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샤넬-미술관에 가다

프랑스 여인들이 살찌지 않는 이유는

패션 큐레이터 2008. 7. 20. 02:50

 

 

 

제임스 자크 티솟 <지나가는 폭풍을 기다리며> 1885년, 캔버스에 유채.

 

오늘 8월달 <행복이 가득한 집>에 기고할 원고 편집본을  받았습니다. 현대미술과 패션의 관계에 대해서 관심이 많고, 관련된 책을 내다보니, 원고도 주로 이와 관련된 내용이 주를 이룹니다. 이번에는 클림트와 존 갈리아노의 패션을 비교해서 썼습니다. 미술과 패션이 어떻게 서로의 상상력을 훔치고 발전해 나가는지에 대해 썼지요. 글을 시작하자 마자, 대지에 세차게 쏟아붇는 폭우가, 요란하게 창가를 치고 갑니다. 티솟의 <지나가는 폭풍을 기다리며>란 그림을 올린 이유도 그냥 지금의 폭풍이 큰 피해없이 아무쪼록 조심스레 지나가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점심을 만들어 드렸습니다. 흐린 하루여서, 하루종일 책읽고, 밀린 글 쓰고, 번역할 책들 검색도 했습니다. 어머니가 담백한 요리를 좋아하셔서 어제 청담동에서 먹었던 페이퍼롤과 게살 스프 국수를 만들었지요. 처음 시도한 것이라 생각했던 만큼 맛은 나오질 않네요. 아보카도랑 오이, 당근, 사진 속 붉은 양배추 대신 고기를 얇게 저며서 살짝 익힌 다음 롤로 말았습니다. 게살스프는 너무 망쳐서, 어머니가 그냥 한입 드시고, '더 노력 하도록' 한마디 하시더군요 .....

 

Image:James Tissot - La Partie carrée.jpg

 

제임스 자크 티솟 <즐겁게 파티를> 1887년, 캔버스에 유채, 개인소장

 

국으로 건너간 후 산업혁명 이후, 부르주아들의 삶을 그렸던 티솟의 그림 속엔 항상 자신이 사랑했던 프랑스 여인들의 모습이 영국풍을 띠며 나타나 있습니다. 이번 책에서도 티솟의 그림을 참 많이도 인용했지만, 그림을 볼때마다 항상 신기한 것이 어쩜 프랑스 여자들은 저렇게 날씬한 걸까? 사실 이걸 확인해 보려고 유럽을 부지기수로 다녔지만, 샹젤리제를 걷거나, 혹은 시골마을 어디를 산책해도 만나는 대부분의 프랑스 여인들이 갸름하고 날씬하다는 점입니다.    

 

실 이번 책에서 티솟의 그림을 더 다루고 싶어서 만들었던 장이 있었습니다. <파리여인은 살찌지 않는다-티솟의 그림 속 날씬한 여자들>이란 폴더였는데 편집자가 패션 테마와 썩 어울리지 않는다고 제외시켰습니다. 2006년 미레이노 줄리아노가 쓴 <프랑스 여자는 살찌지 않는다>와 데브라 올리비에가 쓴 <여성 그 기분좋고 살아있는 느낌>이란 책을 읽었습니다. 전자가 프랑스 여성중엔 비만이 많지 않다는 것(물론 요즘은 증가추세라고 해요) 과 그들의 식습관과 라이프 스타일을 제대로 알려준 책이었다면 후자는 프랑스 여성들의 넉넉한 라이프 스타일과 섭생방식에 대해 쓴 에세이입니다.

 

 

제임스 자크 티솟 <햇살 아래서> 1881년, 캔버스에 유채, 개인소장

 

자크 티솟의 그림이나, 혹은 당대 같은 사실주의풍으로 파리지엔을 그린 화가들의 작품을 살펴봐도, 하나같이 여인들이 날씬해요. 인상주의 화가인 르누아르의 그림을 보고서, 당대의 여성들이 풍만했을 거라 생각하는 분들이 있는데, 여기엔 약간의 오해가 있어요. 프랑스 출장 가서 만나는 아가씨들, 그곳에서 공부하는 친구를 통해 듣는 이야기는, '참 적게 먹는다'는 말을 주로 듣네요. 어쩔땐 짜증날 정도다 라고 하더군요. 하루 세끼는 반드시 챙겨먹고, 빵과 초컬릿, 와인을 무척 좋아합니다.

