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샤넬-미술관에 가다

한국인은 색채홀릭이다

패션 큐레이터 2009. 2. 25. 08:18

 

 

 

 S#1-옷은 우리를 기억한다.

 

오늘도 어김없이 화요일이면 라디오에서 책 소개를 합니다. <유혹의 역사>와 <스캔들 미술사>란 두 권의 책을 소개했지요. 하이힐과 금발, 립스틱의 역사란 부제가 달린 유혹의 역사는, 여성이 남성을 유혹하기 위해 어떻게 복식을 이용했는지, 그 장구한 역사의 흐름들을 하나하나 살펴갑니다. 인공유방에서 금발을 만들기 위해 과산화수소를 어떻게 이용해 탈색을 했는지 등등, 향수에 관련된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담겨 있지요.

 

패션은 항상 유혹의 매개로서 인간을 조정해왔습니다. 소유하고 싶은 욕망과 소유 당하고 싶은 욕망의 줄다리기. 이 미묘한 줄다리기를 옷을 통해서 우리는 서로에게 표현해 왔던 역사를 가지고 있지요.

 

한편의 영화가 있습니다. 네덜란드의 알렉스 반 바르머담 감독이 연출한 <드레스>는 바로 옷의 여정을 통해, 그것을 입었던 인간들이 어떻게 변하고 무슨일을 당하는지 연쇄적으로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98년에 소수의 상영관에서 살짝 상영된 영화라, 기억하지 못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영화 '드레스'는 프랑스의 야수파 화가 마티스의 작품에서 뛰쳐나온 듯한 강렬한 나뭇잎 무늬의 원피스 한벌이 어떻게 태어나 어떤 여성들을 거쳐 마침내 미술관의 화폭 한구석에 붙게 되었는가를 따라간 마술 같은 영화입니다. 텍스타일 디자인을 하는 한 남자. 그는 여인에게 버림받고 회사에서도 위기상황에 몰리게 되자, 이웃인 인도남자의 전통복식에서 아이디어를 따서 기묘한 무늬가 배열된 푸른 옷감을 디자인합니다.

 

문제는 이제부터입니다. 그 옷을 대량생산하겠다고 승인한 회사와 이에 반대하는 남자는 180도 다른 인생의 궤적을 걷게 되죠. 화사한 옷 한벌로 자신의 잃어버린 아름다움을 찾고 회춘하고 싶은 스텔라, 빨랫줄에서 날아온 이 드레스를 입은 젋은 여인 조안나. 그녀를 보고 근거를 알수 없는 성적 욕망에 빠지는 기차 검표원 디 스메트, 스텔라는 알수없는 욕망에 빠져 결국은 발작으로 죽게 됩니다. 이 영화는 푸른 옷의 여행을 통해, 그 옷을 소유한 사람들이 어떻게 변모해가는지, 보여줍니다. 아프리카 구호품 넝마가 될 뻔 했더 옷은 칸달이란 소녀에게 팔려가지만, 다시 기차 검표원을 유혹하게 되고, 끝내 옷은 잔디깎는 기계 속으로 들어가 너덜너덜 찢어져 화폭에 붙여지는 운명을 맞게 됩니다.

 

 

이 옷 한벌이 돌고돌아 인연을 고리를 맺고, 옷을 통한 인간들의 덧없는 삶은 곡마단의 트럼펫 소리처럼, 또는 어릿광대의 울긋불긋한 옷처럼 구슬프면서도 익살맞기까지 합니다. 미술을 전공한 알렉스 반 바르머담 감독은 인간의 욕망을 품고 있는 ‘옷’의 그 풍부한 표정과 색깔을 환상적인 옷의 패턴을 통해서 표현하지요. 즉 영화 속 옷의 여행은, 인간의 음험한 욕망의 여행입니다. 화려하지만 우리의 삶을 치명적으로 만들고, 명멸하는 듯 보이지만, 언제든 부활해서 우리를 종속시키는 그런 옷의 운명은, 그것을 입고 있는 인간의 운명을 드러냅니다.

 

 

이번에는 그림을 소개하려 합니다.  홍경아의 그림 속엔 바람에 나풀거리며 어디론까 떠도는 옷이 등장합니다. 꿈은 몽환속을 헤매는 것일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건 그림 속 이미지를 보는 순간, 영화 <드레스>에서 보았던 옷의 여행길이 떠올랐다는 사실입니다. 그녀의 그림 속 화면은 온통 오랜지빛깔로 환하게 빛납니다. 그 배경색이 환한 것은 여전히 꿈과 현실 어느 방향이든, 삶을 이끄는 매개인 옷과 그것을 입은 인간의 삶이 찬연하길 꿈꾸기 때문일겁니다.

