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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의 논객 진중권을 만나다-거북이가 달리는 시간

패션 큐레이터 2009. 6. 16. 11:18

 

 

 

S#1  해를 등지고 논 시간들

 

시간은 상대적이다. 누군가에겐 거북이처럼, 또 다른 누군가에겐 화살처럼 흐른다 누군가를 만나는가에 따라, 시간의 구성요소인 템포와 지속은 형질을 달리한다. 멋진 사람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대화적 관계는 결국 나 자신에 대한 반성으로 이어진다.

 

어제 저녁 진중권 교수를 만났다. 그는 항상 분주하다. 강의와 저술, 방송출연, 우리시대의 논객답게 그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해답을 두려워하지도, 혹은 피하지도 않는다. 3시간의 인터뷰 시간은 마치 아치형 궁륭의 정점을 향해 한껏 당겨진 묵언의 화살처럼 흘러간다.

 

나는 개인적으로 진중권을 논객대신 미학자로 기억한다. 대학시절, 타타르키비츠나 먼로 비어즐리가 쓴 서구의 미학사를 열심히 읽곤 했는데, 용어 하나하나가 어찌나 난해한지 이해가 쉽질 않았다. 그걸 풀어 쓴 같은과 김문환 교수의 미학책은 더 어려워서, 역시 미학은 나 같은 범인이 취미로 볼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란 방증만 넓혀야 했다.

 

그렇게 어두운 방에 갖혀 균질하지 않은 벽면을 촉수로 더듬고 있던 시절, 그가 쓴 <미학 오디세이>를 만났다. 충격이었다. 미학이 이렇게 즐거운 것이었다니! 이후 난 그의 팬이 되었다. 그가 쓴 책은 중간저자로서 아카데미에서 벌어지는 개념의 성찬들을 쉽게 풀이해 입속에 떠넣어주었고, 그로 인해 세상을 보는 시각과 견해의 스펙트럼도 확장된 점. 내가 작가로서 그에게 가장 감사하는 부분이다.

 

명징하고 이해가 쉬운 언어로 쓰여진 담론은 그 자체로 소중하다. 이해와 소통을 위해 언어를 조탁하는 것이 학자들에게도 필요하다는 것. 그런데 권위에 얽매인 학계는 이런 시도를 좀처럼 하지 않는다. 학제간적 접근과 통섭은 대중을 위해 다양한 기제로 이해를 넓히려 노력한 이런 사람들을 통해 건축된 셈이다. 이번 한예종 사태에 대해서 논평을 부탁하자, 그는 지금의 한예종 사태를 그저 "예술 기능인을 공장에서 통조림처럼 찍어내려는 행위"라고 말했다. 동의한다. "1970년대 세계 기능올림픽을 휩쓸었다고 자랑하던 한국을 보자. 기능은 있되, 원천기술이 없어 항상 돈을 주고 사오고 배워야 했던 우리들이다. 예술또한 다르지 않다. 선진국은 이제 R&D 조차도 아웃소싱을 하고 철저하게 자신들은 미디어랩에서 상상력의 영역을 설계한다. 눈에 보이지 않던 비가시적인 것에 물질을 입히는 힘. 상상력은 바로 예술과 기술의 통섭을 통해서만 이루어진다"1. 대학의 연구능력을 민영화화고 '애니콜학과'를 만들어 기업에 최적화된, 그러나 브랜드의 소멸과 더불어 사라질 노동자를 찍어내는 기능을 대학에게 요구하는 것. 이것이 바로 한예종을 통해 우리사회에 던져주는 현 이명박 정권의 민영화 담론의 실체다.

