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여러 권의 패션 관련 번역서를 준비하면서 기존의 패션책의 범위를 넘는 책을 선별했습니다. 한국에 나와 있는 패션 코너의 책들을 보면 대부분 일러스트에서 재단법, 소재연구, 마케팅 등 각 분야에 조금씩 있긴 합니다. 단행본의 양을 볼때는 도대체가 80-90년대를 통해 섬유강국이었던 한국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지요. 특히 가장 부족한 쪽이 통섭이란 최근의 흐름과 앞으로 대세가 될 일종의 문화를 담아내는 책이 없다는 점입니다.
국내 저자들 중에 패션에 대해 사회학적/경제학적/미학적 관점을 동시에 아우를 수 있는 통찰력을 가진 학자가 없다는 건 통탄할 일입니다. 제 몸과 영혼이 각 출판사 편집자들에게 거의 찟겨지고 있는 건 그런 이유죠. 너무 힘들지만 버티고 있습니다. 후학을 가르치는 교수는 아니지만 적어도 이 공간에 많은 의류학/의상학 관련자와 학생들이 온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용의 깊이도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구요. 의상학과에서 가르치는 패션마케팅 과목을 봤습니다. 교재와 교습수준들을 살펴봤는데, 안타깝게도 그 수준이 매우 미약합니다.
패션 마케팅이란 분과가 따로 있는게 아니라, 마케팅이란 거대한 틀을 가지고 패션시장과 소비자를 보는 것이죠. 언제부터인가 마케팅이 너무 분과별로 세분화되고 있다는 걸 느낍니다.
하긴 저도 석사졸업 앞두고 UBC에서 썼던 것이 메디컬 기업의 마케팅 행태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당연히Medical Marketing & Strategy 같은 제목의 책들을 쭉 훓어보게 되죠. 그러나 결국 느끼는 건 마케팅의 틀이 동일하다는 점. 그 틀 속에 특화된 시장의 정보를 나름대로 조합해서 정리한 것 이외에는 별 다를게 없다는 겁니다.
오래전부터 마케팅과 문화이론, 미학, 복식사, 거시 경제학, 역사비평학, 기호학, 사회학적 상상력을 함께 연결하는 체계를 만들고 있습니다. 여기에 가장 바탕이 되는 것이 패션이론입니다. 많은 분들이 놀랍니다. "무신 그깟 옷 하나가 문화적 해석의 단초가 되느냐"란 것이죠.
최근 서구에서도 패션이론에 대한 관심이 커졌습니다. 문화의 핵심을 관통하는 가치로서의 패션이 가진 사회학적 가치와 의미를 재발견 하게 된 것이죠. 각 나라의 의복문화, 드레스 코드, 이와 관련된 소비자 행동을 문화기호학으로 푸는 일이 중요합니다. 이런 노력을 기울여야만 문화의 심층, 그 기저에 숨겨진 각 나라의 소비자 감성을 읽고 이에 대응하는 마케팅을 할수 있습니다.
맨날 4P(제품,가격,유통,촉진) 각론만 판다고 해서 소비자가 읽혀지는게 아니랍니다. 특히나 패션은 그렇습니다. 한국에 있는 명품 브랜드의 매니저들이 어디 창의적인 논리를 가지고 한국시장에 접근하나요?
하나같이 본사에서 전달되는 마케팅 플랜을 시행하는 시행자에 불과합니다. 그만큼 브랜드 파워가 강력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로컬에서 어떻게 그 힘을 탈바꿈 시켜야 하는지 실제로 잘 모릅니다. 하긴 백화점조차도 을이 될만큼 강력한 파워를 가진 브랜드가 굳이 머리를 써야 할 필요는 없겠죠. 그런데 여기서 다시 물어야 합니다. 왜 우리의 내셔널 브랜드는 이런 힘을 갖지 못했나라는 점 말이죠.
