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으로 말해요
-사진 속 ‘손’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들
S#1 손이 우리에게 필요한 까닭
손은 다양한 기능을 발휘하는 신체 기관입니다. 엄지 손가락을 들어 추켜 세우거나 동그랗게 구부려 지친 친구를 격려할 수도 있고, 새끼 손가락으론 약속의 의무를 표현하고 중지를 들어 남을 비난하기도 합니다.
손을 포갠 기도의 손에는 강한 염원이 담겨 있고, 누군가에게 내 의지를 관철시킬 때 손을 이용해 명령을 내립니다. 손은 나 자신과 타자를 향해 문을 여는 첫 번째 기관입니다.
“손가락이 열 개인 것은 어머니 뱃속에서 몇 달 은혜 입나 기억하려는 태아의 노력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라는 함민복의 짧은 시에 담긴 마음처럼, 손은 감사함을 표현하는 매개입니다. 힘을 실어 감정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은 역시 손의 귀중한 존재 이유입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손 바닥엔 삶을 예지할 수 있는 생의 지도가 그려져 있으며 이 운명의 금을 따
라 살아내야 할 인생의 밑그림을 타진합니다. 이도 저도 안되면 손등으로 떨어지는 무료한 하오의 따스한 햇살을 즐기면 되죠. 손의 기능은 너무나도 넓고 큽니다.
예술가의 손을 보신적이 있나요? 그들에게 손은 작업을 하는 일차적인 도구이자, 의미를 담아내고 결정적 순간을 포착하는 매개입니다.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고, 조각을 하는 일, 이렇게 예술작품의 첫출발은 바로 손에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최근 대림미술관에서 본 <Speaking with Hands> 전시는 입술로 표현하지 못하는 손의 따스한 역할과 예술의 원천으로서의 손의 기능에 대해 살펴볼 수 있는 전시였습니다.
마틴 파 <빵을 든 소년> 1993년
세계적인 사진의 거장 로베르 드와노가 포착한 화가 피카소의 손이 있는가 하면 1960년대 권투영웅 루이스 조의 불끈 주먹을 쥔 주먹이 있습니다. 특히 피카소의 손을 가늘게 구운 스틱빵을 이용해 익살스럽게 표현한 사진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지요. 예술가에게 손은 작업을 통해 생계를 꾸려가는 일차적 수단일 테니까요.
반면에 1990년대 중반 영국의 다큐멘터리 사진 작가였던 마틴 파가 클로즈업으로 포착한 소년의 손에 담긴 빵에는, 허물어져가는 영국의 복지제도에 대한 비판이 담겨 있습니다. 신 자유주의를 표방했던 대처리즘이 허물어진 영국, 그 속에서 거리에 내 몰린 노동자들에 대한 시선, 약자에 대한 사회적 배려로 뭉친 새로운 영국을 소망하는 작가의 양심이 한 컷의 사진 속에 담겨 있습니다. 전시된 많은 사진 작품 중에서 제 시선을 끈 건 파충류 사진만 평생 찍었던 로이 피니의 <점자읽기>란 작품이었습니다.
좌) 로이 피니, <점자 읽기(Reading Braille)> 1936년 우) 리처드 아베든 <권투선수 루이스 조> 1963년
장방형으로 나열된 6개의 점으로 구성된 침묵의 언어, 점자를 읽어가는 소년의 손이 정중동의 공간을 침투하며 보여주는 메시지는 다름 아닌 희망입니다. 전장에서 빛이 없는 어둠 속, 병사들의 소통을 위해 나폴레옹의 명령으로 만들어진 이 점자의 체계엔, 부재하는 빛의 세계 속에서도 세상과 대화하려는 인간의 오롯한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점으로 그려진 언어를 읽어가는 소년의 손이 아름다운 것은 바로 이런 이유입니다. 희망을 믿고 포기하지 않는 행위의 은유이기 때문이지요.
