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샤넬-미술관에 가다

어깨선이 아름다운 여인들-그림 속 패셔니스타에게 비법을 묻다

패션 큐레이터 2009. 1. 29. 08:08

 

 

『샤넬 미술관에 가다』의 중반부를 쓰고 있을 때였지 싶다.

당시 영국 출장을 갔다가, MBA 시절 동료가 일하고 있는 아일랜드로 갔다.

친구를 만나 정찬을 하고, 예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아일랜드 국립 미술관으로 향했다.

 

세상에, 내가 너무나도 보고싶은 전시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비록 큰 전시가 아니라서, 대형도록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조그마한 컬렉터방을 빌려

29점의 작품을 선정해 걸은 작은 전시였지만, 그림들은 눈부셨다.

 

바로 『Followers of Fashion』이라는 전시였는데

19-20세기 회화에 드러난 여성복식을 테마로 한 전시였다. 아쉽게 그림 자료가

많지 않았고, 사진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아 책에는 실지 못했다. 이 전시회의 그림을 보면

빅토리아 시대와 에드워드 시대, 세계 대전 당시의 복식에서 1950년대 복식까지 총 망라해서

여성복의 발전상황을 미술사와 복식사를 결합하여 잘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차를 마실때 입었던 티 가운에서 상복, 약혼식때 입었던 앙상블 의상등

정말 눈이 부셨다. 미술과 패션의 공조관계랄까, 서로의 영감을 차용하고 발전시키는

관계를 살펴보는 건, 아주 흥미로왔다. 특히 빅토리아 시대에 접어들면서

영국사회는 경제적 번성기에 있었고, 부르주아 여성들은 자신의 의상을 입은 모습을

초상화를 통해 표현함으로써, 아름다움의 순간을 영원히 기억시키려 했다.

 

 

션 오설리반 <시빌 코널리의 초상화> 캔버스에 유채, 1955년

 

이러한 소비자의 욕구에 발맞추어, 초상화가들은 새틴과 실크, 레이스

벨벳등의 고급 소재들의 빛나는 질감을 밀도있게 그려내려고 고심해야 했다.

개중 화가 중에는 여성복과 액세서리를 구입해서 자신의 초상화에 쓰기도 했다.

패션 초상화가 전성기에 이르렀던 시대다.

 

그림 속 여인은 누굴까? 이 전시를 보면서 하나같이 든 생각은

당대의 패셔니스타를 보면(지금도 마찬가지겠지만) 어깨선들이 참 곱다.

그림 속 주인공은 아일랜드 출신의 패션 디자이너 시빌 코널리다. 그녀는 런던에서 패션

도제수업을 받은 후, 1957년부터 자신의 패션 비즈니스를 시작했다. 특히 당대 최고의 배우였던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1970년대 최고의 패션 아이콘이었던 재클린 케니디는

그녀의 충성스런 고객으로서, 아일랜드산 직물과 디자인을 알리는 데 일조했다.

 

 

디자이너 시빌 코널리가 입고 있는 의상은 당시 1950년대 중반

전후에 다시 한번 로맨틱한 의상이 유행하면서, 여성의 신체를 옥죄던 그때

여성의 신체를 구속하지 않으면서도 우아함을 돋보이게 했던 무도회 드레스다. 옷의 소재는

행커치프 리넨(hankerchief linen)으로 가볍고 투과성이 좋은 소재였는데

그녀가 입고 있는 볼 가운은 케네디 대통령의 아내였던 재클린이 입었다. 그녀는

이옷을 입고 당시 백악관에 걸릴 자신의 초상화 작업을 했다. 

 

세실 젤켈트, 아일랜드파 화가

<조세핀 뮬란의 초상> 1945년, 캔버스에 유채,

국립 아일랜드 미술관 영구소장

 

세번째 소개할 인물은 조세핀 뮬러라는 여인이다. 그녀는 초상화를 그렸던 화가 세실 젤켈트의 조카다. 세실 젤켈트는 원래 인도에서 태어나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아일랜드로 와서 정착했다.

 

19세기 독일 낭만주의 회화와 초현실주의 회화의 영향을 받은 화가는 조카의 고혹적인 모습을 초현실적인 배경을 이용해 그림으로써, 신비감을 더욱 조장한다.

