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패션 필로소피아

옷을 착하게 입는 법-패션의 윤리학展 리뷰

패션 큐레이터 2009. 7. 23. 02:01

 

 

경기도 미술관에서 열린 『패션의 윤리학-착하게 입자』展의

오프닝 행사에 다녀왔습니다.

 

 

최근 패션과 현대미술이 결합된 내용을 테마로 한

기획전이 성황입니다. 아람누리 미술관의 <패션과 미술의 이유있는 수다>에선

현대미술관 패션이 상호간에 어떻게 상상력을 교류하며 그 폭을 넓힐 수 있는가를 생각하는데

중심을 두었다면, 이번 전시는 우리가 옷을 입는 행위, 생산된 옷을 입는 과정에 대해

생각해보고, 윤리적 소비와 도덕적 생산의 문제를 고려해보는 전시입니다.

 

패션이 사회적 구성물로서, 우리의 삶에서 어떤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을까를

고민해보는 전시입니다. 친환경 소재, 리사이클링, 공정무역을 기반으로 하는 '윤리적 패션'의

실천을 통한 의생활의 새로운 가치를 재고하고 모색한다는 목적을 갖고 이뤄졌습니다.

 

 

들어가는 입구에 몬드리안의 모티브를 따서 만든 친환경 소재로 구성한

작품입니다. 지퍼를 열면, 그 속에 코끼리 그림이 들어있습니다. 작가는 우리가 알고 있는

단편적인 생각들, 그것이 고착되어 하나의 생각으로 굳어지는 것을 경계하며 이 작품을 만들었다고 하죠.

장님이 코끼리 만진다는 말을 이렇게 작품으로 표현해냈습니다.

 

 

작가 이겸비가 만드는 <잊혀진 신발들, 걸어나오다>의 연작들입니다.

이번 전시에서 주목할 점은 패션이 우리의 일상에서 기본적인 문화활동이면서

동시에 지역적 차이와 시대적 추이를 반영하는 변화의 척도라는 점. 무엇보다도 일상성과

그 속에서의 미적 실천이란 가치를 윤리적으로 접근하는 점이 신선합니다.

 

 

구두 디자이너 이겸비의 작품은 독창적이면서도

예술적인 느낌을 발산합니다. 재활용을 통한 리사이클링 아트의 논리를

패션에 결합, 버려진 소파의 가죽을 분리한 후, 새롭게 재단해 만든 부츠나 현수막과

제품 포장재를 재활용해 만든 구두 등 독특한 아이디어로 형상화된

작품이 많습니다. 신라면 봉지를 가지고도 부츠를 만들었더군요.

 

 

복식사를 통해 볼때, 구두 디자인의 혁신이 일어난 건

세계 1.2차 대전 과정과 직후입니다. 결핍의 시대를 견뎌내기 위해

비싼 가죽을 버리고 자연의 소재와 다양한 일상의 소재를 이용해 슈즈를 만들었지요.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던 작가입니다.

영국에서 활동하는 오르솔라 드 캐스트로와 필리포 리치라는 두 명의

작가인데요. 1997년 From Somewhere라는 회사를 설립, 기성복 재료로 사용할 수 없는

원단 스와치와 재단 후 남은 자투리 천을 이용 의상을 제작하고 있습니다.

사실 장치산업인 패션비즈니스는 옷을 만들고 나면 15퍼센트 정도의

자투리 폐기물이 남거든요. 문제는 이것이 전혀 친환경적인

제작방식이 아니란 점에 있습니다.

 

 

이런 점을 고려하여 작가는 환경정의와 윤리를

위해 패션이 제작해온 관행을 넘어, 버려진 재료를 통해

새로운 의상을 제작하고 이것을 상업적으로도 널리 입을 수 있음을

선보입니다. 사실 오늘 오프닝에서 본 의상들은 일상에서 편하게 입을 수 있도록

디자인된 평범한 옷들이더군요. 그래서 마음에 더 끌렸습니다

 

 

작가와 그 회사가 만들어서 사용하고 있는 기업의 로고입니다.

저 로고가 있는 경우 재활용 의상임을 밝혀주는 것이라네요. 윤리적 소비를 위해

사용할만한 의식있는 소비자들에게 먹혀들만한 아이콘입니다.  

 

 

최근 환경문제에 눈을 돌리는 많은 패션 디자이너들이

등장했습니다. 런던 패션 위크에서도 에코 프랜들리, 친환경을 소재로한

테마의 패션쇼가 열렸고요. 전 세계적인 이슈인 환경과 새로운

시대의 정체성의 문제를 패션은 결국 옷을 통해

인간을 가두고 구속하는 매체로서

접근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바비인형으로 지속적인 현대성과 여성의 정체성 문제를

캐물어왔던 작가 윤정원은 이번에도 인형에게 재활용 옷을 입히며

옷을 입는 주체인 인간에 대한 생각을 재고하도록 만듭니다.

