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1 세일러 문이 교복을 입은 까닭은
대한민국은 지금 소녀들에게 흠뻑 빠져있습니다. 원더걸스와 소녀시대를 기점으로 하는 마술같은 소녀들의 힘은 이 땅의 남자들을 휘어잡고 있지요. 소녀들은 개인이 아닌 팀을 이루어 세상에 마법을 걸고 있죠.
저는 예전 보았던 일본 만화 <세일러 문>에서 지금 한국에서 유행하는 소녀들을 이용한 인기몰이의 원형을 발견합니다. 만화가인 나오코 다케우치가 작품 속 우주에서 적들과 싸우는 소녀들의 이야기, 코드네임 : 세일러 브이를 연출하면서 다케우치는 자신을 소녀팀의 일원으로 재현했고, 편집주간이 소녀들에게 세일러복을 입히는 것이 어떻냐고 제안하면서 세라복을 입은 소녀전사가 우리에게 나타나게 된것이죠.
세라복을 입은 세일러문은 근대 일본의 군국주의적 환타지의 재현입니다. 1921년 후쿠오카 여학원의 교장이었던 엘리자베스 리가 영국풍 세일러복을 개량해 체육복으로 사용하면서 일본에서 흔히 세라복이라 불리는 복장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엘리자베스는 영국 왕실 해군에서 교환학생 시절을 보내며, 이 복식에 매력을 느꼈고 그것을 일본에 적용한 것입니다. 남자아이들의 교복인 가쿠란도 결국은 프러시아 군대의 제복에서 유래한 것이란 점. 알아두세요.
당시 국가를 위한 학생들의 정신개조의 일환으로 이 복식이 채택되면서 세라복은 일본식 군국주의를 머리 속에 주입하는 상징이 됩니다. 세일러복을 입은 전사가 되어 왕국을 타도하려는 적과 싸우는 모습. 우리는 화려한 세일러문의 짧은 스커트와 커다란 눈망울, 세일러복에 눈길을 주지만, 그 속에는 일본식 세뇌의 방식이 녹아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복식은 시대를 규정하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행동을 규제하는 기제라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물론 최근들어 교복은 개인주의를 돋보이게 하는 장치로도 변화하기도 합니다. 소녀들은 교복 스커트의 길이를 줄이거나 늘이기도 하고, 늘어난 워머를 신기도 하면서 탄력적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조직 속 개인의 매력을 발산하기도 하죠.
장 밥티스트 그뢰즈
『개와 소년』1757년, 캔버스에 유채, 월리스 컬렉션 소장
그렇다면 서양에선 세일러복을 언제부터 입었을까요? 그 의문을 풀어주는 한 장의 그림을 골랐습니다. 당시 유럽은 한창 바다를 끼고 성장하는 해상왕국들의 쟁투가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합니다. 풍속화가였던 장 밥티스트 그뢰즈는 1757년 살롱에 왼편에 보시는 한 장의 그림을 내놓습니다.
제목은 <개와 소년> 도대체 이 그림이 어떻게 세일러복과 관련을 맺는가하고 물어보시는 분이 있을 것 같습니다. 『샤넬 미술관에 가다』원고를 집필할때도 사실은 이 그림과 더불어 수병복의 역사에 대해서 썼었는데, 편집자가 그림 속 묘사가 자신이 알고 있는 수병복과 다르다는 말을 할 정도였으니까요.
그만큼 우리가 알고 있는 세일러복, 흔히 일본식 발음으로 세라복이라 불리는 옷의 원형은 영국적 전통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뢰즈의 그림 속 소년이 입고 있는 옷이 바로 이탈리아 나폴리의 수병들이 입던 옷을 축소시켜 아이들용으로 디자인한 옷이란 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이 그림의 원래 제목은 <Le Matelot napolitan>입니다. 영어로 풀면 나폴리의 수병이란 뜻이죠. 개와 함께 포즈를 취한 모습이 귀엽습니다. 당시 수병복도 스트라이프 무늬가 있었군요. 어느 나라든 수병복에는 기본적으로 스트라이프가 조금씩은 가미되어 있습니다. 여기에는 기능적인 요소뿐만 아니라, 상징적인 의미도 있지요. 선상에서의 삶은 고되고 힘들기에, 문제가 발생하면 현장에서 체벌을 하는 관행이 있었습니다. 그때 채찍으로 온 몸을 때리는데, 그때 몸에 남은 패턴이 지금 보시는 스트라이프가 되었다는 사실 조금 놀랍지 않습니까? 이렇게 옷의 패턴과 무늬의 역사에는 상징적인 의미들이 담겨 있어요.
프란즈 크사버 빈터할터 <세일러 복을 입은 앨버트 에드워드 왕자>
1864년, 캔버스에 유채, 로얄 윈저 컬렉션
복식사를 공부하다 보면 자주 만나게 되는 몇몇의 화가가 있습니다. 그만큼 그림 속 복식의 묘사가 탁월한 작가들이 있지요. 오늘 소개하는 프란즈 크사버 빈터할터는 바로 이러한 작가 중의 한명입니다. 프랑스 궁정화가로 이름을 날리면서 그는 여러 황후와 그 가족들의 초상화를 아주 멋지게 그려내 몸값을 올렸던 화가였습니다. 이 그림이 완성된 1864년 영국 해군은 빅토리아 여왕의 아들 에드워드 왕자에게 세일러복을 헌정합니다. 이를 계기로 일반 백성에게까지 세일러복에 관심을 보이게 되죠.
