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경_手 놓다_핀_90×101.3cm_2009
예전 초등학교 시절, 마루바닥을 실내화를 신는 것이 답답해
양말만 신고 걷다가 가시에 박힌 적이 여러번 있다. 오래된 초등학교의 시설들이
목조가 많다보니 생긴일이다. 가시에 박혀 선생님에게 울며 달려가면
선생님은 항상 가슴에서 핀을 꺼내 뼈족한 끝으로 톡톡 가시를 쳐가며 빼주시곤 했다.
인경_手 놓다_핀_130×98cm_2009
작가 이인경의 작업 속엔 '핀'을 매체로 그려낸 정신의 풍경이 담겨있다.
선인장의 가시나 이끼, 식물의 대궁을 핀으로 연결, 이를 자신의 주제 속에 담는다.
수많은 핀들이 누적된 스티로폼 위엔엔, 그 위를 관통하는 찔림의 순간들이
있으며, 그 찔림을 통해 흘린 혈흔이 남아 있는 것 같다.
인경_手 놓다_핀_38.5×33.3cm_2009
자수는 원래 우리내 여인들의 규방문화 중 총화를 이룬다.
한땀 한땀 수를 놓음으로써 신에 대한 정성된 마음을 나무와 꽃문양,
나아가 학, 봉황, 공작 등의 길조와 나비, 풀벌레 등으로 소재와 색채를 통해
조형예술의 미학을 추구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자수는 매듭과 연결되며 그 범위를 확장한다.
이인경의 작품은 바로 이러한 전통자수를 핀을 이용한 자수로 변용시켰다. 그 의미는
소재는 다를지언저 별반 다를수 없다. 곰삭임의 시간을 기다리는 작가의 마음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수을 놓는 것은 결국 손을 이용한 엄청난 노동의
시간이 전제되어야만 가능한 작업이다.
인경_手 놓다_핀_54.5×28cm_2009
마치 신인상주의의 점묘법 화풍을 보듯
질서있게 배열된 핀들이 누적되며 빚는 풍경은 아스라하다.
기존미술의 의미또한 뒤집는다. 기존의 회화는 캔버스란 일방적 공간의
표면에 덧대고 누적시키는 방식을 써왔으나 핀수는 표면과 배면을 함께 관통해야만
완성되는 작품이 된다. 핀과 핀이 접촉되는 부분이 서로 엉기지 않고 또한
헐거워 떨어지지 않도록 도료를 이용해 정성스레 바르는 작업은
고된 시간이 필요하다. 이인경의 작업은 결국 시간에 대한
철학적 사유와 연결되는 지점은 여기서 발견된다.
인경_手 놓다_핀_54.5×28cm_2009
전통자수장 황순희님의 작업과정을 본 적이 있다.
자수의 역사는 한국에서 시작, 일본으로 건너갔다. 중국 위지동이전에도
한국의 자수와 아플리케가 요소로 들어간 복식에 대해 찬탄하는 부분이 등장한다.
본을 그리고 도안한다. 점과 선과 면들이 구성되는 시간은 인생에 대한
성찰과 자기 반성의 시간이 될 것이다. 풀어진 신들을 모아
색을 내며 일일히 실들을 꼰다.
실은 꼬임을 통해서만 힘을 얻는다.
많은 이들이 실을 자세히보지 않은 탓에 실의 탄성력이
여러겹으로 꼬여야만 이루어진다는 걸 알지 못하는 것 같다.
너와 나, 우리가 서로에게 엉겨갈때, 그 속에서 친밀함이 빚어내는
진정한 색이 나온다. 자수의 명장은 그 색을 오랜동안
기다리며 자신의 손으로 수를 놓는다.
인경_手 놓다_핀_90×60.6cm_2009
인간사회의 생태학도 이와 다르지 않다.
한 올의 실의 조형성에서도 이런 삶의 애환이 드러난다.
신자유주의란 망령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건, 타인의 고통에서
부정한 사회에 대한 분노를 느끼는 대신, 자신의 미래에 대한 불안을 먼저
느끼도록 하는 것이다. 이런 세상에선 타인과의 연대나 연민의 감각은
발생하지 않는다. 우리가 서로를 묶었던 감성의 끈들이 하나씩
풀어져 철저하게 파헤쳐진 사회. 바로 신자유주의 사회다.
반값 등록금을 위해 투쟁하기 보다 취업을 위해 스펙을
더 쌓는 것으로 개인적 불안감을 해소하는 사회. 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해 기치를 들지 않는 정규직 노동자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제와 폭력.
이 모두가 신자유주의란 가치의 확산에 따른 우리들의 모습인 것을 깨달아야 한다.
표면과 배면을 관통하는 가치, 허위자유가 우리를 배척하고 떼어놓는다.
한올의 실이 되기 전, 이미 풀려버린 존재가 되어버렸다.
다시 우리는 실이 되어야 한다.
인경_手 놓다_핀_90×120cm_2009
아슴하게 떠오르는 호롱불 빛 아래 한땀 한땀 혼을
담아 색의 배면을 완성한 이 땅의 여인들. 그 노력이 이제 우리에게
다시 필요한것 같다. 우리에게 자유란 무엇인지, 신자유를 이야기 하는 자들에게
우리가 꿈꾸어야 할 자유의 방식이 어떤 것인지를 말해야 한다.
개인투쟁만으론 올바르지도, 강한 동력을 만들지도 못한다.
이인경의 작품처럼 스티로폼 위에 균질한 질서로 배열된 핀의 모습처럼
한땀한땀, 엮이고 연대하며, 싸워야 한다. 우리의 삶이 더 이상의 식민화를
막기 위해 한올의 실과 실이 되어 만나야 하는 이유다. 우리안의 상처를
가시를 톡톡 눌어 뺄수 있는 건, 우리가 만들어낼 수 있는 핀의
힘임을 다시 한번 깨닫는 지혜가 다가오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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