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의 분향소에 다녀왔습니다. 새벽향기를 맡으며
떠난 그의 여정길, 마지막 얼굴이라도 보고 싶어한 수천수만의 시민들.
25만명이 운집한 서울의 거리. 3시 반쯤 도착했는데 분향까지 4시간 정도가 소요되더군요.
그만큼 인원이 많기도 하려니와 이상하리 만치 많은 경찰 차령이 있습니다.
전경버스로 가로막힌 좁은 보행도로에 2인이 함께 서서 기다립니다.
많은 인원들을 어떻게 경찰들이 교통정리도 하지 않는냐고
묻자 그냥 아무말도 하지 않습니다. 고참으로 보이는 전경들은 나와서
담배나 피우고 있고 함부로 도로에 꽁초를 버리더군요. 그저 아래 계급 아이들만
방패들고 무겁게 질서정연하게 줄을 지어 보행로를 점유한 채 앉아있습니다.
경찰이 분향소 주변의 통행을 통제한 탓에 시민들의 추모행렬은
시간이 갈수록 기형적으로 늘어납니다. 제가 줄을 선 곳은 방송공사 앞이었는데
덕수궁 문 앞에 가기까지 4시간이 넘게 걸렸으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속으로 생각합니다.
대통령에 대한 예우를 깍듯이 하라는 현 대통령의 말을 기억하고선 뭔가 준비된 것이
있나 보다 기대까지 했지 뭡니까.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서였을까요
시청쪽으로 나가는 지하철 게이트를 다 막으셨더군요.
말을 들어보니 만일의 사태 때문이라는 군요.
전체 길이가 1킬로미터가 넘은 건 도로를 점유한 수많은
전경버스가 보행로를 무단 점유했고, 앉아있는 경찰들 때문이었죠.
대한문 앞 분향소에서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광화문 쪽으로 150미터 겨우 갔나
싶은데 경찰에 막히고 다시 분향소 쪽으로 50미터를 돌아 시청역 지하도로
내려가 건너편 2번 출구로 올라갔습니다. 시청쪽으로 널브러진 푸른 광장길을 따라
가면 될 것을 뱅뱅 돌았습니다. 이것이 아마도 현 대통령이 전 대통령에 대해 보여주고 싶은
예우의 수준인가 봅니다. 시청역 지하도로 내려가 2시간 반이 넘게 기다려야 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짜증이 날 만도 할텐데 조용이 조문을
위한 예절로서, 침묵을 지키고 있습니다. 시민을 왜 그렇게도
무서워하는지 이 더운 늦봄에 경찰들을 방패와 곤봉, 진압용 의상까지
깔끔하게 세트개념으로 맞추어 우리를 맞게 하더군요.
여기에 한가지 더, 얼마나 많은 전경들을 불러야 했기에
전용 버스도 부족해서 관광버스까지 대절해서 전경들을 태워야 했을까요?
관광사 이름이 압권이었습니다. <내 나라 관광>. 전경들이 열을 올리며 시민들을
압박했던 이유는 내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였겠지요. 우리는 혹시 모를
신종 플루에 걸린 관광객 정도로 취급을 받아야 했으니까요.
오랜만에 지하철에 오래 있다보니 예전 바쁘게 걸어가며
제대로 보지 않았던 광고판도 보입니다. 여행 프로젝트, 여성이 행복한
서울을 만들겠다는 MB 정권과 오세훈 서울 시장의 합작품이죠.
역시 이 날도 여성들을 어떻게 하면 더욱 행복하게 할까를 고민했던
탓일까요? 정말 많은 여성시민들이 울어야 했습니다.
길게 기형적으로 연속된 줄 속에서 아이들과 함께 기다리다
지친 엄마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광고판 아래 종이를 깔고 아주 편하게 쉬고 있네요.
이날 따라 시청 지하도는 에어컨도 수리중이어서 찜통같은 분위기가 만만치 않았습니다.
