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패션과 사회

당신을 떠나보내며-인간 노무현을 생각함

패션 큐레이터 2009. 5. 23. 12:41

 

 
                                                           김성묵_물을 건너다_캔버스에 유채_150×150cm_2004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살로 생을 마쳤다. 비극적 서거다.

생의 갈무리를 위해 죽음의 바다를 건넌 이 남자. 그가 찍은 생의 방점은

어떤 빛깔일까? 푸른 멍물이 가득한 쓰디쓴 바다의 빛이 우리를 인도한다. 인간 노무현.

정치가와 한 나라의 통수권자로서가 아닌 그저 평범한 한 인간의 죽음을

이야기 해 보련다. 수많은 치욕과 버거움이 힘들었나 보다.

 

너무 힘들었다며 고향에 작은 비석이나 세워달라고 했단다.

화장해달라면서, 그의 영혼의 다비식에 가서 우리는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결국 삶과 죽음은 자연의 일부이자 한 조각에 불과하단 말인가.

 

정치가의 죽음이니 만큼 서거가 정치적 죽음으로 해석되겠지.

 그의 죽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한 자들 모두, 그와 동일한 죽음을 맞이하게

될거란 걸, 이번 일을 통해 나는 배운다. 누군가를 정치적으로 죽인자

그 또한 정치적인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므로.




김성묵_갈증_캔버스에 유채_150×150cm_2004

 

바다를 보고 싶다. 달려가고 싶다. 마구마구 숨이 막히는 걸 참고서라도

오늘은 참 답답하다. 내 어미의 태반과 양수가 담긴 저 푸른 바다에 몸을 던지고 싶다.

작가 김성묵의 작업을 보다가 눈물이 하염없이 흐르는 것도 그런 이유일거다.

대통령의 서거를 듣고 잠시 멍한 상태로 방치되어 있었다.

 

어제 밤 신학자 판넨베르크의 글을 읽다가 잠이 들었다.

"인간의 죄는 즉 참된 길의 상실은 인간이 다른 이를 판단하기 전에

하나님의 진리라는 불빛에서 자기 자신을 시험하는 게 필요하지 않다고 믿는다는 사실에

놓여 있습니다. 그 시험은 우리 자신에게서 출발해야만 한다는 사실입니다"

 

한 인간의 삶을 정치적 목적을 위해 철저하게 짓밟은 자들에게

묻고 싶다. 정당성과 당위를 이야기 하는 것에 대해서는 나도 찬성이다

그러나 당신들의 행위가 이미 참된 길을 상실한 것이라고 내가 믿을 수 밖에 없는 것은

자기 자신을 시험대 위에 올려 놓지 않은 채, 타인을 판단하고 비평하고

권력을 이용해 한줌의 재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참된 길을

상실한 죄인이다. 화 있을진저.




김성묵_유영_캔버스에 유채_112×162cm_2004

 

지금쯤 그는 레테의 강 어딘가를 건너고 있겠지.

어디쯤 유영했을까. 그의 쓸쓸한 혼은 어디를 향해가고 있을까

난 인간 노무현의 죽음, 서거를 통해 한 가지를 배우려고 한다. 각 사람은

자기 자신을, 자기의 믿음과 행위를 비판적으로 시험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시험의 필요성은

신이 주신 이성의 불빛으로 부터 출발한다. 신이 우리를 시험하고 검증하신다는 것.

우리의 전체 인생을 통해 우리의 신앙을 검증하고 확증하는 것이 필요하다

인간 노무현은 자신의 삶을 통해 소통부재와 권위주의로 점철된

 대한민국에 새로운 꿈을 부여했고 온 몸으로 시대의

심판대에서 자신을 시험하고 검증했다.

 

잃어버린 10년을 외치며 그를 죽음으로 내몬 자들

대통령이 크리스천이라니, 신의 불꽃위에 자신부터 올려놓길 바란다.