 

그림 속 여인은 녹색의 홀터넥 드레스(Halter neck Dress)를 입고 있다. 폭이 넓은 허리 밴드와 주름 스커트가 잘 어울린다. 밤의 옅은 미광을 투과하는 고운 담자색 스카프를 팔에 두르고 루비가 장식된 금 팔찌를 했다.

 

그녀의 잡티 하나 없는 금발엔 청색 리본을 매어 색감의 대조를 더 했다. 이 홀터넥 드레스를 입으면 자연스레 목선이 강조되면서 깊이 패인 가슴선이 드러난다. 그만큼 목선과 가슴 라인이 우아하고 날씬하게 표현된다.

 

이 홀터넥 드레스의 어원을 보면 독일어의 Büstenhalter 에서 온 것으로 영어로 하면 holder의 뜻이다. 말 그대로 가슴을 지탱하고 잡아준다는 뜻을 가진다.

 

특히 그림 속 홀터넥 드레스는 거의 현대에 와서도 끊임없이 사용되는 원형에 가까운 드레스다. 최근 디자인된 홀터넥 드레스를 봐도 허리 라인에 리본 처리를 하거나, 가슴을 더욱 고혹적으로 드러내는 것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그림 속 여인이 입은 홀터넥 드레스는 그 빛깔부터 밤의 쓸쓸함을 담아내는 것 같다.

 

홀터넥 드레스를 입을 때는 가슴을 처리하는 곡선이 엑스자 형인 것을 고려하여 같은 디테일의 스트랩 샌들을 신어주면 그 모습이 더욱 빛난다. 가슴 쇄골선과 어깨선을 도발적으로 드러내는 섹시한 매력을 풍기기에, 사실 서양이든 동양이든 드레스 코드가 까다롭지만, 그만큼 입는 순간 여인의 매력이 발산한다.

 

 

 

 

 

『샤넬 미술관에 가다』를 쓰면서 나는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준

빅토리아 시대의 의상들을 주로 소개했었다. 그때 제임스 티솟이란 화가와 더불어

쌍벽을 이룬 화가가 있었다. 바로 알프레스 스티븐스란 화가인데, 지금 보시는 작품은

그가 그린 당대 최고의 배우 사라 베르나르의 모습이다. 왜 책에서

그의 작품을 많이 소개하지 못했는지 너무 아쉽다.

 

한 손엔 책을 들고 읽었던 한 편의 글을 묵상하고 있는 듯한

여인의 모습이 아련하다. 당대 모더니즘이 발흥하던 시기에, 혼자서 생각에

빠져 있는 여성들의 모습이 초상화에 자주 등장한다. 그림 속 여배우가 입고 있는 드레스는

복식사에서 흔히 오트 쿠튀르의 시작이라고 말하는 찰스 프레데릭 워스의 작품이다.

장방형 네크라인의 반투명 튤 소재의 검정 드레스는 배우의 하얀 피부를

더욱 돋보이게 하면서 더불어 어깨선과 가슴선으로

이어지는 시선의 환영을 강화시킨다.

 

 

존 레이버리, 아일랜드 화가

<이브닝 망토를 입은 레이버리 부인> 1918/1935년 연대추정이 어려움

캔버스에 유채, 아일랜드 국립 미술관 소장

 

이번에 소개할 그림 속 주인공은 정말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이 여자 한명에 대해서만 책을 써도 여러권을 쓸수  있다. 하긴 외국에선 이미 3권의

회고록 및 다양한 삼자가 서술한 비망록들이 있다. 그녀의 이름은 레이디 레이버리, 본명은 헤이즐 마틴. 

 

헤이즐 마틴(1880-1935)은 산업가의 부유한 가문에서 태어난 당대 최고의 미인이다. 사람들은 그녀를 가리켜 미국 중서부 지역 최고의 미인이라 불렀다. 바로 <아메리칸 뷰티>였다. 1904년 외과의사였던 에드워드 트루도와 결혼했지만, 6개월 후 남편은 병사한다. 이후 화가였던 존 레이버리와 결혼한다. 이후 그녀는 당대 최고의 패션 스타일을 가진 여성으로 자리잡으며, 화가였던 남편의 수많은 초상화 속 주인공이 된다.

 

결혼 후 세계 1차 대전이 발발하고 남편 존은 영국 정부의 종군화가가 되어 봉역한다. 이후 기사 작위를 받게 되고, 덩달아 그녀도 헤이즐 레이버리에서 레이버리 레이디가 된다.