 

S#2 변희재를 위한 변명, 그가 진중권에게 집착하는 이유

 

미디어발전연합(이하 미발련)의 변희재 대표는 그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겠다고 발혔다. 인터넷 공간에서 화자되는 듣보잡(듣도 보도 못한 잡것)이란 용어로 자신의 명예를 훼절시켰다는 것. 문제는 글을 쓰면서 아직도 변희재가 누군지 모른다는 점이 답답할 뿐이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듣보잡 대신 어들잡(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 잡것)이란 애칭을 써야 한다는 견해도 눈에 띈다. 존재감이 없던 그를 인정하고 한발 물러나 그의 정치적 횡보를 이해하자는 "옛다 18원"류의 대응방식이다. 미발련의 대표로 보수 우파의 미디어 정책을 조정하고 있다는 것. 최근 한예종 폐지를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는 점 정도가 전부다.

 

 

 

심리학의 욕구단계론은 인간이 욕구를 충족하는 과정에서 개인의 행동이 형성된다고 주장한다. 욕구와 동기형성간의 관계를 생리적욕구-안전욕구-애정욕구-존경욕구-자아실현 순으로 사다리 형태로 위계를 이룬다고 말하는 이론이다. 변희재의 행동은 이 이론의 정확한 사례다. 변희재 대표는 진중권에서 많은 지적 시사를 얻었다. 안티조선 운동을 하는가 하면 강준만 교수 휘하에 들어가 애정의 욕구도 채웠고, 민주당과 함께 일하기도 했다. 지금은 미디어법에 대한 국민의견을 수렴하는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의 한나라당이 추천한 위원으로 공영방송의 민영화를 위한 주장을 하고 있다. 당과 사회적 정체성을 무수히 바꾸면서도, 소속의 욕구를 놓지 않았던 그가, 이제 타인으로부터의 인정의 욕구를 드러낸다. 나는 그를 철새같은 인간이라 말하지 않으련다. 현 정권이 강조하는 노동유연화를 스스로 실천한 것 뿐이다. 

 

S#3 진중권과 변희재-예술은 좌와 우를 넘는다

 

존경했던 이에게 인정을 못받으니 땡깡을 부리는 수준으로 퇴행2하는 행동. 변 대표의 진중권이란 타자를 통해서만 이해되는 상황은 바로 이러한 심리와 연결되어있다. 그를 라이벌로 생각하며 이용하고 살려두어야 하는데, 법적 고소라는 정말이지 '고소를 금치못하는' 유치한 행동으로 자신의 욕구를 채우려고 한다. 이것이 문제다. 라이벌을 삭제하는 순간, 그의 정체성도 부인되기 때문이다. 변희재가 진중권 교수를 한예종에서 끌어내리기 위해 주장한 것이 다 틀린 내용으로 밝혀졌다. 교원설치법에 따라 겸임교수의 역할이 실기에만 국한된다는 주장3, 강의를 하지않고 돈을 부당수취했다4고 했지만 감사 자료를 보면 부당지급이라고 되어 있다. 거기에 전공불일치를 주장하며 초빙교수 채용이 부당하다고 말한다. 이건 진중권이 사회적으로 갖고 있는 영향력에 대한 철저한 폄하고 의도적 정보 흘리기다. 진중권은 지속적인 디지털 미학연구의 중심에 서 있었다. 최근 출간된 <미디어아트>는 세계의 최첨단의 미디어아트와 테크놀로지의 연구자들을 인터뷰한 내용을 담았다. 4년을 기약했던 U-AT 통섭사업의 결과물로 나온것이다. 이제 1년을 막 넘은 시점에서 두 권의 두툼한 연구서는 치열한 저자의 사유와 인터뷰이들의 열정이 담겨 있다. 본인의 돈으로 책을 만들었다. 이 점또한 예산유용을 함부로 추정해 몰아붙였던 변희재의 실수5로 남게 될 것 같다. 누군가를 칠때는 혐의가 될 만한걸 분명하게 짚고 리서치 하는 능력이 있어야 했는데 이 또한 변희재는 부족했던 것 같다.

