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Holic/일상의 황홀

조선시대에도 꽃편지가 있었다-모란꽃이 피어나는 이유

패션 큐레이터 2009. 3. 20. 11:17

 

 

 

 

오늘 오후에 일을 마치고 30분의 여유가 생겨

근처 서울역사박물관에 갔습니다. 봄철이다 보니, 모란을 소재로 한

우리 내 소품들을 전시하고 있더군요. 옛 선조들은 봄이 다가올 때면 어김없이

모란무늬가 들어간 다양한 물품들을 만들어 현재를 축복하고

기뻐하며 즐거움을 나누었다고 합니다.

 

선비들의 방과 결혼을 앞둔 혼수용품에도 이 모란을

장식하여 생의 기쁜날을 축복했다지요. 신부가 입는 원삼과 활옷에도

이 모란무늬를 넣었고 혼례 전 양가에 보내는 청혼서인 보사주보에도 이 모란을

넣어 환하게 피어나는 행복을 그렸습니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제 눈길을 끌었던 것은 작은 나무 목판이었습니다.

 

 

흔히 시전지판이라 불리는 데, 시전지란 곧 편지지를 의미합니다.

요즘이야 이메일이 너무 보편화 되었지만 인터넷이 없던

시절, 팬시문구점에서 사는 예쁜 꽃편지를 사서 그 위에 정성스레

편지를 하던 기억이 있을 겁니다. 저 또한 그랬고요.

 

17세기 조선시대에도 이런 꽃 편지를 썼더군요.

나무 목판위에 대고 종이를 대고 찍은 후, 그 위에 시와 글을 써서

보냈다고 합니다. 누군가에게 정성스런 편지 한통

보내고 싶은 요즘입니다.

 

조선시대 실학자 이익은

"내가 보기에 모란이란 꽃은 가장 쉽게 떨어지는 것이다

아침에 곱게 필었다가 저녁이면 그만 시들게 되니, 부귀란

오래 유지하기 어렵다는 것을 비유할 만하고, 모양은 비록 화려하나

냄새가 나빠서 가까이 할 수 없으니 부귀란 또 참다운 것이 못된다는 것을

비유할 만한다".라 해서 물질적 부에 대한 맹목적 추종을 경계하는 뜻의

글을 쓰기도 했습니다. 꽃의 피어남과 짐, 그 운명에서

우리의 삶을 되돌아 보는 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옛 사람들도 모란이 가득 피어나는 편지지에

글을 썼다는데, 요즘은 왠지 종이가 그립고, 그 위에 한번쯤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을까. 선인들의

물품이 눈에 쏘옥 박히더라구요. 위의 사진은 편지를 꽂아 보관하는

'고비'라는 벽걸이 소품이랍니다. 이메일로 인간의 우편체계가 변화되면서

너무 많은 편지를 받고, 유용하지 않거나 혹은 눈쌀을 찌푸리게 하는

스팸을 받다보니, 편지 속 정성스러움은 어느새인가 사라지고

소담하게 차려놓은 듯, 예쁜 글씨로 쓴 친구의 편지를

서랍에 간직하듯, 저 '고비'에 담아 보관하던

옛 선인들이 부럽기만 합니다.

 

왜 그럴때 있잖아요. 힘들고 버거울 때

옛 친구의 편지를 다시 읽거나, 추억 속 어떤 물품을

다시 찾아보면, 그때 가졌던 기쁨이 현재의 상처를 딛고 이겨낼수 있는

힘을 주는 그런 때요. 바로 우리 생의 고비마다, 고비에 담긴

소중한 이의 편지를 꺼내 읽어보고 싶습니다.

 

퇴근길 문구점에 들러 편지지 몇개 사와야 겠습니다.

오늘 하루도 행복하세요.

 

 

417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