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오후 늦게 삼청동에 다녀왔습니다.
이화여대 대학원 의류학과 전통복식연구실 분들이 작품전을
열었더군요. 처음에 제목에 끌려서 갔습니다. <열림과 닫힘> 옷의 구조적
특성인 열림과 닫힘의 원리를 전통복식 속에서 찾아보자는
취지였던 것 같습니다.
2층에서는 박사과정 학생의 특별전이 있었구요.
전통문양을 프린트기법으로 처리해서 실루엣 위에 표현해냈습니다.
아주 단순한 접근 방법이라고 할수 있겠지요. 매우 단순한 상상력에 근거한 작품들입니다.
기대를 많이 하고 가서 그런지 (이 전시가 있다는 걸 한국의류학회 사이트에서
봤었거든요) 실망도 큽니다. 그냥 작품 전시회라기 보다는 이력서에 한줄 올려놓는 목표로
만든 전시라는 느낌이 가득한 것이죠.
복식을 전시하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이야기가 필요합니다.
스토리텔링이 없는 단순 고증작업, 전통복식연구의 한 부분으로 굳혀 보기엔
조금 지칩니다. 이 땅의 복식사 연구의 일천한 면모가 드러나는 지점이기도 하죠. 어느 지방
누구의 출토복식을 고증해보았다......뭐 이런 건데, 이런 설명을 읽을 때마다 맥락없이
이미지 고증에만 치우친 느낌이 없지 않아 아쉽습니다. 물론 연구자들이야
출토복식에 대해 자세한 연구를 하겠죠. 하지만 옷에 담긴 이야기나
세부적인 사실내용들이 제대로 책으로 묶여 나오질 않으니
이런 전시가 여전히 일반인에게 어려운게 사실입니다.
한국복식사를 깊게 연구하지 않은 상태에서
함부로 예단을 하는 건 좋지 않습니다. 단, 전시의 디스플레이나
미술관을 빌려 일반인을 상대로, 한국 복식의 미와 철학을 말하는 방식이
지난 20년간 바뀐게 하나도 없다는 것, 적어도 박사재학,졸업생들
대부분이 참여하는 이런 전시가 그냥 가족과 남자친구들
불러서 보여주는 전시가 되면 곤란합니다.
적어도 전시회를 열면, 전시및 큐레이팅된 자료가
통합되는 효과, 이걸 통해서 우리가 뭘 배우고 학습해야 하는 지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미술관 관람객들에게 알려주는게 기본입니다.
한국전통복식은 실제로 언어로 표현될때 대부분이 한자여서
하나하나 풀어 일반인이 쉽게 이해하도록 해야 합니다. 한국복식사책을
읽을 때 옥편에도 잘 안나오는 한자들이 많은 것 이해합니다.
그럴수록 더 쉽게 문장을 가다듬어가야죠.
사진 오른편의 배자를 한번 볼까요? 배자란 저고리 위헤 덧입는 소매 없는
조끼 모양의 옷을 말합니다. 일반적으로 털을 대는데 이번 출토복식은 뒤를 깔끔하게
누볐고 옷고름을 엑스자 형태로 교차시켜 옷을 입은 이의 주변부에 대한
개방성을 더욱 높였다는 데 그 특징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고증된 옷들 중에 가장 마음에 들었던
회장 저고리입니다. 회장이란 저고리의 깃, 겨드랑이, 고름등에
색 헝겁을 대는 걸 말합니다. 조선초 초기 세조시대의 후궁이 입었던 저고리
인데요. 이 저고리의 뒷중심선 오른쪽에 장씨소대란 글이 있는 것으로 보아 입은 분의
성이 장씨인듯 합니다. 월정사에서 출토된 후 원형을 복원시켜 놓은 작품입니다.
넓은 깃과 넒은 품이 대칭적으로 어울리고
넒은 목판깃은 넓은 섭을 달아 균형을 잡고, 전통염색방식인 쪽염색을 통해
쪽빛깔을 냈는데 5백년이 지난 지금도, 색의 농도를 조절해 두개의
색조로 조율해 놓은 색감의 미학이 돋보입니다.
