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패션과 사회

그림으로 만든 행복마을-공공미술이 가야할 길

패션 큐레이터 2009. 8. 1. 14:33

 

 

안성 1일 기행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뭐니뭐니해도 이 복호리(호랑이가 엎드려 있는 형상을 닮았다는)마을

이 아닐까 싶습니다. 올해 초, 블로그 독자분들에게 미술의 공공성과 공공미술의 세계를

블로그에 하나씩 소개하겠노라 야심차게 큰 소리를 친 저로서는 복호리 마을과의

조우가, 마음 한켠 행복합니다. 새로운 가능성을 봤기 때문이지요. 

 

 

서양에서는 일찍이 보행자들이 거리를 걸으며 도시 속에 숨겨진 미술품들과

대화하는, 그래서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 속 미관과 감성을 더욱 뜻깊게 이해시키는 공공미술 프로젝트가

시행되어 왔습니다. 한국에서도 경남 통영과 최근 대학로 부근의 낙산공원에서 공공미술개념이

도입된 새로운 도시 풍경을 만들어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지요.

 

 

공공미술의 취지는 다른 것에 있지 않습니다.

특히 문화적/역사적 배경이 깊은 도시는 급속한 도시화를 통해 해체되었던

본연의 정체성을 미술을 통해 복원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이외에도 문화적 소외지역을

미술가들과의 공동 프로젝트를 통해, 지역에 대한 관심, 유효 수요를 창출하는 일도 가능하지요.

4년 전 설치미술가 홍영인씨가 당안이 화력발전소에 옷을 입혀 문화발전소로 탈바꿈

시키는 컴퓨터 그래픽 작품을 선보였지요. 중국의 타싼즈 지역이나

제가 살았던 벤쿠버의 미술거리도 예전엔 시멘트 공장이 있던 곳이었죠.

 

 

한국의 공공미술 도시나 거리를 꼭 빠지지 않고 방문하는 제겐

복호리의 벽화작업과 동네의 역사성을 '호랑이'라는 문화적 아이콘과 엮여 내는 작업은

매력적인 힘을 발산했습니다. 문화부의 '아름다운 마을'에 선정될만큼 마을의 풍경은 고즈넉하고

풍성한 광량과 미풍 아래, 회백과 보라, 진초록의 벽면 위에 집 주인과 화가들이 함께 작업한 그림이 곱습니다.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소나무에도 앙징맞은 조형들이 설치되어 있고요

 

 

안성특미를 오리농법으로 만들기에, 그걸 상징하려는 지, 하늘빛 벽면에 만든

오리들의 귀여운 모습도 눈에 들어옵니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급속한 도시화와 전통의 해체 속에

옛것, 혹은 오래된 것들을 무조건적으로 파괴하고 무너뜨리고 와해하는 것이

패셔너블한 일이고, 감각적인 작업인 양 생각해왔습니다. 마을의 의미를 잃어버린지도 오래지요.

 

물론 정신의 틀이 그 빛이 바래고 고색창연해져 근대적인 느낌에 맞지 않다면

이를 다른 형태로 수용해야지, 무조건적인 해체는 적절하지 않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바로 선순환의 작업을 해주는 것이 이 공공미술이지요.

 

 

마을 주변의 산과 그 형세를 빌어 지어졌다는 복호리 답게

호랑이를 편안한 도상으로 만들어 집지붕위에 설치한 모습이 보입니다.

이외에도 잘 찾아보면 여러마리의 호랑이 모습들이 있어서 숨은 1인치를 찾는 즐거움 또한 있지요.

 

 

복호리의 상징, 호랑이를 생활 용품을 모아다 조각작품처럼 만든 것이 눈에 띄지요.

일종의 리사이클 아트라고 할수 있습니다.

 

 

그 마을의 상징을, 마을 사람들이 쓰는 일상의 용품과 가재도구를 이용해

만들어 볾으로써 마을 공동체의 일원됨을 상징하는 감성도 곱네요.

 

 

마을 회관은 무늬목과 설화벽화로 만들어 깊은 느낌이 배어납니다.

딱정벌레를 형상화해 바위에 붙여놓으니 자연 친화적인 느낌도 배어나고요.

 

 

노랑색 샤프란빛 벽면위에 그려진 마을 사람들의 초상이 눈에 들어옵니다.

보행도로를 장식한 호랑이 형상의 나무 이정표들도 통일성있게 배치해서 그 느낌이 색다르지요.

 

 

벽면에 그려진 민화풍의 호랑이도 오랜 세월의 굴곡을 벼텨낸

벽면의 느낌과 맞아떨어지며 고색창연한 전통의 미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뉴질랜드의 남쪽에 있는 아벨테즈먼 해상국립공원에 간 적이 있는데요.

이곳 마을은 전 세계적으로 유리공예작업가들의 스튜디오가 밀집되어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유리공예 하나를 철저하게 상품화 하여 관광객들을 유치하고 마을 전체가 이로 인해

생계를 행복하게 꾸려나가지요. 바로 지역공동체의 벤처화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문제는 지금까지의 공공미술이란 것이 소수 예술가들이 건물 앞에

조형을 만들어놓고 건물 허가를 위한 예비조건처럼 생각해왔던 것이 사실입니다.

공공의 개념은 단지 장소보다 대중과 환경 공간의 공공성과 연결되어야 합니다. 수용자 중심의

풍경을 도시속에 마련하고, 쉴 공간과 여백을 만들어내는 기업의 태도와 노력이 필요하게 된 것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와 미술의 관계가 적절하게 연결되지 못한 이 사회의 병리적 풍경은

공공미술의 본원의 정신을 살리지 못한채, 요식행위로 머물고 있습니다.