오세훈 시장님께 감사합니다. 참 여성들이 행복한 여행을 하고 있네요. 시민들이
등을 기대고 앉아있는 후면의 광고판 멘트가 아주 압권입니다.
"듣겠습니다"......뭘 듣고 있는 걸까요? 항상 오세훈 시장과
이명박 정권이 듣는 것은 무엇일까요? 최신 MP3 뮤직? 혹은 오디오 북?
그나마 분향소에 왔다가 자발적으로 자원봉사를 맡으신 분들이
시원한 물을 나누어 주셔서 지하도 내 꽉막힌 공간의 답답함을 조금이라도
풀 수 있었지요. 이 분 들이 없었더라면 하고 상상하면 참 답이 나오질 않습니다.
물론 현 대통령께서 지금 이 땅이 비상시국임을 선포하고
경제위기 탈출을 위해 지하도 내 간이음식점의 매출도 신경을 쓰셔야 할 터라
시민들을 두줄로 협착하게, 매우 기형적인 줄을 서서 오랜동안 기다리게 하신 듯 보입니다.
오로지 경제탈출을 위한 아이디어라고 하기엔, 시민들의 불편이 가중되었다는 점
현 대통령께 말씀드리고 싶네요. 다음부턴 이러진 않았으면 합니다.
지하철 안에서 그저 바깥으로 나가기만을 기다리는 시간은
넉히 두 시간이 넘어야 했습니다. 오세훈 시장은 서울 시민들을 위해
문화 단비를 내려주겠다고 했으나, 에어컨이 고장난 콩나물 시루같은 지하도에서
시민들은 단비를 맞는 대신 땀비를 흘려야 했습니다. 경제를 위해 땀을 흘리라는 대통령의
메세지를 그대로 시행한 오세훈 시장에게 고맙습니다. 몸무게가 감량되었으니까요.
오세훈 시장님. 여행 프로젝트 그만 하셔도 될 듯 합니다.
오늘 여성분들이 정말 많이 울었거든요. 기다리는 시간 서있음에 지쳐서
힐을 신었던 여성분들은 힐을 벗고 손에 든채 기다려야 했습니다.
이제 지하도의 끝이 보이나 했더니 나와서도 영국 대사관까지 길이
기형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탓에 그냥 서 있어야 했습니다.
이날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로 인해 서울 걷기 대회가
취소 되었는데요. 아무래도 오세훈 시장과 이명박 대통령께서
이렇게라도 아쉬운 마음을 달래라며 직선거리 150미터도 안되는 것을 돌고 돌아
가도록 배려하셨나 봅니다. 걷기 대회에 유턴 종목까지 있다니. 놀랍습니다.
이제 드디어 돌담길을 돌아 대한문으로 향합니다.
그나마 이 협착한 보행로도 전경버스로 꽉 막아 놓은 터라
시야가 매우 좁고, 블로킹 라인이 형편없이 불편합니다. 그것도 모자라
조문객들을 위하여 띠를 두르기까지 했습니다.
서민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을 기리기 위해 노랑색과 검정색 띠를 묶어
안전선위에 걸었습니다. 살아생전 그의 모습을 보니 눈물이 주르르 흘렀습니다.
왜 보행로까지 이렇게 좁게 치고 들어와 시민들에게 불편을 가중하는지 물어보니 이번에도
답이 없습니다. 경찰은 조문행렬까지 사람을 보며 막나 봅니다.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 때 저도 줄을 섰지만, 경찰은 도움을 주었지 이렇게 압박을 가하진 않았거든요.
조문 뒤 있을지 모를 미신고 집회를 운운하며 국화꽃 한송이를
들고 선 시민을 압박합니다. 시민을 '위험분자' 나 미신고 집회에 참석하는
잠재적 범죄자 정도로 간주하나 봅니다. 신문을 보니 전경을 8320명을 배치했다네요.
