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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드카를 마실 땐 작업금지(?)-일러스트레이터 밥장님 인터뷰

패션 큐레이터 2009. 5. 15. 00:45

 

 

 

일러스트레이터 밥장님과 열혈 팬인 두 여성분과 함께 홍대로 갔다. 밥장님 소개로 수제 햄버거 레스토랑에 도착. 오른편이 일러스트레이터 밥장님이다. 부산 센텀시티의 벽화를 비롯, 다양한 삽화작업을 보고 있자면 눈이 부시다.작업내용이 선연하고 대중성까지 확보하고 있는 일러스트계의 블루칩 작가, 밥장님의 인물 스케치와 인터뷰를 올린다.

 

 

밥장님의 일러스트레이션 작품 & 영화 <검은땅의 소녀와> 포스터

 

일러스트레이터 밥장님의 작품을 알게 된 건 우연하게 본 한편의 영화 때문이다. 종로의 작은 독립영화 전용극장. 대부분 사진작업으로된 포스터와 달리 한편의 일러스트 그림이 보였다. 폐광촌과 그 속에서 생존을 위협받으며 내일을 잃어버린 사람들. 영화 <검은땅의 소녀와>는 이제까지 본 광산촌을 주제로 한 외화들, 가령 <브레스트 오프>나 <빌리 엘리어트> <훌라걸스>에 비하면 매우 어두운 정조를 가진 작품이다. 탄광촌에서 살아가는 가족의 이야기인데, 그 중 극단적 선택을 위해 떠나는 소녀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강원 태백의 풍경은 전경은 먹과 펜으로 그린 검정의 나라다. 꼭 탄광촌을 상징하기 위해 짙은 블랙을 사용한 것은 아니다. 영화 내 의미에서 볼수 있듯 비정규직을 비롯한 사멸해가는 산업군과 그 속에서 삶의 이중고를 겪는 사람들을 담기엔 펜화의 신산한 느낌이 제격이었을테다. 노랑색 꽃 이파리 위로 희망의 포자가 대지를 떠돈다. 희망에 대해 이렇게 선연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그의 삽화에는 유독 꽃과 소통하는 존재의 모습이 자주 그려진다.

 

 

밥장님이 그린 부천국제판타스틱 영화제 포스터와 호란의 <다카포> 삽입그림

 

두번째로 밥장님의 그림을 보게 된 건 가수 호란의 <다카포>란 에세이를 읽으면서다. '클래지콰이'의 보컬로 사회적 발언을 서슴지 않았던 꽤 멋진 뮤지션. 내가 그녀를 기억하는 방식이다. 책을 좋아하는 음악인답게 이 책에는 그녀가 쓴 33편의 서평이 실려있다. 나 또한 북 칼럼니스트로 활동하지만, 책이란 매체를 매개로 쓰여지는 글에는 글과 텍스트를 소비하는 인간의 개성이 베어나온다. 고르는 책도 다 다르고, 꼭 집어주는 특장점도 다르다. 아르토 파실린나의 <기발한 자살여행>에 대한 그녀의 서평을 읽으며 예전에 <행복하게 자살하는 방법>이란 테마로 사진을 찍었던 빌 브린스을 떠올렸다. 행간의 상상력을 채우는 밥장님의 삽화는 인상적이다. 호란의 다카포가 제목처럼 처음으로 되돌아가 연주하는 것을 의미하듯, 밥장의 삽화는 그녀의 결곡한 글이 세우지 못한 생의 여백들을 예의 펜화로 매운다.

  

 

밥장, <나의 미래는 푸르다> 80*110cm 종이에 로트링 라피도그래프와 갤리그라피 잉크

 

로트링 라피도그래프는 먹선이나 굵은 선처리를 위해 사용하는 제도용 펜이다. 밥장은 철저하게 펜을 가지고 작품을 만든다. 예전 소설가 이외수 선생님 댁에 함께 간적이 있었는데, 그때 놀란 것은 한 자리에서 펜을 떼지않고 전체 그림을 완성하는 방식이었다. 이미지에 몰입하고 있는 작가의 모습 또한 굉장한 힘을 발산하고 있었다. 그 기운이 만만치 않았다. 이제 겨우 두번을 만났지만, 마치 가수 김건모를 닮은 듯한 외모에 특유의 해박함이 어우러진다. 무엇보다 밝다. 그는 참 밝은 사람같다. 그래서 부럽다.

 

그는 경제학을 공부했다. 대기업 SK 텔레컴에서 일했다. 흔히 말하는 잘 나가는 엘리트였다. 그런 그가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행위, 즉 그림을 그린다는 일에 빠지고 급기야는 이쪽으로 조수를 타고 건너버렸다. 일과 일의 경계선이 허물어지는 풍경의 방점을 찍듯, <비정규 아티스트의 홀로그림>이란 그의 책 제목처럼, 펜 일러스트 분야에 이정표가 되었다.