단순히 저비용 구조와 차별화 정책에 의거해 옷을 만들었는데 라이프사이클이 기껐해야 2자리수 넘는 회사가 손에 꼽을 정도라면 이는 심각한 문제입니다. 왜 이런 구조가 만들어졌을까에 대해 거시적인 관점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패션을 너무나도 단순한 차원에서 읽어왔습니다. 사람들이 입는 외물 정도랄까요? 한 시대의 패션이 그 시대의 정수를 표현하는 매개임을, 문화의 핵심임을 간과한 탓입니다. 여기에 현지문화를 녹여내 문화자본화 시키지 못한 탓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패션-세상을 통섭하다>폴더에서는 마케팅의 통찰력을 키우기 위한 기초를 만들어가는 글들로 채울 것입니다.
한국에서 기호학을 가르치는 곳은 수도 없이 많지만 정작 패션과 관련된 기호학과 이를 패션에 어떻게 적용하는지, 그 가능성을 타진하고 실험하는 곳은 많지 않더군요. 저는 많은 한국의 패션 디자이너들이 인문학의 가치를 다시 찾아주길 바라고 있습니다. 저는 인문을 人紋이라 해석합니다. 다양한 통찰력이 씨실과 날실이 되어 가능성의 그물을 촘촘하게 짜는 것. 그 구조의 중심에는 옷과 인간이 있습니다.
흔히 이런 폴더를 만들거나 단행본을 쓰는 사람들의 한계는 꼭 범위를 패션에만 국한시킨다는 것이죠. 그러니 사고가 갖혀 있습니다. 시장상황을 돌파할 프레임, 틀을 만들 능력을 갖지 못하게 되는 것이죠. 이번 폴더에서는 인류학과 사회학, 패션의 클래식을 읽습니다. 물론 소비자 행동과 마케팅의 주요한 통찰력에 관한 글들도 읽어볼 것입니다.
최근 서점에 가면 창의성이란 말이 하나의 화두처럼 되어 있죠. 저는 이런 현상의 저변에 있는 '가벼움과 부박함'이 짜증납니다. '블루오션'이란 단어가 유행할때도 그랬죠. 경제연구소나 재벌 회장들이 툭하면 앞다투어 연두교서에 '올해는 블루오션을 찾자'란 식의 추상적인 말들을 남발합니다.
이미 1990년대초에 나왔던 가치혁신론을 포장한 것이 <블루오션>인데 이걸 2007년에 가져와서 새로운 것인양 떠들어댄 것이 우리들입니다. 문제는 그나마 가치혁신론도 실제 프로세스에 대한 이해보단, 겉으로 도는 수사학만 판을 친게 사실입니다. 이 글 앞에 있는 니먼 마커스의 광고 문구를 생각해 봅니다. If you build it, They will come.
이 말보다 강력한 마케팅의 프레이즈가 있을까 싶네요. 무엇을 구축하시겠습니까?. 지금같이 스타일의 개념 조차 미약한 이 나라에서, 패션철학이 없는 사회를 만들고 무작정 달려왔던 지금의 시스템을 성찰하며 살펴봐야 합니다. 이 폴더의 속도는 느리겠지만 '전략적인 느림' 속에 감추어진 통찰력들을 함께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30회 분량 정도를 놓고 이 폴더를 채우려고 생각합니다.
이 폴더의 글을 성실하게 읽고 일일이 답변을 달고, 함께 생각의 거리들과 정보를 제공해주실 분들과 함께 합니다. 30회 분량이 끝날때 우리끼리 멋지게 <패션마케팅과 제품개발>론 종강파티도 하자구요. 제가 멋지게 Certificate도 디자인해서 드릴께요.(사회적 가치나 구속력은 없지만 상징적인 의미로 준비해야죠) 비용은 무료인거 아시죠? 이 폴더는 정말 관심있고 헌신을 갖고 독해를 할수 있는 분들이 참여했으면 합니다. 가능하다면 두 학기 동안 오프라인 미팅도 하고 강좌도 하려고 합니다. (물론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도 4 차례 볼 예정입니다) 모임에서 만들어진 생각들 묶어서 책으로도 내보죠. 심포지엄 형태의 지식을 묶어서 단행본화할 생각입니다. 업계에 종사하는 분들도 함께 오셔서 나눠주세요. 허심탄회하게 고민도 하고 제가 생각하는 논리가 잘못되었다면 지적도 해주세요. 함께 가보는 겁니다. 대한민국을 다시 한번 패션강국으로 만들어가야죠. 힘을 모으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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