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패션 필로소피아

안대를 푼 일본-기모노 속에 담긴 정치학

패션 큐레이터 2009. 8. 30. 02:04

 

S#1 특이한 그림을 만나는 날

 

미술과 패션을 좋아하고, 이와 관련된 글과 기사들을 쓰다보니 한 가지 습관이 생겼습니다. 그건 그림을 볼때, 패션 초상화를 좋아하게 되었다는 점이고, 이외에도 의상과 액세서리 등 소품이 작품의 의미를 지배하는 작품을 만나게 되면 절대로 잊지않고 메모를 해 두는 일입니다.

 

이번 아시아 톱 갤러리 호텔 아트페어에서 제 눈길을 끈 몇명의 작가가 있습니다. 오늘 부터 5회에 걸쳐 그 작품들을 주로 설명드리려고 하는데요. 동경에 있는 Gallery Kogure에서 발굴한 다카히로 히라바야시란 작가의 그림입니다.

 

종이 위에 석채로 그렸는데, 그 색감이 곱고 화면도 유려한 것이 한 눈에 매료되었죠. 무엇보다도 그림 속 주인공들이 정교하게 묘사된 기모노를 입고 나온점이 끌렸습니다.

 

다카히로 히라바야시는 동경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만화 캐릭터를 현대미술의 영역으로 끌어와 다양한 이미지를 창조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동 아시아 복식에 관심이 많다보니 작가가 그린 기모노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일본의 대표적인 기모노 연구가인 가와다 마치코는 "기모노의 원류는 백제문화"라고 주장합니다. 저는 복식사를 연구하면서 각 나라의 옷의 형태를 통해 교역의 수준과 질, 문화를 모방하고 형성하는 수준을 살펴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전통패션은 한반도를 거쳐 대륙의 문화를 소화하면서 이루어진 것이죠. 나라시대까지 궁중의상은 그 색깔과 모양이 한복의 선과 빛깔을 닮아있다는 점은 놀랍습니다. 백제의 의상이 일본의 궁중 의상으로 발전했다는 것이죠.

 

이때까지 상의와 하의를 앙상블로 입었던 적이 없던 일본은 백제의 의상에서 영감을 따게됩니다. 일본 사람들은 중국의 루컹이란 상하의에서 자신의 옷을 발전시켰다고 말하지만, 정작 실루엣과 색은 백제의 은은한 빛깔을 더욱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 전 처녀들이 입는 후리소데의 경우, 한장의 그림으로 이루어져서 그 화려함이 더욱 돋보입니다. 봄에는 나비와 벚꽃을 여름에는 물을, 가을에는 단풍잎, 겨울에는 소나무와 대나무 패턴을 자주 무늬로 사용하죠.

 

이야기를 하다보니 정작 오늘 하고 싶었던 정치 이야기를 자꾸 미루게 되는 군요. 이번 호텔 아트페어에서 이 그림을 보면서 작가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사진 속 옷의 패턴과 빛깔이 곱다. 그런데 왜 하나같이 주인공들이 안대를 눈에 하고 있는 것인가? 하고 말입니다. 작가의 대답은 현대 일본의 초상화라고 생각해달랍니다. 그만큼 사회/정치적 의미들을 만화 캐릭터 같은 인물을 통해 그려보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처음 이 그림을 보면서 한쪽 눈을 가린 일본정치의 지형이 떠올랐습니다. 최근 언론은 연일 30일 치러지는 일본 총선에 촉각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제1야당인 민주당이 집권 자민당을 누르고 단독 과반수 이상을 확보하면서 일본 정치사상 선거를 통한 첫 정권교체가 이뤄질 것이 확실시되고 있기 때문이죠. 무엇보다 민주당이 집권하게 될 경우, 과거부터 중국 및 한국과 오랜동안 반목을 일으켰던 역사의 과오를 사과하고 보상하는 문제가 급물살을 탈 것이란 견해가 지배적입니다. 특히 북한과의 관계 개선도 모색하게 될 것이라는 예상도 빼놓지 않고 있더군요.

 

50년이 넘는 긴 세월을 우파인 자민당이 집권하는 동안, 일본은 그림 속 여인들의 모습처럼 한쪽에 안대를 한 채, 한쪽 눈에 반영된 정치적 진실만을 보려고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군국주의와 일본의 보호를 목표로 했던 거대세력 자민당이 끝내는 민주선거를 통해 무너지는 모습을 곧 보게 되겠군요. 세계의 정치적 조류가 민주와 진보세력에 의해 하나씩 채워져 가고 있는 지금, 답답한 한국의 현실을 보니, 오히려 그림 속 모습과 닮아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적극적인 소통의 노력과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 대리인을 내세워 방송을 장악하고 공정한 언론을 위해 노력하는 언론 종사자들을 탄압하는 작금의 현실에서, 이제서야 안대를 푼 일본의 과거로 돌아가게 될까 두려운 마음만을 찾게 됩니다. 어디 이뿐인가요? 사회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지식인들을 하나같이 치졸한 방식으로 앙갚음을 하고 전 국민의 반대를 무릅쓰고 집요하게 자신들이 원하는 정책만을 고수하는 현 정권의 모습은, 한쪽에 안대를 한채, 한쪽 눈에 보이는 길만을 가겠다는 뜻으로 보입니다.

 

 

원래 기모노는 상의에 랩 스커트 형식의 하의를 덧붙여 입던 과거의 복식이 발전한 것입니다. 신체적으로는 가장 편안하게 육체의 몸선을 따라 자연스레 안아주기에, 신체의 이동과 움직임에 아주 편안한 옷이기도 하죠. 랩 스커트처럼 육체를 껴안는 옷에는 항상 두루뭉수리하게 엄정한 현실을 둘러보지 않고 휙 둘러 싸려는, 정치적 태도가 담겨 있습니다. 영어에서 Skirting around the touchy issues 라고 하면 정치적으로 민감한 문제를 치마로 휙 둘러싸듯, 회피하는 상황을 의미합니다.

 

지금 집권여당이 보여주는 태도가 딱 이 기모노로 국민의 신체를 감싸며, 한쪽 눈에는 백색 안대를 채우는 꼴이니 말이지요. 일본화가의 그림 속에서 우리가 변모하게 될지 모를 위험천만한, 그러나 쓸쓸한 모습을 보게 되어 슬픈 하루입니다. 어찌되었든 민주당의 압승으로 끝나, 이제 오랜세월 일본대사관 앞에서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과 더불어 항의하시던 위안부 할머니들, 꼭 보상받으셨으면 하는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