 

 

변대표에게 묻고싶다. 백번 양보해서 이제 우파가 집권했으니 우파교수가 속속 문화계를 장악해야 한다는 말. 인정한다. 그러나 예술이란 건 결국 "우파건 좌파건 보여줄수 있는 게 있어야 된다. 그래야 정체성이 인정되고 그 능력의 인정 위에서 새로운 예술을 건축하지 않겠는가. 그러니 변희재 대표와 문화미래포럼의 관련 교수들은 지금까지의 좌파들의 결산물을 뒤엎을, 가히 전복이라 할만한 성과물과 작품을 실력으로 보여주길 바란다. 그것이 바로 현 정권이 주장하는 시장경쟁주의의 핵심, 자유경쟁이 아닌가 말이다. 왜 시장이 정부의 기능보다 우선한다고 말하는 분들이 정작 시장의 냉철한 논리를 빗겨나려 하는 지 모르겠다"고 진교수는 자신의 주장을 갈무리한다.

 

변희재씨는 한때 진중권을 사숙했던 걸로 안다. 나라도 그랬을거다 그만큼 진중권이 이론계에 남긴 영향력의 그림자는 크다. 진중권이란 해를 등지고 놀던 이가 하루 아침에 멸시로 목소리를 바꾼다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 사랑후에 남는 것들이 뭐길래. 누군가는 사랑을 해 성숙하는 반면 누구는 아이의 심정속에 자신을 고착시킨다. 내 사랑의 흔적이 아팠다면 쓸쓸한 조락의 시간, 영혼의 뜨락에 떨어진 젖은 잎파리들을 곱게 담고, 따스한 햇살에 말리면 될 것을. 누군가에게 겨눈 칼이 다시 자신을 향하게 될 거란 걸 왜 모를까?

 

자 이제 글을 마치자. IPTV와 DMB를 포용하는 디지털 미디어기술의 발전을 도모한다는 미디어 발전연합. 변희재의 노력에도 박수를 치고 싶다. 단 신기술이 들어가는 이상, 기존 미디어대신 新자만 붙여 신미디어 발전연합으로 개칭해준다면 더욱 미래지향적인 단체의 이름이 될듯 하다. 줄여서 신발련(발음주의 요망) 신발련 대표 변희재의 정치적 횡보가 궁금해지긴한다. 듣보잡의 수준은 넘어선거다. 그렇다 어들잡이 된거다. 인정한다.

 

오늘 따라......사무실 수직 블라인드 틈새로 보이는 아쿠아마린빛 하늘과 뭉게구름이 곱다.......웃자. 그래 웃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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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년 6월 16일 진중권과의 인터뷰 내용 요약 [본문으로]
  2. 인간은 채우지 못한 욕구를 여러가지 방법으로 해소하는데 여기엔 퇴행과 체념, 그리고 고착이란 행동이 있다. 퇴행은 자신의 내면적 좌절감을 미성숙한 행동으로 전환, 어린아이와 같은 행동을 취함으로서 건설적 행동을 포기하는 상태를 말한다 [본문으로]
  3. 설치령 2조(“예술실기 및 예술이론을 전문적으로 교육”), 학칙 2조(“예술실기와 이론을 교수”), 학칙 17조 1항(“특수경력의 소유자”), 학칙 17조를 위한 객원교수채용규정 제7조(“1. 강의 및 실기 지도 2. 특별강의 및 세미나 3. 학생실기 및 연구지도 4. 전임교수와 공동연구 5. 본교가 지정하는 연구과제 수행”)에 의해 임용. [본문으로]
  4. 문화부에 보낸 공문을 열람해 봤는데, 학칙 제13조 2항(“총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교수시간의 일보를 면제하거나 연구활동만을 전담하게 할 수 있다.”), 학칙 제17조 3항(“객원교수는 위촉 기간 중 전임교수와 동등한 대우를 받으며”) [본문으로]
  5. 책의 제작비용은 출판사가, 원고작성 비용은 저자가 부담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