈에 들어 세부적으로 컷을 찍어봤습니다. 명품인지 아닌지를 살펴볼때, 꼭 유념해야 할 것이 바로 안감과 스티치 부분, 이음새를 어떻게 구조적으로 처리 했는지를 살펴보는 것인데요. 모피작업에 들어간 손작업의 정교함은 놀랍습니다.

 

 

펜디의 매력은, 적어도 셀러리아 브랜드의 매력은 수제가 주는 장인의식의 발현입니다. 이러한 장인의식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이탈리아 가죽 산업의 역사 속에 영글었던 것이죠. 명품의 의미는 바로 이 역사에 대한 화폐적 환원이라고 생각합니다. 르네상스시절부터 가죽과 모피로 이름을 날린 피렌체를 비롯 이탈리아의 수제 공방들을 본 적이 있는데요. 지금도 할아버지 같은 분들이 꼼꼼하게 작업하고 계시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콜레보레이션은 그 효과가 미미해 보입니다. 협업만이 답이 아니라, 어떤 제품을 협업하고, 어떤 방식으로 서로의 장점을 끌어안을 수 있는지 서로의 역사성을 어떻게 만나게 할 것인지 등등을 고민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네요. 좋은 평을 못써드려서 펜디 매니저에겐 미안합니다만, 저는 어찌되었건 펜디의 모피작업에 대해서는 박수를 아끼지 않으니까요. 이럼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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