김성묵_십자가_캔버스에 유채_112×162cm_2004


이명박 대통령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크리스천이 맞는가?

"모든 것을 헤아려보고 좋은 것을 꼭 붙드십시요"라고 충고하는 사도바울의

목소리를 기억은 하고 있나? 바울이 이 이야기를 한 까닭은 역사적 전통을 통해 정당화된

권위에 맹목적으로 복종하기 보다, 이성을 사용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라는 뜻이다.

당신 이전의 역사를 좌파의 역사라 규정하고 또 다른 편향성의 짐을 우리 사회에 짊어지도록

강요하는 당신이야 말로 신이 주신 절대적 이성을 철저하게 버린 자의 모습이다.




김성묵_flow__캔버스에 유채_80×100cm_2004
 
삶은 흐르는 물과 같다. 노무현을 지지하지 않았던 사람으로서
그러나 대통령이 된 이후의 그를 통해 정책적 지지가 있어야 할때 나는
그의 목소리를 들었다. 정치가로서, 한 나라의 통수권자로서, 사회적 배경없이
태어난 약자 대통령. 물론 그가 잘못한 것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난 다만
그의 죽음을 통해 비판의 도마 위에 그를 올리기 전에 나를 바라보고,
우리들 전체를 이성의 시험대 위에 올려놓자고 말하는 것이다.
 
그는 바다를 건넜다. 망막한 바다의 푸름 속에서 지워질
그의 역사는 우리들의 기억 속에 남아야 한다. 보수라는 기망의
허울 쓴 거짓 언론과 희생양의 논리가 필요했던 한 집단에게로 그 죽음의
댓가가 반드시 돌아가게 될 거란 점을 그들은 반드시 알게 될 것이다.
 
김경한이란 더러운 이름. 수사를 누구 맘대로 종결인가.
당신이 주장하는 바, 원칙을 세워 사태의 끝에서 당신을 보고 싶다.
그것이 하늘의 법이 될 것이므로. 그 끝에서 정치적 죽음을 맞이해야만
하는 당신의 이름을 우리는 기다릴 준비가 되어 있다.
 
인간 노무현, 참 버거웠던 이 세상
깃털처럼 가벼운 영혼되어 이제 행복하길.......
  

 


 

봄의 끝자락은 차가운 기운이 가득하네요.

벌판에 서서 돌아다보는 논밭들은 그저 감개무량합니다.

해지는 땅 끝에 서서 그윽하게 저무는 햇살의 잔물결을 응시합니다.

모든 것이 한 순간의 떠남을 위한 놀이였음을, 행복한 낙법놀이에 불과한 것을,

생육과 낙하가 반복되는 지리한 생의 한 자락이었음을 이제서야

깨닫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지금쯤이면 도착한 그곳에서

바라보는 이 땅에 대한 소감은 이렇지 않을까요.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듣고 비통한

마음에 하염없이 흐르던 눈물을 훔쳤습니다.

오늘 점심은 극심한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해 배가 터지도록

먹고 토하고 먹고 토하고를 여러차례 반복하며, 뭔가를 자꾸 지우고 잊어보려고

애를 썼습니다. 내가 오늘 그를 기억하는 이유는 누구보다 그의 정권말기, 그를 싫어했던

저였기에 그렇습니다. 지금 그의 실존적 죽음앞에, 나 또한 책임을

방기한 자로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죄인입니다.

 

그러나 이제 나는 당신의 서거를 통해 배웁니다.

현실속에 놓여진 힘없는 약자로서, 기득권과 맞서 싸운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 것인지, 기득권을 구성하는 조중동, 더러운 언론과 재벌의 공생구조.

로비속에 호가호위하는 권력자들의 구조가 그림처럼 머리속에 각인됩니다.

구조가 보이면 헛점이 보이고 싸움을 걸기 쉬워집니다. 영혼을 바쳐

우리에게 매트릭스를 보여준 당신.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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