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현대백화점 본점에서 <미술로 본 파리 패션100년> 특강을 했습니다.
너무 욕심이 지나쳤는지, 60장이 넘는 슬라이드를 만들어 가긴 했는데, 제대로 설명 못하고
바쁘게 넘어가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하긴 한 한학기 분량을 80분 만에
소화한다는 건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코코샤넬을 기점으로 근대 패션의 시작과 그녀가 만든
블랙 드레스를 설명했죠. 1926년 그녀가 만든 블랙 드레스는 지금 기준에선
'그게 뭐 그리 대단한 가?"라고 물어볼 지 모르지만, 엄청난 사건이었던 건 사실입니다.
최근 크리스티 경매에서 13억이 넘는 가격에 원본이 낙찰되었다지요.
화가 마리 로랑생이 그린 그녀의 초상화 속 모습을 보면
늙어서도 여전히 늘씬하고, 강단있는 외양을 유지했던 부지런하고 욕심많은
그러나 참 행복했던 디자이너 코코 샤넬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는 그녀의 패션 철학을 좋아합니다.
Less is More 적은 것이 좋다, 즉 옷은 심플하게 입고, 대담한 악세서리를 통해
스타일링을 완전하게 하는 것입니다. 화려함이란 결국 심플함이 가진
여백의 미에 악센트를 주는 몇개의 소품이 필요할 뿐이란 생각이 들더군요.
그녀의 블랙드레스는 많은 디자이너들에게
영감을 주는 20세기 문화의 아이콘이 됩니다. 1961년작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배우 오드리햅번이 입은 블랙드레스는 위베르 드 지방시가
디자인한 것이죠. 오늘 강의할 때, 옷의 배면까지 설명하면서, 옷의 설계방식과
구성에 대해서 이야기 하면서 왜 이렇게 디자인이 전개되었는지를
설명했어야 했는데 시간이 부족해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블랙 드레스는 다음에 특집으로 한번 다루겠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블랙의 힘
모든 색을 흡수하기에, 가장 강력한 에너지와 에로티시즘을
투영할 수 있는 색상과 디자인으로, 언제든 블랙 드레스는 시즌에 항상
등장하는 최고의 아이템이 되었습니다.
샤넬이 코스튬 주얼리의 시작이란 걸 아는 분이
별로 없습니다. 원래 모자 디자이너로 시작했는데, 그 초상화를 걸어놓을까 하다가
다음 책에 써먹어야지 하고 아껴두었습니다. 샤넬이 디자인한 목걸이와
뱅글, 팔찌는, 그녀의 블랙 드레스와 잘 어울립니다.
1910년대 아르데코 패션 시대를 풍미했던
패션 일러스트레이터, 에르테에 대해서 소개했습니다.
언제 한번 그의 작품에 대해서 이곳에서도 제대로 다루려고 합니다.
패션 선진국은 일러스트레이터가 예술가의 지위를 누리지만, 아직 한국은
그렇지 못합니다. 그런 날이 빨리 오면 좋겠습니다.
철학을 전공했던 여염집 규수같던 디자이너 엘자 스키아파렐리.
샤넬이 유독 질투를 많이 했던 디자이너라죠. 초현실주의 미술의 거장
살바도르 달리와 친하게 지내면서, 그에게 초현실주의 예술의 다양한 요소들과
모티브를 배웠습니다. 당시로서는 보기 힘든, 눈물이 흐르는 형태를
프린트 한 것이나, 가재, 쇼킹한 핑크색 드레스, 기억의 고집에서나 볼수 있었던
정지된 시간의 모습이 그녀의 드레스에 나타나는 건, 패션과
미술의 만남을 시작한 그녀의 노력속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현대 패션은 과거로의 회귀와
과거를 깨부수고, 새로운 현실을 만드는 것, 그 두가지의 힘이 두딪치는
역사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마담 그레의 우아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드레이프, 옷의 주름작업을
한번 보세요. 지금봐도 눈이 부십니다. 장인정신이 있어야 저런 옷이 나오거든요.
파리 패션의 자존심은 바로 예인이 되고자 했고, 테크니션이 되고자 했던
디자이너들을 통해 만들어진 역사입니다.
크리스챤 디올, 지방시, 발렌시아가, 수많은 디자이너의 작품을
살펴봤습니다. 전쟁 후, 궁핍한 경제를 고려해, 단순하고 옷감이 많이 들지않는
라인의 옷들이 유행을 했지요. 그러나 그 속에서도 포연 속 파리의 풍광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회색담배빛 드레스가 눈길을 끕니다. 삶에서 언제든 패션의 생각, 영감은 떠오릅니다.
이브 생 로랑이 만든 몬드리안 드레스입니다.
예전 이브 생 로랑이 그린 만화, 루루에 대해서 설명한 적이 있습니다.
그는 시대와 불화하면서도, 예술을 차용하고, 시대를 읽어내려고 무던히 노력했던
디자이너입니다. 혼란의 60년대 중반, 비트 세대와 마약, 성의 자유, 구세대에 대한 신 세대의 저항이
시작되면서 혼돈의 자리에 빠진 파리에서, 그는 몬드리안의 그림을 보고
마치 종교적 감성을 찾게 되었다고 합니다. 질서잡힌 선과 면들의
조화 속에, 그런 세상을 옷에 담아보고자 했던 디자이너의
욕망이 만들어낸 옷입니다. 지금봐도 곱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장 폴 골티에의 옷입니다.
흔히 미술사조로서는 키네틱 아트에서 영향을 받아 만든 옷이라고 하지요.
옷이란 결국 외피와 속이 구분되어 있는데, 이걸 뒤집어서 속이 드러나는 옷을
만들어 보임으로써, 쉬포르/쉬르파스라는 추상화의 원리, 표면과 내면의 이중성과 갈등을
옷으로 표현합니다. 바람에 날리듯, 대기 속에 가볍게 움직이는 그의 드레스에서
부유하는 현대적 인간의 명멸의 순간을 찾아봅니다.
패션 이야기는 언제 해도 즐겁습니다. 패션은 그저 옷에 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신체를 조형하는 시대의 철학이 담겨 있습니다. 옷 하나에, 주름 하나에, 정성스레 짜깁어가는 레이스 한줄에 담긴 인간의 마을, 그 빛깔과 형태를 그려가는 시간은 행복합니다.
오늘 강의가 너무 짧은 시간에 이루어져서 부족함을 느끼는 분들을 위해 파리 패션 100년 내용은 증보해서 하나씩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최근에 Golden Age of Haute Couture 라는 근사한 책을 샀습니다.
10년간의 역사 속에 이루어진 많은 작업들이 화려한 도판과 사진 가득하게 담겨 있습니다. 이브생 로랑과 디올이 여성의 신체를 규정하는 방식과 시선에 대해서도 나와 있고요. 이 부분은 아주 매력적인 장입니다.
오늘도 강의하면서 하는 말은 제가 이곳을 지키며 글을 쓰는 이유입니다. 저는 꼭 복식 전문 박물관을 세우고 싶습니다.
평생 한국의 전통 한복을 사비를 털어 모아 박물관을 지으신 석주선 선생님처럼, 서양복식과 다양한 세계의 복식을 실제로 보고 후학들이 공부할 수 있고, 옷을 통해, 과거를 배울수 있도록 장을 만들어 보는 것이 제 꿈이지요. 제 꿈을 응원해주세요. 김장훈의 목소리로 듣습니다. Sh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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