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주_하늘 따먹기_iron_17×38×38cm_2008
김영주의 전시를 봤다. 2주 전에 봤는데 이제서야 올리게 되서
아쉬운 마음이다. 철을 이용해 만드는 개들의 모습이 우스꽝스럽고 유쾌하다.
그날 전시회에 안타깝게 사진기를 들고 가지 못해, 네오룩에 등재된 이미지 이외의
재미있는 작품들을 찍어오지 못했다. 못네 아쉽다.
장 가는 날_iron_18×89×26cm_2008
왜 우리는 어떤 사건이나 행동이 사리에 맞지 않고 바르지 못한 상태로 진행되는 판국
혹은 너저분하고 시시한 상태를 표현할때, 개판이란 표현을 쓸까
그것도 왜 하필이면 5분이란 숫자를 사용했을까. 궁금해서 이것저것 뒤져보았으나
딱히 정답은 없다. 다만 닥칠 상황을 표현하기 위해 5분이란 시간의 격자를
(1-2분은 너무 짧고 10분은 상황을 정리할수 있을 만큼 넉넉하기에) 표현했다고 한다.
김영주의 철로 만든 개들의 모습은 그저 흐뭇하다.
공원에 일을 본 후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강아지, 제목은 범칙금 3만원이다.
더 재미난건 용변을 눈에 띄게 하기 위해 금사처리를 했다.
김영주_자전거 타는 날 17×45×54cm_2008
어린시절 가난한 꼬방동네에 살던 시절,
할아버지들은 흔히 속신 신앙이란걸 믿는 편이여서,
특정한 동물이나 사물이 등장할때, 복이나 운명과 같은 단어와
연결짓는 걸 종종보았다. 개들은 특성상 뒷 다리에 무게 중심을 두고
땅을 파는데, 가슴에 있는 걸 함부로 파내면 안된다며 욕지기를
개를 향해 퍼붓곤 했다. 유복자로 자란 할아버지는
유복자인 개의 행동에서, 자신을 발견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글을 쓰다보니 좀 어두워진다. 길고양이와 집비둘기에 대해
썼던 어제에 이어 동물 시리즈를 소개하면서 자꾸 눅진하게 배어있는
상처의 향기가 마음속에서 돋아난다. 김영주의 조각작품은
너무나도 유쾌하건만, 내 마음이 왜 이런지......
김영주_아주공갈 염소똥_iron_9×30×25cm_2008
예전 일본산 스피츠를 키운적이 있다.
원래 스피츠는 특성상 갸름하고 오똑한 턱선이 예쁜데
우리집에 온 이후로 너무 잘 먹는 '우량아'가 되어 버렸다.
운동을 시킨답시고 함께 뛰어보기도 했고, 산책도 자주 시켰지만
식탐이 많은 녀석인데, 기르는 우리가족 또한 통제를 하기엔, 그 녀석의
눈빛은 너무 맑고 예뻤다. 그래서 뱃살이 늘었나보다.
이놈의 뱃살이_iron_17×34×34cm_2008
김영주의 작품을 보다가 과거의 시간들을 떠올렸다
강중강중 꼬리를 흔들며, 친해지기 위해 쓰윽 눈치를 보던 첫 대면식
그렇게 우리집 강아지와 꽤 오랜시간을 보냈다.
주_오분만 ZZZ_iron_12×50×40cm_2EA_2008
학교에서 돌아오는 시간,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벨을 누르기도 전에 어디선가 후다닥 하고 달려오는 소리가 들린다.
정말 놀랍다는 생각밖에 안들었다. 어떻게 저렇게 주인이 오는 걸 귀신같이 안단 말인가.
왜 혼자사는 아가씨들이 반려동물을 키우는지 그 마음을 이해할 것 같았다.
지속과 반복을 일삼는 진부한 일상, '다녀왔습니다'라고 인사를 해도
습관적인 반응만 기대할 수 있는 가족에 비해, 강아지의 환대는
비루한 하루의 노곤함을 씻겨주는 일종의 씻김굿이다.
김영주 나른한 오후_iron_30×30×145cm_2008
최근 한강둔치에서 열린 프리스비 대회 사진을
인터넷으로 봤다. 아파트에서 살면서, 나는 개들을 갇힌 공간에서
키우는 것이 큰 잘못이라는 생각을 자주 했다. 풀밭에서 주인과 함께 호흡을
맞추며 플라스틱 접시를 턱턱 받아내는 개들의 묘기가 놀랍다.
내 어린시절 함께 했던 독일산 쉐퍼드도 생각나고
나른한 오후의 시간, 낮잠자고 있으면 꼭 엉덩이를 내 얼굴에 대고
자는 버르장머리 없는 울집 강아지의 추억이 떠오른다.
오늘 라디오 방송엔 <인터넷 세상과 평판의 미래>
그리고 연애술사같은 소설가, 에쿠니 가오리의 <장미 비파 레몬>을 소개합니다.
목요일 8시 40분 북 칼럼니스트 김홍기의 '책 읽는 시간' 많은 청취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