그 요식행위를 수수방관하는 곳이 바로 서울 시청이지요. 

 

 

국내에서 공공미술의 자리는 그리 넓지 않습니다.

<퍼블릭 아트> 매거진이 미술 저널리즘에 불어넣은 신선한 시선도 요즘은

영 힘이 부치는 듯, 문화예술진흥법에 따라 1995년부터 알음알음 시작되어온 이 땅의

공공미술은 재벌과 소수 화랑들의 결탁과 문화자본의 그릇된 배분으로 인해

그 본연의 정신은 퇴색된지 오래입니다.

 

일정 규모 이상의 건축물을 신축하거나 증축할 때

 건축비용의 1% 이하로 하향 조정된 비용을 미술 장식에 사용하도록 했지요.

미술 창작 기회를 확대하면서 문화예술의 진흥과 도시환경의 개선을 꾀하려는 의도였습니다.

이 제도에 따라 지난해만 해도 건축물에 미술 장식품 959점을 설치하는 데 700억원이 소요될 만큼

돈도 적지 않게 들어갔지요. 서울시청과 청계천 하면 떠오르는 흔히 꽈배기 같이 생긴

조형물의 가격도 수십억대에 달했고요. 하지만 결국 청계천의 형태나 전체적인

조망을 고려하지 않은 작가의 이름값만 믿고 터무니 없는 국민의 혈세를

뿌렸다는 비난을 자초하고 말았습니다. 세금 쳐바르는 짓은

청와대의 누군가와 참 닮았습니다.

 

 

오세훈 시장만큼 말끝마다 '디자인 서울'을 외치고

다양한 행사를 국민의 혈세를 퍼부어가며 유치하지만 정작 바뀐 것 없이

설령 바뀌었다 해도 통일성과 도시 전체의 미관을 고려하지 않은 일시적인 접근법으로

서울을 망쳐놓은 정치인도 없습니다. 저는 그래서 그가 툭하면 예술가형 CEO니

예술이 넘치는 도시를 만들겠다는 섬뜩한 이야기를 할 때마다 이번엔

또 어디를 부수고 새로운 걸 만들려하나 하는 생각에 빠지죠.

 

 

공공미술이 이 모든 문제에 해결책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화가들과 작가들 또한 반성해야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건당 7500만원 가까이 드는

돈 앞에서 그저 도시 전체의 미관이나 조경의 논리를 뒤로 하고, 자신의 작품을 버젓이 걸어놓은

그런 분들, 이제는 반성해야죠. 아니 그런 프로젝트를, 눈먼 돈이라고 끌어오고 로비하는

서울의 대형 갤러리와 자칭 아트 컨설팅이랍시고 하시는 분들 반성해야 합니다.  

 

 

 

어린시절 아이들과 동네어귀에서 뛰어놀던 기억을 새록새록

피어나게 했던 조형물이구요.

 

 

텃밭을 키우며 살아가는 노 부부의 모습을 형상화해 벽면 장식과 함께 만들었습니다.

 

 

우후죽순처럼 하루에도 여러개의 건물 인허가가 이루어지는

서울에서 아무리 용을 써도 예술가의 상상력 하나로는 서울이란 말라 비트러진

감성의 도시를 세우는 것이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것은 화가들과 조형가들의 집단 작업 방식을

빌려야 하고, 건축가와 사회비평을 하는 전문가들이 함께 모여 도시 전체의 풍경을

설계하는 일과 접목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물론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요.

 

도대체가 무슨 도시 디자인을 시장이 임기동안

뚝딱뚝박 해치워 만들어야 하는 그런 프로젝트 정도로 아신다면

다시 한번 충고합니다만, 오세훈 시장님, 디자이닝이란 것이 얼마나 오랜 시간에

걸쳐 인간의 삶을 담아내는 작업이어야 하는 지를 깨닫기 바랍니다.

 

 

 물론 이해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한국 사람들, 정말이지 자격없는 국민들이라고

한탄하고 싶을때가 한두번이 아닙니다. 뭐가 그리도 성급한지

그저 문화적 이정표 하나 세워서 자기 네 동네 집값 올라가는 것 이외에는

관심없는 자들이, 미술의 공공성을 이야기하거나, 풍경의 미감을 이야기하는 건 어불성설입니다.

도시 전체를 디자인하기 위해, 걸리는 시간과 설득작업이 배제된 이 땅의 디자인 정책은

그저 디자이너에게 턱 하나 프로젝트 던져주고 '비둘기 똥구멍'을 그리라고

말하는 일과 다르지 않습니다. 제발 정신 좀 차리세요.

 

 

복호리 마을이 공공미술을 통해

아름답게 피어날 수 있는 건, 주변의 풍광과 오래된 마을의

미감을 미술을 통해 녹여냈고, 오랜 시간을 통해 통일화된 미감을 만들기

위한 작업을 동시에 했기 때문입니다. 이 또한 인구밀도가 그리 높지 않아서 가능한것이죠. 

 

 

서울이란 거대한 도시를 캔버스처럼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곳으로

변모시키려면, 적어도 이 세대가 가진 땅에 대한 욕심, 내 집값에 대한 욕심 부터

버려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바스라지고 버려지는 것들에 대해 애정을 갖고 어떻게

새살을 붙여야 할지도 고민해야겠죠. 마을 전체를 얼르고 도는 수로처럼,

우리의 풍경을 녹색으로 그려가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는 것.

오랜 세월이 걸린다는 걸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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