 

 

다양하고 화려한 재활용 의상들을 입은 바비와 인형들이

독특하기도 하고, 이렇게 우리들도 리사이클된 소재로 옷을 만들어 입고

다님으로서 지구별에 세들어 사는 우리임을 좀더 오롯하게 드러낼 수 있으면 어떨까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브라질 출신의 디자이너인 아나 파울라 프라이타스의

작품들입니다. 물론 오늘 작품은 주로 캔 뚜껑을 재활용한 것인데

이는 브라질의 전통 수공예기법을 적용하여 만든 것입니다. 브라질의 지역 공동체

여성들의 노동력이 결집되어 만들어낸 산물이지요. 공정무역 제품에 대한 지식인들의 윤리적 관점이

각광을 받는 것은, 우리가 손쉽게 입고 먹고 쓰는 것들이, 노동착취와 아동노동과 같은

비상식적, 불법적인 행위를 통한 저임금 논리로 만들어진 것임을 깨닫자는 자각적

움직임이 소비자로서의 우리들을 움직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캔뚜껑을 촘촘하게 실로 엮어내 만든 손지갑이 아주 예쁘지요?

 

 

폐신문을 활용해 만든 화려한 오트 쿠튀르 의상작품들입니다.

 

 

오늘 전시 중 한국 작가들이 만든 작품 중에서

눈에 들었던 작품입니다. 패션 디자이너 이경재는 원래 에콜로지 테마를

패션을 통해 풀어가는 걸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저도 오늘에서야 전시장에서 뵙고

인사를 드렸네요. 웨딩 드레스는 한번 입고 다시 입을 일이 없는 옷 중에 하나죠.

신부의 순결과 순수를 드러내는 상징이기에 앞서, 1년 평균 결혼을 34만쌍이 한다고 할때

결혼식 1회당 이산화탄소 발생량이 439만톤, 이를 30년생 백합나무로 환산하면

2739만 그루를 매일 없애는 것과 같습니다. 그만큼 이 웨딩드레스가

과소비를 넘어 환경오염의 주범이란 점. 그런 속에서 이경재의

작업은 주목할 만 합니다. 오늘 작품 제목도

대지를 위한 바느질입니다.  

 

 

디자이너 이정혜씨가 만든 니트작품입니다.

<동지들>이란 제목이 붙었군요. 그렇습니다. 옷은 어떤 점에서 보면

우리의 일상적 실천의 표면을 장식하는 가장 강력한 기사의 갑옷과 같지요.

하지만 옷은 어떤 철학을 갖는 가에 따라, 옷을 위해 몸을 조형해야 하는지, 아니면

몸을 위해 옷이 존재하는 지를 착각하고 살 때가 있습니다. 이정혜의 작품은

바로 살이 좀 찌든, 빠지든, 여전히 동무가 되어줄 것 같은 편안한

니트 작품을 선보였습니다. 전시 오프닝때 이번 전시를 기획한

큐레이터 황록주 선생님과 만나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패션을 전문으로 하는 큐레이터가 아니여서

두려움도 많이 앞섰다고 하시던데, 제가 보기엔, 올해 지금까지

본 패션 전시중에 최고인 것 같습니다. 디스플레이와 공간활용의 문제,

패션을 사회적 차원의 담론으로 확장시키는 전시였다는 점.

 크게 박수쳐 주고 싶네요. 의미있는 전시였습니다.

 

저는 9월 24일 개봉하는 한겨레 신문이 기획하는

<패션 사진의 거장, 사라문 展>을 위해 열심히 뛰고 있습니다.

이번 패션의 윤리학 전시회가  패션 개념이 입는 물질이 아닌 사회적

산물로서, 공정한 노동과 윤리가 수반되어야 하는 과정임을 밝혔듯, 저는 사진전을

통해서 패션 사진에 대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편견을 무너뜨리고 싶습니다.

전시 처음부터 끝까지 도슨트로 뛸 것이고, 여러분을 만날 겁니다.

 

 

오늘 경기도 미술관에서 특강을 합니다.

미술 그리고 더하기란 큰 테마아래, 이제까지 미술과 각 장르의

크로스 오버를 주제로 다양한 전시와 강의를 해왔었는데, 제가 7월의 마지막을

장식하게 되었군요. 기대도 되고 강의도 잘 하고 싶고 뭐 그렇습니다.

그나저나 이 강의에 대해 빨리 알았더라면 영화감독 박찬욱을

만날수도 있었을텐데, 정말 아쉽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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