메리 앨런 마크 <마더 테레사> 1981년
두 번째로 제 망막의 틈을 비집고 들어온 작품은 사진작가 메리 엘런 마크가 찍은 마더 테레사 수녀의 손입니다. 손에는 그 사람의 인생이 담겨 있다는 말은 바로 그녀의 손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싶더군요. 오랜 세월 헌신과 봉사로 점철된, 손 마디마디에 배인 삶의 노정 속엔 인간에 대한 사랑이 산으로 부식한 판화처럼 깊게 각인되어 있습니다. 포개어진 손, 기도하는 손에 담긴 그 사랑의 깊이는 얼마나 큰 것일까요? 입술의 말로 할 수 없는 손의 거룩함이 느껴지는 사진입니다.
알프레드 스티글리츠
<골무를 낀 손(Hands with Thimble)>
1920년 ⓒ 2004년 조지아 오키프 재단
마지막으로 제 시선이 멈춘 작품은 알프레드 스티글리츠(Alfred Stieglitz)의 <골무를 낀 손(Hands with Thimble)입니다.
이 작품에서 그는 자신의 부인이자 여류화가인 조지아 오키프의 손을 촬영합니다. 조지아 오키프는 가냘프고 연약한 꽃잎을 통해 여성의 애틋한 에로티시즘과 모성적 세계들을 드러냈던 화가였습니다.
사진 속 그녀의 손은 꽃을 그리는 대신, 골무를 끼고 바느질을 하고 있습니다. 사진 속 직물은 마치 그림을 그리기 위한 캔버스 같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연약한 화가의 손을 보호하기 위해 낀 골무에선, 실로써 찢어진 상처들을 아우르고 위로하는 손의 또 다른 기능을 발견합니다.
이 전시는 원래 불(Buhl)이라는 뉴욕출신의 자선사업가가 15년간 모은 ‘손’을 테마로 한 작품을 선 보인 것입니다.
하나의 테마를 집요하게 수집하고 모았다는 것. 그 자체로 컬렉터의 손은 소유의 기능을 보여주는 일종의 상징입니다.
더불어 치유와 격려, 약속, 기도, 거절, 의문, 부끄러움, 의심, 지도, 축하, 환영, 슬픔, 고요함 등 설명하기엔 벅찰 정도로 수많은 생의 기능을 대신하는 손을 다룬 작품을 봄으로써, 지금 이 자리, 우리들의 손으로 무엇을 하게 될까를 성찰하고 되묻게 합니다.
다이안 아버스의 사진 속 소년의 손에 쥐어진 사제 수류탄의 모습. 아이의 눈을 속일수 있는 어른은 없다지요. 요즘 나이가 들어가며 도덕적 책임감을 느낍니다. 아이의 손에 경쟁을 위한 도구로서 집단적 죽음으로 몰아가는 수류탄을 들게 해서는 안될 일입니다. 아이들의 손에 희망의 꽃을 쥐어주길 소망합니다.
고든 파크, <마틴 루터 킹>
긍정의 삶을 위해 손가락을 모을 것
누군가를 만지고 싶은 것은 사랑이 터치를 통해 완성되는 것이란 진부함 때문만은 아닙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천재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손의 따스함이 묻어나지 않는 모든 그림은 거짓이다”라고 말합니다. 이론적으로는 배워도 실제의 삶에서 그 말의 깊이를 실천하기란 쉽지 않지요. 손에서 배어나는 타자를 향한 그리움의 촉수가 온몸 가득 터질 듯 흘러내리다 양손 끝에 오롯이 모여들기에, 그리움을 그리워하며 그림으로 완성하게 된 것이겠지요. 여러분에게 있어 손의 기능은 과연 무엇입니까? 글을 읽는 지금, 여러분은 두 손으로 무엇을 했습니까? 여러분의 손은 어디를 향하고 있습니까?. 베풂과 희생, 공존과 같은 긍정의 삶을 향하고 있습니까? 소유에만 집착한 나머지, 다른 소중한 기능들을 스스로 퇴화시키고 있진 않습니까? 그렇다면 반성해야 할 일입니다. 사진 속 ‘손’의 이미지들을 마음속에 꼭 간직해 보세요. 여러분의 마음 속 숨겨진 손의 힘을 꺼내 볼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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