 

<프랑스 파라독스>란 말도 이렇게 먹을건 다 챙겨먹는데 날씬한 것 때문에 생겼다죠. 많은 분들이 프랑스산 와인에 원인을 돌립니다. 와인이 가진 항산화작용, 혈액의 흐름을 좋게하고 순환계통에 좋다는 주장을 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항상 적당히 먹는 습관이 답이 아닐까 싶네요. 프랑스 식당 어디에도 미국처럼 '수퍼사이즈'가 없고 애기주먹만큼 덜어먹는 습관, 신체균형을 위해, 폭식한 다음 날엔 반드시 가벼운 야채만으로 아침을 채우는 습관, 음식을 끼워먹는 일을 야만인의 행동이라 해서 햄버거를 분해, 빵과 고기, 야채로 나누어 일일이 썰어먹는 골수 프랑스인들의 고집은 의외로 배울점이 많습니다. (뉴욕에서 갖은 비웃음을 당하면서도)

 

Image:James Tissot - Holyday.jpg

 

제임스 자크 티솟 <휴일 피크닉> 1876년, 캔버스에 유채, 개인소장

 

티솟의 <휴일 피크닉> 그림을 보다 문득 그 생각이 들었어요. 경영대학원 다닐때 프랑스에 설립된 유로 디즈니랜드 사레를 배운적이 있습니다. 한 마디로 경영성과는 참패였습니다. 왜 일까? 많은 이유가 있지만 그 중에서 프랑스 사람들의 식관습을 이해하지 못한것이 저는 기억에 남습니다. 미국인들은 프랑스인들도 미국처럼 군것질을 할거라 생각했다네요. (Mais Non....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 테마파크가 팡파르와 함께 개장했을때, 팝콘과 번들거리는 캔다바 가게에는 파리만 날렸답니다. 프랑스 여인들은 즉흥적 욕구에 휘말리지 않는다고 해요. 비오는 날에는 부침개를 부쳐먹고 싶다는 즉흥적 욕구와 한번 싸워보세요.  

 

 

제임스 자크 티솟

<비밀 털어놓기-꼭 지켜야해> 1869년

캔버스에 유채, 오클랜드 미술관 소장

 

예전 리용에서 100킬로미터 떨어진 시골마을에 사는 고객을 만나러 갔다가, 주인 아주머니가 대접해주신 저녁을 먹으며 감탄한 적이 있습니다. 프랑스 요리의 우수성은 무엇보다도 흙냄새나는 식탁에 있습니다. 제철 채소와 곡류를 먹는것이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하지요. 유전자 변형 곡물에 대해 법으로 고지하도록 되어 있기에 절대로 손대지 않습니다.

 

흙냄새

나는 식탁을 사랑하라

집 옆에는 포타제(채소밭)을 직접 키우는 안주인은 본인이 기를 수 있는 야채와 사야할 그날의 채소를 구분해 먹을거리를 준비합니다.

 

물론 슈퍼에 가면 냉동 푸아그라를 살수 있지만 플라스틱 용기에 담은 거위 간은 절대로 쓰지 않는다고 안주인이 그러더군요.  동네 정육점에서 방목한 거위에서 금방 뺀 간을 700그램 사서 요리를 합니다. 그날 포식을 했습니다.

 

는 무엇보다 프랑스 여자들이 살찌지 않는 것은 느긋함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현대 파리여성들이 57세의 할머니와 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젊은 것만이 최고의 효용이 아님을 배우기도 합니다.

 

음식을 먹는 일은 세상과 나를 연결시키는 행위임을 잊지 않는 것, 그것이 프랑스 여인의 식음에 대한 철학입니다. 어찌보면 밥을 먹는 일, 식사를 하는 일은 실용주의자 보다는 탐미주의자가 되는 것이 옳습니다. 아무거나 대량으로 먹지 않고 휼륭한 음식을 적당히.....사랑하는 아기의 주먹만큼 먹어보는 일. 물론 이렇게 글을 쓰면 비난의 화살을 날리는 분들도 있습니다.

