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패션과 사회

가해자들의 공화국-조중동의'화해와 화합'

패션 큐레이터 2009. 5. 25. 22:09

 

프레데릭 레이턴 <로미오와 줄리엣의 죽음 뒤, 카퓰렛과 몬테규 가문의 화해>

1883년 캔버스에 유채, 런던 내셔널 갤러리

 

 

세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만큼 사랑을 받는 작품도 없다. 개인과 개인의 사랑. 그 불가능성이 주는 영원한 매력과 슬픔. 그 속에서의 죽은자를 통한 화해와 용서. 로미오와 줄리엣은 우리에게 비극의 전형을 가르치는 교본이다. 빅토리아 시대의 거장 프레데릭 레이턴이 그린 <로미오와 줄리엣의 죽음 뒤 카퓰렛과 몬테규 가문의 화해>는 바로 문학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불구대천의 원수인 이 두 가문이 화해하기 까지, 소중한 것들을 잃어야 했다. 

 

대통령이 서거하신지 3일째. 국민장을 치루고 그는 역사의 한켠으로 물러난다. 그가 남긴 유서의 내용을 통해 조선일보,중앙일보,동아일보 등 지배언론은 국민들에게 화해와 화합을 연일 당부한다.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우리는 소중한 대통령을 역사의 한 페이지로 넘겨야 했고, 그를 물어뜯어 죽이지 못해 안달했던 언론들은 하나같이 화해와 화합의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그들이 말하는 대의, 화해와 화합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것은 아니다. 그 순서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봉하마을에 취재차 간 기자들과 방송차량에 대해 쓴 소리를 하는 마을 주민을 거론하며 이는 죽은이의 뜻이 아닐거라며 질타하는 조중동은 순서가 잘못되어 있다.

 

단 화해와 용서를 말하려면, 적어도 억겁의 슬픔에 젖은 이들의 시선 속에 우리가 어떻게 비추이고 있는지 생각하자는 것이다. 그것이 화해를 향한 첫번째 발판이다. 관계회복을 위해 반드시 용서란 과정을 거쳐야 한다. 영어의 어톤먼트(atonement)를 생각해보자. 속죄란 뜻의 이 단어를 at onement로 나누어 보면 속죄란 신과 인간이 하나의 동일선상에서 만난다는 뜻이다. 창조주와 피조물이 하나가 되고, 가해자와 피해자가 하나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 그것이 속죄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세상에 대한 속죄로 받아들이는 것 동의한다. 그렇다면 바로 그를 물어 뜯어죽이지 못해 안달한 거대 언론사들 또한 그에게 속죄하고 세상에 속죄해야 한다.

 

그래야만 하나가 된다. 신 앞에 실존적인 용서를 구하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철저한 자기반성 없이 신 앞에 용서와 화해를 구하는 것은 가해자들의 거짓 논리일 뿐이다. 언제부터인가 이 나라의 교회는 무조건 신을 믿으면 '죄사함을 받는다'라고 가르친다. 문제는 신의 은혜를 이야기하는 것은 옳으나, 여기엔 가해자를 위한 용서의 말만 있고, 그 가해자로 부터 찟겨진 피해자에 대한 배려는 전혀 찾아볼수 없다. 이건 서구 신학의 태생적 한계다.

 

바로 백인중심주의 신학의 한계다. 타자를 무시한 처사다. 오로지 믿음으로만 의인이 된다는 칭의론을 문제삼는 건 바로 이런 이유다. 믿음을 통해 구원을 얻는 문제에만 골몰했지, 가해자가 되어 악행을 저지르고 여기에 희생된 사람들의 탄원은 도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신학자 위르겐 몰트만은 가해자가 스스로 '난 구원받았다'라고 말할수 있는 논리가 서구신학의 모순이라 지적한다. 그는 피해자에게 비친 자신을 바라보고 인식하는 데서 회개가 출발함을 지적한다.

 

그 후에 그가 자행한 행위에 대해 진정한 용서를 피해자에게 구하는 구체적 행위가 요구된다. 자기 반성이 없는 가해자들이 즐겨쓰는 말이 바로 '화해와 용서'다. 이 두 단어 모두 매우 실존적인 체험을 요구한다는 사실을 언론사와 해당기자들은 모르는 것일까 아니면 애써 눈을 감는 것일까. 진정한 자기반성이 필요할 때다. 조중동 지배언론들은, 대통령의 서거와 유서에 남긴 말을 읽으며 이제까지 굽었던 것을 펴기 위해 상호간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통렬하게 반성하기 바란다. 자기 반성이 없이 영혼을 가진 언론이라 지칭해선 안된다. 그것은 철저한 위선이다.

 

대통령에게 진심어린 예우를 입으로 약속한 이 대통령의 위선은 8천명이 넘는 전경을 동원, 조문객들을 가로막는 비상식의 옷을 입었다. 빨리 그 죄의 옷을 벗고 그가 진정한 크리스천으로서 속죄와 대속을 위해 손을 모으는 자가 되길 바랄 뿐이다. 나는 노무현 대통령이 남긴 유서가 진정으로 우리 사회의 이제까지의 반목의 역사를 넘어 화해의 지점으로 가려는 진심이라고 믿는다.

 

이 진심의 빛깔이 퇴색하지 않기 위해서는 진정한 상호간의 속죄가 필요하다. 그 속죄과정이 없이 화해를 말하는 자. 의롭다 칭함을 받으려는 자. 그들은 모두 절대자의 시선에서 용서받을 수 없는 위선자들이다. 알 권리를 위해 뛴다면서도 정작 사실을 자신의 정치적 이해관계 속에 용해시켜 한 개인을 '존엄사로 몰아간 죄. 범죄 앞에서 저널리스트들은 반성해야 한다. 조중동은 사설을 통해 국민에게 화해와 회복을 설득하기 전 그대들의 존재론적 범죄에 대해 속죄하길 바란다. 그것이 먼저다. 더 이상 이 땅이 가해자들의 공화국이 되지 않기 위해, 자기반성이 필요한 집단이여. 양심의 목소리를 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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