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라디오 방송을 마치고 여의도에 갔습니다.
제 친구가 자산 포트폴리오를 관리해 주는데, 최근 동향도 듣고
점심이나 함께 할 생각이었죠. 여의도 봄꽃 축제 준비로 부산한 윤중로에 들렀습니다.
여의도 봄꽃 축제는 내일부터 시작합니다. 오늘 갔더니
리허설 하듯, 대민시설 관리와 준비사항 점검, 주변에 즐비하게
플로리스트들의 플라워 아트 작품을 설치하는 문제로 부산하더군요.
교통을 통제해서 오랜만에 차가 없는 도로를 여유있게
산책했습니다. 친구가 있는 사무실에 들러, 아침 나절부터 친구를 졸라
외부상담(?)을 하자는 핑계로 친구를 불러내 윤중로로 나갔지요. 테이크아웃 커피점에서
갓 뽑아낸 모카치노 두잔이랑, 쿠키 조금 싸서 걸어다니며 벤치에 앉아 마시고요.
친구가 더 좋아하네요. 남편 회사도 가까와서 퇴근길에 데이트나 하겠다며
바로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겁니다. 제가 사준 핸드폰줄을 했네요.
아이가 첫돌이 된지 얼마 안되거든요. 이 친구도 만혼이어서
초산이 늦어 고생을 많이 했어요. 친구를 위해 베냇저고리
형상으로 홍화염색 원단을 써서 줄을 만들어줬죠.
벚꽃을 보면 마치 세밀한 물방울 덩어리가 뭉게 뭉게
군집을 이룬 탓에, 구름을 연상시기키도 합니다. 하긴 일본에선 명멸하는 인간의 삶과
구름처럼 덧없는 인생의 면모를 상징해온 꽃이었죠. 불교적 사유가 배어나오는
꽃들의 쟁투, 그 속의 인간도 유한한 삶의 피어남과 짊에 대해 꽃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만화방창의 세계, 4월은 꽃의 태어남과 죽음, 그 순환의 고리를
이미지로 그려내는 달입니다. 목련꽃이 지고 대지에 하나씩 떨어지는 낙화의 시간
백련꽃, 꽃비가 내린 후 하얀시트를 깐듯한 거리 위로 분홍빛 여인의 속살같은
벚꽃이 화려한 아름다움을 발산하고 살을 부비며 분비물을 토해내지요.
만개하는 벚꽃의 세계, 그 탐미적 세상속에서
일본이 남긴 전근대의 흔적을 애써 기억해보지만, 정신적 민족주의는
꽃의 세계 속에서 길을 잃고, 불신을 보류한채, 그냥 유하게 살아가자며 타이릅니다.
윤중로 주변은 축제와 더불어 국회의사당을 일반 공개하여
시민들을 맞고 있더군요. 윤중로를 따라 걷는 길, 플로리스트들이 만든
다양한 플라워작품들을 봤습니다.
가장 인상적인 작품이었는데, 청바지 위에 진홍색 꽃이 피어납니다.
마치 젊음의 상징이자, 저항의 상징이었던 블루진 위에, 짙은 초록과 진홍색이
함께 배합되어, 젊은날의 우리들을 생각하도록 이끄는 그런 작품이었네요.
축제 전야제를 보러온 아이들의 모습이 귀엽습니다.
빨강색 원색 유니폼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석고로 만든 큰 화병이 윤중로
입구에 설치되어 있습니다. 마음속에 환한 봄꽃 담을 여백이나마 있으면 좋겠습니다.
플라워아트를 제공한 많은 작가들의 작품을 봤습니다.
눈에 들어오는 것도 있고, 평범해 보이는 것도 있었고요.
하지만 섬세하게 꽃대궁을 눌러, 봄의 포자들을
출산하는 꽃기운을 인간의 기운으로 껴안아 설치미술로 만든
몇몇 작품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바다냄새가 물씬 풍기는 작품도 있었고요.
소와 목동의 이미지를 형상화한 작업도 있었습니다.
꽃들의 화려함, 빛깔과 형태감, 그 내밀하게 조율된
균형의 세계 속엔, 오랜 세월 그 포자가 사랑하는 이를 만나 혼음에 빠지고
숙명의 에로티시즘을 꽃잎파리로 껴안아내는 시간의 격자무늬가 세겨 있습니다.
사쿠라 필때 여인을 생각한다지만, 꽃의 시대를 땅에 묻고
사랑하는 이와 죽음을 함께 하는 벚꽃의 운명은, 사랑앞에서 매일 조건과
반응을 계산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운명적인 사랑의 시작과 몰락을 동시에 보여주는
좋은 예가 될것입니다. 사랑하는 이와 같은 날 죽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30분이란 짧은 시간동안 부지런히 걸으며 사진찍으며
봄날, 아련한 저고리 고름 풀은 여인의 봉싯한 살냄새 나는 벚꽃보며
회사로 왔습니다. MBC 문화사색에서 방영된 제 촬영분을 인터넷 다시보기로
봤습니다. 왜 이렇게 얼굴이 크게 나왔는지, 인터뷰에 익숙하지 않다 보니
습관적으로 턱을 자꾸 들고 말하는 버릇이 그대로 베어나오더군요.
개인적으로 저에 관한 내용을 많이 다루어주셔서 고맙더라구요.
벚꽃 축제는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14일까지 한다는 군요.
윤중로를 다시 갈 여유는 없을 것 같습니다. 오늘은 종일 기획서와 씨름하고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해야 한답니다. 밀린 원고도 써야지요. 글을 쓰다보니 월간 미술세계같은
전문 미술잡지에도 특집으로 글을 기고하게 생겼네요. <샤넬 미술관에 가다>덕을
너무 많이 봅니다. 이 기운이 벚꽃이 사라지듯 없어지기 전에
빨리 좋은 책, 하나 예쁘게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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