 

그녀는 특히 핑크와 자주색, 레드를 병적으로 좋아해서 관련 색상의 옷들을 자주 입었던 걸로 유명하다. 전시회 카탈로그에도 그녀가 입고 있는 이브닝 망토가 눈에 걸린다. 당시 최고의 패션 디자이너였던 폴 포와레는 혼탁한 색상의 의상을 밝고 이국적인 의상으로 대체한 디자인을 선보였다. 특히 터번과 깃털, 케이프 망토, 모피로 만든 스톨은 당시의 패션을 말해주는 소품들이다.

 

그림 속에서도 그녀의 어깨를 우아하게 둘러싸는 모피 스톨이 눈에 들어온다. 그녀의 뛰어난 패션 센스와 미모 덕분에 당대 최고의 문화계 인사들, 가령 조지 버나드 쇼와 시인 예이츠도 그녀의 친한 지인들을 얻게 된다.

 

이 뿐만이 아디다. 아일랜드 독립투쟁을 위해 무장 세력을 이끌었던 마이클 콜린스를 기억하는가? 레이디 레이버리는 그를 위해 당시 크롬웰 광장에 집을 임대해서 묵도록 했다. 그녀의 비망록을 쓴 많은 작가들은 그녀와 마이클 콜린스 사이의 염문에 주목했다. 마이클이 독립운동을 하며, 전장터에서 죽어갈 때, 그의 목에는 미니어쳐로 만든 레이버리의 모습이 목걸이로 걸려 있었다.

 

영화 속 마이클 콜린스를 보면 리암 니슨이 연기했던 지도자 마이클 콜린스와 그와 사랑에 빠지는 간호사 키티(줄리아 로버츠)가 나온다.

 

둘은 사랑에 빠졌지만, 영국와 아일랜드 정부 수립 이후, 계속해서 레이버리와 콜린스는 서로에게 연정을 느낀 연인이라는 증거가 속속들이 발견되었다. 물론 최근에 나온 책은 이와 같은 사실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있으니 누구의 말이 옳은 지는 더 시간이 지나봐야 알 것 같다.

 

그녀는 미모와 우아함 덕분에 많은 이들에게 거의 여신에 가까운 대접을 받았다. 이 덕분에 아일랜드 초대 정부화폐에 모델로도 등장을 했다. 남편인 존은 그녀의 초상화를 400점 넘게 그렸다고 한다. 평생을 아내에게 푹 빠져 살았던 모양이다. 하긴 그림 속 자태만 보아도 우아함과 아릿다운 모습이 그대로 드러난다.

 

 

 

안톤 아인슬, 비엔나 화파

<안나 폰 피츠제럴드의 초상화> 1854년, 캔버스에 유채

 

이제 마지막 초상화다. 어깨선이 아름다운 여인들을 보다 보니

정신이 아른아른하다. 그림 속 주인공은 1928년 부카레스트 출생으로

그림이 그려지던 당시 그녀의 나이는 17살, 바로 약혼식을 하루 앞두고 모델이 된 작품이다.

 

그녀는 로맨틱한 느낌이 물씬 나는 가운을 입고 있다.

탐스럽게 떨어지는 그녀의 어깨선을 보고 있다면 정신이 혼미해진다.

그녀의 가슴은 핑크색 장미로 장식한 이브닝 드레스의 데콜테와 맞물려 농밀한

여인의 아름다움을 더욱 강하게 발산한다. 백색, 청색, 보라, 밝은 적색은 당시 젊은 여인들의

복식을 위한 주요 색상이었다. 게다가 그녀가 한쪽 어깨를 가리고 있는

스트라이프 무늬의 숄은 1840년 이후로 계속해서 여인들의 머스트 해브 아이템이었다.

 

당시는 숄을 반드시 착용하여 과하게 드러난 어깨선을 가리는 것이

일종의 예법이자, 무도회에선 과감하게 어깨선을 드러내어 남성을 유혹하는 것이

일종의 암묵적인 패션 코드였다고 전해진다. 아름다운 여인의 어깨선이여.....

 

사람의 몸에서 가장 정신적인 곳이 어디냐고 누군가 물은 적이 있지.
그때 나는 어깨라고 대답했어. 당신의 마른 어깨와 내 마른 어깨가 부딪힌 순간.
외로운 뼈들이 달그랑,먼 풍경(風磬)소리를 낸 순간.....
한강의 <내 여자의 열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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