 

   

 

2008년 엠볼리 브랜드에서 밥장님과 함께 콜래보래이션한 라인이다. 나는 패션디자이너와 아티스트의 결합, 그 내밀한 정서의 연금술이 만들어내는 작업라인을 좋아한다. 내가 오랜동안 꿈꿔왔고 육성하고 싶었던 것이기도 하다. 현실에서 좋은 작업을 보여주는 그들이 고맙다. 앞으로 패션 디자인은 예술가와의 협업작업이 더욱 많아질 것이라 예상한다. 옷이란 3차원의 구축물 위에 서로 자신이 구운 벽돌을 쌓아 만들어가는 영혼의 집. 얼마나 아름다운가?

 

 

밥장님이 대학로 문화거리를 위해 그렸다가 아쉽게 걸지 못한 그림이란다. 블로그를 찬찬히 살펴보면서 세로로 세워진 긴 그림을 보면서 어비산(물고기가 산으로 간다)을 테마로 그렸던 다른 삽화가의 작품을 생각해보기도 했다. <하하 미술관>의 첫 페이지를 장식한 화가인데 그녀는 혼합매체를 써서 표현했다. 실제 종이를 오려서 물고기의 형상을 만들고 배경위에 콜라주 작업 한것이라, 펜화로 그려낸 생생함과는 또 다른 쿨함이 배어나온다.

 

 

밥장님이 데려간 수제 햄버거집에서 꽤 큰 햄버거 하나를 시켰다. 두꺼운 패티와 계란, 감자의 향이 진했다.

요즘 식탐이 도저서 큰일이다. 향이 좋으면 다이어트에 대한 생각을 자꾸 보류하게 되니 큰일이다.

 

 

2차로 보드카를 마시러 갔다. 술을 지지리도 못하는 나지만, 좋은 작가를 만나는 날엔 기분이 좋아서 따라 나섰다. 술이 향긋한 것이 어찌나 잘 넘어 오던지. 덴마크산 보드가인 단즈카 브랜드를 골랐다. 세계 최초로 알루미늄 포장에 담긴 보드카란다. 토닉워터와 섞어서 마셨는데 밥장님이 일일이 만들어주셨다. 친절하고 배려도 잘하시고 여성팬들이 많을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죄송한 건 술값이 꽤 나왔을 텐데, 내가 내지 못했다. 작가와 만날땐 항상 계산을 하는데, 그날 사실 술이 어찌나 달던지 몸을 가누긴 했지만 제 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다. 다음에 뵈면 거하게 한번 사드려야지 마음먹는다.

 

함께 간 두 열혈 여성분이 밥장님을 참 좋아하는 눈치다. 그런데 어쩌랴. 보드카를 마시러 간 곳의 모토가 작업금지라니. 삽질 금지 표시가 눈에 띄었다. 하긴 주변을 둘러보니 다 쌍쌍으로 왔다. 하긴 누가 이런 근사한 분위기의 술집에 남자 혼자 와서 술을 홀짝거리겠냐만은.

 

일러스트레이터 밥장님, 본명은 장석원. 아직도 그에게 물어보지 못한 그의 애칭. 밥장의 뜻. 원래 밥장이란 경상도 사투리고 쌈장을 의미하는데 이걸 의미하는 것 같진 않고 무슨 뜻일까? 여전히 궁금하다.

 

하긴 쌈장이란 뜻을 가졌다고 해도 좋을 듯 하다. 장맛으로 먹는 이 땅의 요리답게 그의 펜 일러스트는 항상 주변의 풍광을 장맛으로 채운다. 마지막 미각의 방점을 찍듯 말이다.

 

그는 아름다운 삶의 후반전에 돌입했다. 전반전은 넥타이 부대의 일원으로 살았지만 이제 그는 펜화를 가장 아름답게 그리는 작가로서 이름을 날리고 있다. 난 개인적으로 그가 부럽다.

 

경영학과 대 경제학과, 대기업 근무, 미술에 대한 애정, 공통분모들이 밥장님과 나의 경계위에 존재한다. 차이가 있다면 나는 그림을 컬렉팅하고 작가를 키우는 일에 관심이 많고 그는 자신의 세계를 가진 작가로서 살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세상은 후자의 삶에 더 많이 주목한다. 글쓰는 일이 내가 잘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대학시절부터 매일 하루도 빼먹지 않고 A4 3장씩을 채웠다. 글을 좀 잘 쓰고 싶어서였다. 훈련해서 될 것이 있고 아닌게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한다. 정규 그림 훈련을 받지 않고도 저렇게 멋진 일러스트를 완성하는 밥장님을 보니 부러움만 가득해진다.

 

 

나도 내가 잘하는 걸 해보고 싶다. 글쓰기가 과연 내가 잘하는 것인지에 대해서 의문이다. 살아오면서 어떤 일을 했을 때 가장 많은 박수를 받았던 것은 딱 한가지. 연기를 할 때였다. 요즘은 영화 오디션이라도 한번 보고 싶다. 몸이 자꾸 아픈건, 내가 정말 욕망하는 것을 못해서일까? 이 공간에서 독자들에게 그림을 소담하게 담겨진 과일처럼 잘라 입에 넣어주는 일이 몸에 붙어버린 요즘, 도전은 참 힘들다. 툭하면 필름 메이커스 사이트 들어가서 오디션 정보를 찾는 내 자신에 대한 소감이다.

 

어찌되었든 밥장님을 만난 토요일은 행복했다.......다음에도 꼭 뵙고 작업에 관한 이야기들을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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