 

 

홍경아_백일몽_Daydreaming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00×152cm_2007

 

작가 홍경아는 오랜 세월을 박물관 학예사로 보냈습니다. 제가 그녀의 작업에 흥미를 느끼는 것은 예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만난 패션 큐레이터에 대한 기억 때문입니다. 저는 옷을 연구하고 옷이 가진 다양한 의미의 겹들을 하나하나 풀어내는 걸 좋아합니다. 당연히 과거 속 의상에 관심을 가질 수 밖에요. 과거 출토복식을 당시의 그림이나 자료들과 비교하는 작업, 고증하는 작업은 마치 켜켜히 쌓여진 세월의 지층을 굴삭기로 뚫어가며 그들이 살수 밖에 없었던 세상을 꿈꾸는 것입니다.

 

 

 홍경아_붉은 바람_The Orange Wind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81cm_2007

 

그런 의미에서 복식사가는 옷이라는 매개를 통해 과거의 꿈을 조합하고 당대 사람들의 정신적 태도가 묻어난 옷을 수도 없이 만져보고, 바느질 한땀에 섞여있는 한숨과 눈물, 환희를 찾아내야 하는 것이죠. 이미 죽어버린 자들이 입었던 옷의 결을 어루만지며, 그 옷을 입었던 사람을 떠올려야 하고 그를 현재로 복원해 연구하는 작업. 옷에 담긴 사연들을 한자락씩 풀어야 하는 일. 그것이 바로 출토복식을 정리하는 패션 큐레이터의 일이기도 합니다. 그런 그녀가 자신이 연구했던 오브제, 옷을 캔버스에 담아낸 것이죠.

 

    

 

 홍경아_어느 봄날, 일탈의 속도_One Spring Day, the Rapidity of Departure
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52×100cm_2007

 

지나간 역사 속 의상을 매만지는 일은 과연 작가에게 어떤 느낌을 부여해 주었을까요? 화면 속 배경색이 찬연한 오렌지빛으로 빛나는 것은 그/그녀가 입었던 옷의 화려함과 더불어 그의 삶의 빛깔을 표현하려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옷은 시대를 담아내는 그릇이고, 인간의 신체를 옷이라는 매개를 통해 조율하고 조정하는 장치입니다. 시대가 변할때마다 마치 거푸집에 들어간 금속처럼, 새롭게 조형되어야 할 운명을 가지게 된 거죠. 그림 속 바람에 나부끼는 옷의 표면에 그려진 꽃의 운명처럼, 그 옷을 입은 사람의 운명도 명멸의 순간을 맞이했을 터입니다.

 

 

홍경아_꽃 멀미_Flower Sickness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2×224cm_2007

 

며칠 전 한복 디자이너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흔히 우리가 우리민족을 가리켜 '백의 민족'이라 부르는 것이 얼마나 스스로를 폄하하는 말인지를 다시 한번 느낍니다. 우리 민족은 색의 민족입니다. 삼국시대의 출토복식을 보면 갖은 화려한 색상의 옷을 입었던 것을 증명할 수 있지요. 옷의 색감은 단순하게 옷이란 외피의 빛깔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우리 민족, 우리가 가진 정신성의 다양함과 다채로움을 드러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반성해야 합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의 빛깔을 백색이라 규정한 것은 스스로를 작은 거인으로 만들어왔던 마음의 습관에서 기인한 것임을 말이지요. 화려한 텍스타일의 옷을 입은 이 땅의 여인들은, 남자들은 참으로 고왔을 터입니다. 꽃 멀미가 날 정도록 아름다운 우리 나라. 대한의 빛깔을 복식을 통해 찾아야 합니다.

 

 

홍경아_애쓰는 것들에게, 날개_Wings, To the Struggling ones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0×261cm_2007

 

옷이 날개라고 하지요? 그것은 단순히 옷을 잘 입으면 우리의 삶이 돋보인다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의 정체성, 우리의 혼이 웅비하려면우리 안에 있는 옷에 대한 철학부터 바꾸어야 한다는 뜻이라고 저는 감히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옷을 입는다는 것은 하루라는 시간을 맞이하는 인간의 일종의 정신적 예배인 셈입니다. 봄이 다가옵니다. 올해는 연두와 핑크, 강렬한 느낌의 색상들이 거리를 더욱 활보하겠지요. 내일은 어떤 옷을 입고 출근을 해야 할까요? 올 봄 화려하게 피어난 꽃처럼 살아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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