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석 <단잠> 1994년, 수묵채색, 개인소장
오늘은 복지관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는 날입니다.
2년 전부터 계속된 자원봉사일은 이제, 아이들에겐, 목소리가
약간 여자같다는 핀잔을 받는 아저씨로 행복한 낙인을 마음에 얻은 것으로
몸에 점점 익숙해져옴을 느낍니다. 제가 활동하는 곳은 특히
영아들과 7살까지의 유아들이 대부분인 곳입니다.
대부분 일정 부분 신체상의 장애를 겪고 있는
아이들도 있고, 신경관련 장애를 몸에 안고 있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4시간은 매우 짧은 시간입니다. 아이들 씻기고 밥 먹이고, 영어책도 읽어주고
낮잠 자는 걸 보다가, 옆에서 같이 졸기도 하지요. 잠자는 아이의
얼굴을 보는 것 만큼 행복한 풍경이 없지 싶습니다.
최근 경제가 어렵다보니, 자원봉사나 지원도 많이 끊겨서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습니다. 그래도 목사님은 참 말없이 아이들을
잘 챙깁니다. 추운날이 될수록 힘든 이웃들이 많다는 건, 바로 내 곁에 있는
아이들과 그들을 돌보는 손길을 통해서도 바로 배울수 있습니다.
김호석 <어때 시원하지> 1993년, 수묵채색, 개인소장
아이들은 제게 귀를 파달라며 오기도 하고, 칭얼대며
안기려고 무척이나 애를 쓰지요. 어린시절 할머니가 귀를 파주던 그때를
연상하며, 그때 받은 사랑의 무게를 다시 아이들의 앙징받은 볼에
살포시 내려놓습니다. 김호섭 화백의 그림을 볼때마다 행복감에 젖습니다.
물론 역사와 현장을 강조한 작가는 사실 역사 속 인물들과 성철 스님의 다비식 연작과
같은 대작을 남긴 작가입니다만, 사실 저는 그가 그린 소품들이 더 좋습니다.
김호석 <시새움> 1995년, 수묵, 개인소장 김호석 <어휴 이뻐> 1995년, 수묵, 개인소장
워낙 아이들 볼에 입맞추는 걸 좋아하다보니
본의 아니게 시샘을 당할때도 있습니다. 3살박이 정현이를 안으면
꼭 수진이가 뒤에서 등을 머리로 꾸욱 누릅니다. 심드렁한 표정을 한 채,
자기와 놀아달라며 시선을 보냅니다. 때론 여러아이을 동시에 보는게
이렇게 어렵구나 하는 걸 배우면서도 아이들은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누구보다도 직감적으로 아는 존재란 점을 또 배우게 되네요.
김호석 <성철스님 9> 1994년, 수묵, 해인사 백련암 소장
화가 김호석의 가계사는 근대사의 상처를 그대로 보여줍니다.
일제에 항거하다 죽어간 유학자 집안에서 태어나, 항일운동에 투신한 아버지
궁핍 속에서 '일제에 항거한 자들'에게 선물처럼 주어진 가난의 업을 안고
살았던 작가였지요. 친일청산의 길은 여전히 요원합니다. 친일행각과 매판자본으로
성장한 자들이 자신의 과거를 수구언론의 도움으로 지우려 노력하는 우리 사회는,
김호석의 그림 앞에서, 그의 성실성 앞에서 전통과 현대를 이으며,
상처의 무늬를 깁는 화가의 붓 앞에서 참회해야 합니다.
과거와 현대를 잇는다는 것은, 기억을 복원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과거를 정직하게 사과하고, 죄를 지은 이들을 치리할수 있는
시스템을 갖춘 사회가 될때, 다음 세대의 아이들에게 당당할수 있고, 그들에게
먼저 인생을 살았던 자로서의 의무를 다한 것이 될테니까요.
아이들을 키우는 일, 돌보는 일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김호석 <토요 미스테리 극장> 1995년, 수묵, 개인소장
아이들과 텔레비젼을 보다보면
유독 외사람이 있을때, TV를 보는 반응이 더욱
재미있음을 발견하게 되죠. 그만큼 관심을 끌기 위해서일테지요.
앞에서 말씀드렸습니다. 아이들을 키울때, 먼저 우리 자신부터 참회하고
성찰한 후에 아이를 껴안아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나도 할수 없었다' "먹여 살려야 할 입이 많아서"
변명하지 않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회계장부 조작하고,
영업비밀 팔아먹고, 아래직원에게 뒤집어 씌우고, 그러면서도
당연하다는 듯, "나도 젊었을때는 그랬다"는 식으로 살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집에와서 아이들을 안으며, 이 아버지만큼만 살라고 말하지 않기 바랍니다.
김호석 <미운 7살> 1997년, 수묵, 개인소장
우리가 지나온 미운 7살의 모습을
나의 아이들을 통해서 읽어낼 때, 과거의 나를
지켜준 이가 있어, 지금 이곳에 있음을 깨닫게 되죠. 아이에게 밥을 먹일때
옷을 입히고, 말갛게 씻길때, 사실은 내 영혼의 다비식을
통과하는 마음입니다. 아이들을 키우는 것이 일상의 예배임을
그렇게 한 마음에 다 안아내지 못한 것이 죄임을, 아이들이 그리는
마음 속 우주를 껴안아 주지 못한 죄를 고백해봅니다.
아이들아......이 아저씨를 부탁해!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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