 

오늘 당장 먹고 살기 힘든 우리들에게, 잘 먹거나 혹은 아예 안먹거나 라는 말은 폭력에 가깝다는 것. 누구보다 모르지 않습니다. 가난한 계층에서 비만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현상은 바로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지요. 앞으로는 식재료도 자본의 힘으로 계층화 될 것을 주장하는 사회학자들이 많습니다. (GMO와 홀푸드에 관해서는 다음 포스트에 올립니다)

 

음식도 중독이라는 사실을 배우자는게 오늘 글의 주제입니다. 건강하고 긍정적인 음식 중독을 위해서 우리의 식습관을 살펴보자는 취지였지요. 저는 아침에 꼭 일어나서 든든하게 아침을 먹습니다. 청담동의 35000원짜리 브런치를 저는 경멸합니다. (섹스 앤더 시티와 같은 드라마에서 뉴요커 스타일이니 어쩌느니 했지만) 사실은 일에 지쳐 여유있게 아침 하나 챙겨먹지 못하는 경쟁사회의 애두른 합리화일 뿐이지요.

 

프랑스의 드골 대통령이 이렇게 물은 적이 있답니다. "246가지의 치즈를 가진 나라를 어떻게 다스려야 하느냐"고요. 불란서 치즈는 인구수만큼 많다지요. 그건 지역마다 그 특색에 맞추서 개발시켜온 맛의 취향과 삶에 대한 애정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도 각 지역마다 장과 김치를 담구는 방식이 다른것, 각자 다른 맛을 내는 것과 사실 같은 이치지요.

 

"식사가 프랑스인들에게 엄숙한 의식이 될 수 있는 것은

훌륭한 먹을 거리와 훌륭한 대화라는 이중의 기회를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프랑스에서는 식사 제공과 관련된 모든 것이 신성함에 가까운 중요성을 가진다.

일단은 요리의 질이 문제가 된다. 그러나 이 점이 확실해지고 나면

대화의 질이 요리와 매치되는가가 안주인의 주요 관심사로 떠오른다."

-에디스 워튼-

 

앞에서 샐러드와 버거를 동시에 먹지 않고 하나씩 나누어 먹는 골수 프랑스인들의 식습관에 대해서 설명을 드렸습니다. 식습관은 그 나라의 시간관념을 반영한다고 하지요. 미국인들은 그만큼 빠르고 편리하고 올인원 방식의 식사를 합니다. 패스트 푸드란 그들의 시간관념이 녹아 있는 음식일 뿐입니다. 그것도 아주 나쁜 시간관념이 실용이란 이름으로 녹아 있는 쓰레기 음식이지요. 코스별 식사의 장점은 이런 패스트 푸드를 슬로우 푸드로 만든다는데 있습니다. 프랑스 여인들의 전형적인 아침 식사를 살펴보면 간단하면서도 가볍습니다. 신진대사를 기초로 면밀하게 짜여진 5번 나눠먹기같은 건 아예 없다고 봐야지요.

 

거룩한 삼위일체

-하루에 세끼 꼭 챙겨먹기

 

개인적으로 해외 출장을 갈때 잉글리쉬 브랙퍼스트란 걸 종종 먹습니다. 별거 아닙니다. 계란 후라이와 두개의 토스트, 베이컨과 햄, 치즈와 양상치, 두 가지 종류의 잼이 놓여있지요. 여기에 비하면 파리 출장때 먹은 아침은 '프티 되죄네'라고 해서 얇게 썰어 고급버터를 듬뿍 바른 바게트 한조각과 과일절임 한조각, 핫 초콜렛 한잔이 거의 다입니다. 처음엔 익숙하지 않아서 허기가 지기도 했는데, 프랑스 여성들의 대부분 아침상이 이렇습니다. 점심때는 야채 샐러드와 신선한 토마토, 모차렐라 치즈와 빵 정도가 다예요. 참 적게 먹습니다. 바빠도 아침 거르지 마세요.

 

글을 마치는데 비가 그쳤네요. 폭우로 인한 피해가 적길 바랍니다. 행복한 주말 되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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