그림 속 옷은 현재 영국의 해양박물관에 가면 전시되어 있는데요. 그림에서처럼 팬츠와 타이 모자가 한 세트를 구성하고 있어서 통일된 매력을 보여줍니다. 그는 타고난 매력을 가진 왕자였어요. 어머니의 장기집권으로 60세가 되어서야 황제의 자리에 오르게 되지만, 바로 에드워드 왕조시대, 프랑스에선 벨 에포크 시대라고 해서 가장 아름다운 시절이라 불리던 시간을 보낸 왕자이기도 해요.
좌) 이시도어 베어헤이든 <세일러복을 입은 소녀> 1875, 캔버스에 유채, 과리스고 갤러리 소장
우) 장 자크 에네 <세일러 복을 입은 소녀> 1880, 캔버스에 유채, 40.9*33cm 개인소장
이후 세일러복은 중상류 계층을 중심으로 '미디 블라우스' 라는 이름의 아동용 일상복으로 제작되어 인기를 끌었습니다. 1901년 해군복을 납품하던 재단사 피터 톰슨이 초등학교 교복으로 세일러복 원피스를 디자인하여 판매하면서 엄청난 성공을 거두게 되죠. 이후 많은 화가들이 세일러복을 입은 소년/소녀들을 캔버스에 그리게 됩니다. 이시도어 베어헤이든은 벨기에 출신의 화가였지요. 풍경과 초상화를 주로 그렸는데, 그림 속 주인공이 된 14살 소녀의 모습이 단아한 교복을 입은 여중생들과 연결됩니다.
모딜리아니 <세일러복을 입은 소년> 캔버스에 유채
모딜리아니가 그린 <세일러복을 입은 소년>과 뒤에 설명하게 될 에곤쉴레의 그림 속 소년의 세일러 복에는 수병복의 원형이 제대로 살아있습니다. 원래 1628년 영국 해군이 개발한 이 세일러복은 1857년에 브이네크에 스카프를 매고 사각형 깃을 단 지금의 원형이 개발되었죠. 1872년해군의 평상복으로 규정된 후 해상 자위대 공식 복식이 됩니다.
에곤 쉴레 <세일러복을 입은 소년> 1913년 종이에 구아슈와 펜슬, 개인소장
사각형 깃과 스카프는 세일러복의 주요한 특징인데요. 여기에는 기능적 요소가 담겨 있지요. 특히 네이비 블루의 사각형 깃은 더러움을 감추기 위한 용도였습니다. 수병들은 오랜 항해동안 머리를 자르지 못한 채 기른 머리를 포마드를 발라 뒤로 묶고 다녔습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옷이 더러워지기가 쉬웠겠지요. 이것을 막으려고 천을 옷 위에 덧댄형태로 변하게 된 겁니다. 다시 말해 장발로 인한 머리카락 받이가 된 것이죠.
또한 깃을 달게 되면 선상에서 명령을 상달과 복창 시, 더욱 또렷하게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귀옆에 천을 댄 관계로 소리를 모아주는 역할을 한 것이죠. 스카프를 한것은 땀을 닦고 위급시 신호를 보내거나 물건을 묶기 위한 용도로 사용되던 것이 악세서리처럼 굳어져 오늘날에 이른 것입니다. 소년들에게 이 수병복을 입힌 것은 성인이 되기 전 일종의 예식처럼, 바다를 장악했던 유럽의 위용과 자존심을 잊지 않는 사람으로 성장하라는 일종의 훈육적 목적이 있었지요.
오귀스트 르누아르 <세일러 복을 입은 피에르> 1885, 캔버스에 유채
인상주의 화가 르누아르가 그린 아들의 모습이 귀엽습니다. 네이비 블루 세일러 자켓과 그 안에는 핀 스트라이프 무늬의 셔츠를 받쳐 입었네요. 유니폼에는 그 시대에, 조직과 단체가 개인을 규율하는 역사가 배어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세계적인 문호인 마르그리트 뒤라스를 좋아합니다. 그녀는 15년동안 거의 유니폼 같은 복장을 유지했다고 하죠. 겨울에는 검은 가디건과 일자형 치마, 폴로 목 스웨터에 짧은 부츠. 그녀는 이렇게 말합니다.
"유니폼이란 것은 형식과 내용을 화해시키고 자기가 생각하는 자신의 모습과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모습을 조화시키고 자신이 생각하는 자기 자신과 남들에게 암시하고 싶은 것을 매치시키기 위한 하나의 시도이다 이러한 매치는 실제로 찾지 않아도 발견되게 되어 있다 그리고 일단 찾아내고 나면 영원히 간다"
지금 여러분은 어떤 정신의 유니폼을 입고 계신가요? 누군가가 저를 기억해 줄때, 옷으로 기억되더라도, 글의 빛깔과 옷의 방식에서 우아하고 일관된 매력이 품어져나오길 바랄 뿐입니다. 누군가를 만날 때, 글을 쓸때, 차를 마실때도, 옷 한자락에서 배어나는 남자의 기품을 갖게 되길 희망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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