두루마기입니다. 두루마기란 표현의 어원은 어디일까요
두루마기란 두루 막혔다란 뜻이 라네요. 그만큼 북방계 민족들이
추위를 피하기 위해 신체의 각 부분들을 열림과 닫힘의 원리 중, 닫힘을 적용해서 막고
이로 인해 체열이 빠져나가는 걸 막았던 것입니다.
이건 장옷입니다. 조선 전기에 장옷은
남녀 공용의 겉옷이었습니다. 후기로 가면서 여성만의
패션 아이템이 된 셈이죠. 삶아 익힌 명주사로 짠 고사를 숙고사라
하는데 청색의 숙고사 장옷인 셈입니다. 중요민속자료 제 51호 작품을 고증한 것이죠.
이건 풍차바지란 것입니다. 서양에선 남아에게도
5살이 될때까지 여아옷을 입혔습니다. 적어도 빅토리아 시대엔 그랬죠.
왜냐하면 우선 기저귀를 갈거나 움직임이 많은 아이들에게 스커트류가 편하기 때문이었어요.
한국에선 백일부터 서너살까지 아기에게 이 풍차바지를 입혔습니다. 바지의 뒷 부분
전체가 뚫려있습니다. 그래서 기저귀 갈기도 좋고요.
색동 두루마기도 예쁘네요. 가슴선을 잡아주는 쪽빛 고름도 곱습니다.
드디어 당의가 나왔군요. 저고리 위에 입는
소례복입니다. 저고리 소매끝에 거들지라 해서 길게
덧댄 소매가 보일겁니다. 보통 손을 감추기 위해서였다고 해요.
이 당의와 함께 입은 치마가 바로 대란치마입니다.
조선왕실 여성들의 의례용 복식입니다. 흔히 청홍대란치마라
하는데요. 사진에서 보시듯, 청색과 홍색 치마를 함께 입는답니다. 여기에서
포인트는 홍색치마를 주로 하되, 아랫단에 청색이 살짝 보이도록, 현대패션으로 치면
레이어드룩 느낌이 나도록 입는 다는 것입니다.
이번 전시를 보면서 아쉬운 것은 전시의 주요 테마였던
'열림과 닫힘'의 원리를 상세하게 풀어내려는 노력이 미흡했다는 점입니다.
옷은 사람의 신체 위에 덧입혀지는 것이죠. 그만큼 삼차원인 구성물의 신체가 옷을
소화하려면 어떤 부분은 열려(뚫려있어야)야 하고 어떤 부분은 막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옷의 열림과 닫힘이란 단순하게 복식구성상의 면모만
살펴서는 안됩니다. 옷의 열림과 닫힘은 결국 신체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규정해왔는가에 대한 해답이고, 철학적인 성찰이 옷을 통해 표현된 것이기 때문이죠.
옷의 열림은 단순하게 더위를 피하기 위해 개방된 것이 아니라, 주변 환경에
대해 인간의 감각적 적응방식이 오랜동안 누적되어온 결과인 것입니다.
좋은 전시였음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것은 이런 전시들이
일반인들에겐 거의 알려지지 않고, 그저 연구실 사람들, 친척들과 남자친구들이
보러오는 전시가 되도록 하지 않는 것입니다. 적극적으로 알려야 하고
일반인들의 질의에 대답할 수 있도록 각자 옷에 대한 철저한
설명을 할수 있도록 훈련되었으면 좋겠네요.
개인적으로 이번 전시 하신 이화여대 의류학과
전통복식 연구실 분들에게 한마디 해야겠습니다. 여러분은
옷을 왜 공부합니까? 무슨 이유로 합니까? 옷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무엇을 알려주고 무엇을 베풀고 싶은 겁니까? 그 철학이 명확하지 않으면 항상
천편일률적인 제목의 전시만이 생산될것 같아 아쉽습니다. 평생 옷에 미쳐 살고 싶었지만
형편이 못되어 포기해야 했던 저 같은 사람들을 위해 좀 더 노력하시면 안되겠습니까?
그저 이력서에 한줄 올리는 용도의 전시보다, 제대로 된 연구결과가 일반
관객들에게도 큰 의미로 와닿는 그런 시각의 잔치를 옷을 통해
열어볼 생각은 없으신지요? 묻고 싶네요. 노력해주세요.
여러분.....그래도 이대나온 여자잖아요. 안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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