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Healing/내 영혼의 갤러리

몬드리안, 건축의 속살을 베다

패션 큐레이터 2008. 11. 4. 00:56

 

 

세상의 모든 집에는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희망이 배어있다. 그만큼 환경을 견디고 때로는 껴안으며 살아가는 인간의 구체적인 열망이 형태로서 나타난다. 개인적으로 패션은 신체 위에 덧입혀진 건축물이란 정의를 좋아한다. 그만큼 당대의 건축물을 보면 패션의 양상과 스타일이 드러난다. 이건 미술이라고 다를 바 없다. 결국 패션과 건축, 회화가 하나로 묶여 있기 때문이다. 미술과 건축이 발전해온 과정을 서로 교차시키다 보면, 서로가 상상력을 어떻게 빌리고 사용했는지, 더 나아가 기존의 생각의 틀 위에 어떻게 멋진 세계를 지었는지를 발견할 수 있다.

 

 

모든 것은 결국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의 역사이고,

각자의 빛깔에 맞는 안경을 쓰고 있을 뿐이다. 건축의 기능주의와 합리주의를 이해하면,

미술사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몬드리안이나 말레비치의 추상화를 참신하게 이해할 수 있고,

미술의 신 객관성 그룹의 작업을 이해하면 반대로 1920년대 독일 건축의 딜레마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번 글에서는 몬드리안의 그림과 함께 영향을 주고 받았던 건축, 그리고 현대에 와서

이를 다시 화폭 위에 그려낸 화가의 그림을 소개한다.

 

미술 교과서에 단골손님으로 등장하는 몬드리안의 구성시리즈들(그림 1 참조)을 떠올려보라. 수직선과 수평선을 반듯하게 그린 후, 그곳에 빨강, 노랑, 파란색을 채운 그림. 그런데 이 작품 하나를 그리는 데 3년이 걸렸다니 많은 사람들은 의아해 한다. 그는 나치로부터 전쟁을 피해 망명한 네덜란드 사람이다.

 

말 그대로 전쟁 속 포화를 겪고, 그 속에서 벌어진 별의 별 상처와 피해를 눈으로 목격한 것이다. 그는 전쟁 경험을 딛고 무서운 현실 위에 존재하는 이상 세계를 그림 속에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는 인간이 혼합해서 만든 것이 아닌 자연의 색들 빨강 노랑 파랑 삼원색과 흑과 백의 선을 통해서 올바른범생이(?)의 세계를 그렸다.

 

몬드리안의 그림 속 노랑은 빛의 작용을 통해 생명이 일어나는 현실의 세계를, 파란색은 빛을 발산하는 수평의 창공을, 붉은 색은 노랑과 파란색의 교배를 통해 만들어진 산물을 의미한다. 몬드리안이 그림을 자세히 보면, 노랑과 파란색, 붉은 색의 배치가 각각 다르다. 여기엔 세상의 현실을 바라보는 화가만의 시선이 들어있다. 아직은 활성화가 안된 것인지, 막 세상에 나올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인지 등에 관한 것들 말이다.

 

추상이란 게 뭔가 말 그대로 주변의 잔가지들은 자 쳐내고 본질만 뽑아내서 보여주는 세계다. 몬드리안은 그런 세계를 꿈꾸었다. 그러나 그와 함께 작업했던 화가이자 건축가였던 두스 뷔르흐는 똑 부러지는 몬드리안의 세계에 반기를 들었다. 몬드리안이 현실의 세계 너머에 있는 질서를 찾으려는 이상주의자였다면, 뷔르흐는 과학기술이 보여줄 수 있는 다양한 면모를 건축을 통해 나타내려 한 현실주의자다.

 

그는 사선을 도입해서 새로운 조형성을 갖춘 건축물을 지으려고 했다(그림2). 건축을 하는 사람의 입장에선, 수직과 수평으로만 구성된 집을 짓는 다는 건 무리라고 생각을 했을 터다. 그러나 이 사선하나 때문에 친했던 두 사람이 관계까지 빗금이 쫙 그어졌다. 선 하나 그리는 일에도 엄청난 철학과 사유가 배어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는 몬드리안과 달리 그가 짓는 건축물이 역동성을 갖길 원했고, 이를 위해 사선을 도입했다.

 

물론 사선으로 그림도 그렸다.(그림3). 몬드리안의 영향은 지대했다. 이브 생로랑은 몬드리안 드레스를 디자인하면서(그림 4) 1960년대 혁명의 도시 파리의 어수선한 분위기에 질서를 부여하고 싶어했고, 산업 디자이너 게릿 리트벨은 그저 앉기만 해도 마음이 정갈해질 것 같은 몬드리안 의자를 만든다.

 

그러나 한편으론 몬드리안의 그림은 손 하나만 잘못 대어도 질서가 무너질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래서 가까이 하기엔 먼 당신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그래서일까?

 

사선으로 현실을 껴안으며 집을 지은 두스 뷔르흐의 작품에서 좀 더 편안함을 느낀다. 나만의 생각이라고? 어찌되었든 패션과 미술과 건축이 하나로 묶여 있다는 사실 하나만큼은 건졌으면 좋겠다.

 

 


이번달 SK TISSUE 11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미술의 눈으로 보는 건축에 대해서 썼습니다. 미술과 건축은 상호적인 상상력을 서로 교류하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요즘 건축사와 건축 미학 책들을 틈틈이 읽고 있습니다. 패션과의 연관성도 함께 밝혀보려고 합니다.  

 

SK 티슈에서 김홍기의 문화의 제국을 만나보세요.

 


 

 

오늘 정부에서 발표한 수도권 개발을 위한 규제 완화로

지방의 반대 목소리가 높습니다. 미술과 건축을 함께 공부하다 보니

특히 몬드리안의 도덕적인 그림을 보니, 문득 이런 말을 하고 싶어지네요.

"화가는 질서를 꿈꾸며 캔버스 위에 선 하나를 그리는데 3년을 보내는데, 어찌 이 정권은

균형과 조화를 통해 함께 그어가야할 국토의 선들을 자기 마음대로 하는지요"

 

 

 

제발 잠에서 깨어나세요. 눈좀 뜨세요.

그나저나 무한책임이 왜 제겐 무책임한으로 읽히는 걸까요.

서울에서 25년째 살고 있습니다. 당신들의 뇌가 있는 안드로메다에서

살고 싶지 않습니다. 제발 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