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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이외수 선생님을 만나다-감성마을에서 보낸 하루

패션 큐레이터 2009. 2. 23. 08:16

 

 

하늘 아래, 가장 맑은 천국, 그래서 화천이라 이름 붙인

작은 시골마을을 향해 차를 몰았습니다. 표지판에 쓰인 것처럼

물고기가 그려진 방향으로 쭈욱 나아가면, 소설가 이외수 선생님의 자택이 나옵니다.

 

 

선생님이 살고 계시는 직사각형 세개를 연결시켜 놓은

집입니다. 콘테이너 박스 같은 느낌을 준다고 하던데, 제가 보기엔

극도의 단순함과 간결함이 베어나와서 좋더군요.

 

 

집으로 들어가는 한 켠에 놓여진 시문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햇살이 좋은 오후, 푹신한 그네 의자에 앉은 사모님과

함께 동행했던 미루님. 두 분 모습이 너무 편해보입니다. 사모님도 감성이 풍성하신

분이라는 걸 느꼈습니다. 사택을 둘러싼 산새와 빛깔을 설명하시는 데

그 묘사하는 방법이랄까,  선생님 못지 않은 힘을 갖고 계셨어요.

"연두빛이 차오르는 시간이 좋다"는 말씀 속에

녹아 있는 화천의 산새가 정교하게 그려져 갑니다.

 

 

거실 한켠에 놓여진 오래된 녹색 책상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옆에는 빨강색 우체통도 있어서 편지를 넣어 전달할수 있도록 해놓았습니다.

 

 

둘째 아드님이 12살때 만들었다는 점토찰흙 작품입니다

이외수 선생님과 사모님의 모습이 아주 인상적이죠. 한복은 단아하게

입으셨던 모양입니다. 점토로 단순하시킨 캐릭터가 실제 선생님

내외분의 이미지를 잘 살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이외수 선생님이 작업하고 계신

크레파스 그림이 보고 싶었습니다. 수장고에 작품을 가져다두셔서

다 보진 못했습니다. 크레파스 작업과 관련된 어려움과 그림작업의 비밀을

편하게 알려주셨는데, 그 내용은 비밀에 붙입니다.

 

이외수 선생님은 항상 손님이 오면 거실에서

둥그런 찻잔에 달보르레한 향 가득한 황차를 담아 대접하시죠.

벽면에 놓인 수묵 그림과 그 아래 그릇들이 보이죠. 두번째는 쇼나조각입니다.

예전 아프리카 박물관을 소개하며 쇼나 조각에 대해서 설명을 했습니다.

그 내용을 링크 시키도록 할테니 읽어보세요.

 

아프리카 박물관에서-쇼나 조각에서 피카소의 향기를 느끼다

 

 

우리를 위해 황차를 내셨습니다. 차잎과 탕색, 차잎 찌거기를 일컫는

차저까지 모두 교교한 달빛을 머금은 황색을 토해낸다 해서

달빛차, 황차라 한다지요. 양의 기운이 가득한 차여서 공복에 마셔도 쓰리지 않고

포만감까지 선사하지요. 몇잔을 마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마치 와인을 마시듯, 혀끝에서

차의 기운과 향을 돌려봤는데, 그 느낌이 상큼합니다. 예전 서암사에서 마신 황차엔 도암스님께서

복사꽃을 따다 그 위에 얹어주셨었지요. 이날은 선생님이 손님을 맞이하시며

보여주신 환한 미소가 복사꽃이 되어 찻물위의 잔영이 되었습니다.

 

 

사모님께서 선생님의 작업실과 볕이 잘드는 창가의 풍경을

보여주셨습니다. 참 오랜 세월동안 이외수 선생님의 작품을 읽었던 독자답게

모든게 궁금했습니다. 칼이란 소설을 도대체 몇번을 읽었던가요, 소설속 주인공처럼

민첩하게 침을 날릴수 있는 도력이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었죠.

 

『하악하악』을 읽으며, 감칠 맛 나는 세밀화와 더불어 녹여진

삶의 아포리즘을 곰삭이며 마음에 한겹 한겹 영혼의 피륙을 접어 쌓았던 일.

『여자도 여자를 모른다』를 읽으며 타자화된 여성을 어루만지는

언어의 빛깔과 시선을 아직도 따듯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최근엔 『글쓰기의 공중부양』을 읽으며 만연체로 일관된 제 형편없는

글쓰기를 다시 한번 되집어 보는 계기로 삼고 있습니다.

 

 

저는 이외수 선생님의 시화집을 참 좋아합니다.

시와 그림이 별개의 개체가 아닌, 하나의 몸이 되어 빚어낸 화두는

시대를 읽고 그 속에 아픈 응어리를 어루만지는 치유의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이외수 선생님은 문사철을 으뜸으로 알았던 문인전통을

가장 현대적으로 연결시킨 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한편에 그림에 담는 짧은 경구

그 시편의 정신은 이미지화된 정신의 풍경을 드러내고, 사유된 자연을

소유하지 않고 타인과 나누는 방식을 보여주지요. 선생님의

글에 맑고 고운 자연이 녹아있는 이유입니다.

 

 

선생님께 원고지에 직접 사인도

받았습니다. 표구해서 걸어놓으려고 합니다.

선생님이 항상 자신의 글과 더불어 낙관을 찍어주시는 모습이 좋습니다.

글을 통해 마음에 영혼의 붉은 도장을 찍듯, 한자 한자 정성스런

고운 비단채 도장 케이스에서 꺼낸 낙관을 꾸욱 눌러 찍어주셨죠.

사모님이 예쁜 컵도 선물로 주셨습니다. 곱게 잘 쓰겠습니다.

 

 

햇살아래 환한 모습의 작가를 봅니다.

한 가지 일에 평생을 건 사람에겐,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는

충고는 의미가 없다는 말. 왜냐하면 그에게 있어 오늘과 내일이란 시간성의

의미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 언제나 그 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최근 패션 레이스의 역사를 공부하고 싶어 700페이지가 넘는

연구서와 레이스를 삶의 은유로 사용한 주요한 문학작품을 구매했습니다.

 헨리 제임스의『The Wings of Doves』『레이스 뜨는 여자』레이스의 패턴을 보고

미래를 점친다는『레이스 읽는 여자』에 이르기까지, 서구 복식의 미적 상징인

레이스를 사유 하려 합니다. 언제나 복식에 대해 생각하는

역사사가 꼭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지요.

 

글을 쓰는 것을 하늘이 내린 일로 받아들이고

글쓰는 이의 행복이 읽는 이의 기쁨이 될 때까지, 문장을

어루만지는 언어의 조형자인 소설가, 우리시대의 문장 이외수 선생님을 뵌

하루의 시간이 너무 행복하기만 했습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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