시위로 변질될 수 있다는 식의 자의적 추정과 판단으로 시민의 통행권을
막는 것은 집회 및 시위의 자유라는 헌법적 가치를 완전히 뭉게버린
행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눈쌀 찌푸리는 짓거리는
이제는 더 이상 없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임시 분향소를 마련해 그나마 많은 인원들을 수용하려는 노력을
자원봉사자들이 보여주었습니다. 절을 올리는 조문객들의 모습을 담았습니다.
이 또한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를 보여주라는 이 대통령의 명령이 있었던
탓인지, 툭하면 전경차에서 경찰들이 내려 이상한 기합소리를
내며 조문객들을 당황하게 만들더군요.
조문을 다녀와서 이 대통령이 주장하는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란 과연 어떤 것일까를 심각하게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경찰을 앞세워 시민들을 잠재적인 시위꾼으로 추정하고 몰이하는 것이 대통령의
의중은 아니었을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 대통령님은 그렇게 좁쌀 영감탱이같은 사고를
가진 분이 아니라고 강력하게 믿고 있습니다. 다만 그 아래서 과잉 충성을
취하는 경찰이 있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일국의 대통령이 서거하시고, 그 조문을 위해
마련한 장소를 위해서도 국가는 그 어떤 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시민들의 자발적인 노력으로 덕수궁 앞 좁은 대한문 앞에 빈소를
마련하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 해야 했습니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의 기준을
명확하게 배우게 된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좁은 곳에 25만명의 시민들이 덕지 덕지 앉아
조문을 부랴 부랴 끝내도록 하는 것이 그가 말한 예우의 기준이라면, 좋습니다. 국민으로서 현 대통령의
말을 따라야지요. 단 여기엔 단서가 하나 있습니다. 이 대통령이 사망하고 난 후 절대로 넓은 공간을
추모제를 위한 장소로 사용하시면 반칙입니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의 기준을 만들어준 만큼,
본인도 그 기준을 따르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래서 제가 한번 고민을 해봤습니다.
대통령의 사후 조문장소로 사용될 수 있는 최고의 장소는 어딜까.
바로 그곳은 소망교회 본관 4층에 자리한 작은 기도실입니다.
크리스천 답게 그곳에서 영면하셨으면 합니다. 단 저는 15년간 소망교회를
다녔으나 이제는 다른 교회(감자탕교회)를 출석하는 관계로 그 곳에 가지 못함을 분명히
이 자리를 빌어 밝힙니다. 이 대통령의 국민장은 곤란합니다. 국민장이란 정치적 지도자의 죽음에 대해
그의 실존적인 삶과 정치철학에 동의하는 국민의 자발적 움직임이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노무현 대통령의 국민장에 대해 찬성하는 이유는, 오늘 조문행렬을 통해
확인한 바, 모든 국민이 자발적으로 그의 서거를 위로하기 위해 모였다는 점을 들고 싶습니다.
본인이 세운 예우의 기준을 엄정하게 적용하는 노무현 대통령의 후임이 되세요.
이명박씨에게 말합니다. 고인이 된 대통령을 조문하면서
당신이 말한 그 '예우의 기준'을 저는 몸으로 체험하였습니다. 이제 그
체험의 기억은 당신이 사망할 때, 그대로 유지를 받아 자기 복제 될 것입니다.
참으로 옹졸한 당신. 나는 당신과 같은 크리스천인 것이 부끄럽습니다.
ⓒ 오마이뉴스 그래픽
바보 노무현, 참 좋은 대통령의 조문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은
가슴 한구석에 보랏빛 생채기를 남깁니다. 참 좋은 분. 이제 그를 보냅니다.
이런 좋은 분, 다시는 없지 않나 싶습니다. 오늘 그가 많이 그립습니다.
오늘처럼 당신을 보내는 일도 이렇게 육체적으로 어려웠던 날
당신이란 의자에 앉아 시원한 미풍을 맞았던 그때를
추억하는 일이 내겐 너무 마음이 아플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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