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샤넬-미술관에 가다

미술로 읽는 '기모노'의 세계-기모노가 세계적인 옷이 되기까지

패션 큐레이터 2008. 6. 12. 23:02

패션이란 단순하게 우리의 몸에 걸치는 사물이 아닌, 시대의 풍경을 그리는 캔버스입니다. 패션과 미술은 오랜 세월에 걸쳐 공고한 관계를 맺어왔습니다. 서로의 상상력을 차용하며 상상력의 원천이 되어주었죠. 특히 현대미술과 패션의 관계란 땔래야 땔 수 없는 상호보완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은 바로 기모노와 현대 패션의 관계에 대해 말하려고 합니다.

 

2007 2월 파리 컬렉션에는 영국 출신 디자이너 존 갈리아노의 현대적인 기모노 의상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기모노가 새롭게 부활했다는 평을 들으며 인기를 한 몸에 받았던 갈리아노의 작품엔 일본의 전통적인 모티브와 비대칭 스타일의 기모노 특유의 매력이 잘 녹아 있습니다.

 

 

 

 

서구인들의 일본풍 패션에 대한 열광은 매우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곧 동양은 일본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19세기 중엽, 일본은 에도 시대(1603-1867)가 서막을 내리며 구미 열강에게 문호를 개방합니다. 이때 유럽과 미국에 도자기를 포함한 다양한 이국적인 물품들이 소개되었죠. 일본인들은 우키요에란 불린 판화작품을 사용해 도자기를 포장했습니다. 우연히 프랑스 출신의 화가들에게 이 그림들이 알려지면서 프랑스 미술계엔 큰 파란이 일었습니다. 평면위에 그려진 고요한 정중동의 세계, 원근법을 완전히 무시한 비대칭적인 화면은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큰 충격을 가져다 줍니다. 1872년 일본미술을 차용한 유럽미술의 영향을 자포니즘이라고 설명하면서 일본풍의 디자인과 장식미술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발전시킵니다. 이때부터 패션에도 일본풍이 유행을 하게 되죠.


 

 

제임스 맥닐 휘슬러

일본풍 드레스’ 1870/80 (왼편) '기모노를 입은 여인 (오른편)

갈색지에 펜슬과 파스텔, 데이비슨 아트 센터

 

보시는 그림은 인상주의와 깊은 연계를 맺었던 화가 제임스 맥닐 휘슬러의 일본풍 드레스입니다. 제임스 맥닐 휘슬러에게 자포니즘은 일종의 정신적인 세례와도 같았습니다. 그는 자포니즘을 통해 새로운 작품의 영감과 방향성을 얻었습니다. 당시 그는 기모노 수집에 열을 올렸다고 합니다. 황토 빛과 금색 안감을 한 아이보리 톤의 기모노가 가녀린 허리를 살포시 껴안고 있네요. 마치 1860년대 빅토리아 풍의 소매주름처럼 둥그렇고 풍성하게 접힌 소매주름은, 이 기모노의 착용자가 성인 여성임을 알려주는 단서입니다. 실크 느낌의 연 보랏빛 문장이 곱게 자수를 놓아 봄의 화려함을 드러냅니다.

 

그림 속 모델은 화가가 일본여자라 애칭을 붙여준 밀리 존스란 여인입니다. 그녀가 들고 있는 종이우산은 4겹의 닥종이로 만든 전형적인 일본풍의 소품이지요. 그의 자포니즘 시리즈 연작에는 꼭 이 우산이 등장합니다. 그녀의 곱슬 한 앞머리가 모델의 동그란 얼굴을 도드라지게 합니다. 머리두건은 고전적인 머리띠 형태의 리본으로 묶고 여기에 꽃 장식을 더해 일본풍의 아스라함을 고혹적으로 드러내고 있지요. 허리를 감싸는 붉은 톤의 좁은 리본은, 넓고 입체적인 일본식 오비라기 보다는 고전적 스타일 양식을 되살리기 위해 사용한 일종의 소품인데 이것은 당시 파리 패션을 일본풍 패션에 결합하여 새롭게 만든 것이죠. 일본 패션이 유럽에 미친 영향은 지대합니다. 당시 코르셋으로 온 몸을 감싸고 다녔던 여성들을 해방시킨 것이 바로 이 기모노였습니다.

 


조지 브라이트너

'백색 기모노를 입은 여인, 캔버스에 유채, 1894

 

기모노는 당시 파리의 여인들에게 자유를 부여한 옷이기도 했습니다. 당시 빅토리아 시대의 패션은 여성의 신체를 철저하게 부위별로 구분하여 족쇄처럼 묶고 조이는 의상철학을 가지고 있었지요. 여기에 비해 기계적인 재단을 거부하고 한 장의 천으로 몸을 감싸는 것을 철칙으로 한 일본패션은 당시 유럽여성들이 누릴 수 없었던 신체적 자유를 선사합니다. 우리가 흔히 라운지웨어의 효시가 바로 이 기모노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 알고 계세요?. 브라이트너의 그림 속 백색 기모노는 라운지웨어의 효시를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당시 유럽여성들은 기모노를 실내복으로 주로 착용합니다. 에도 시대 사무라이 계층 집안 여성들이 입던 린주 라 불리는 흰색 자수 원단을 수입해 유럽 여성들의 몸에 맞게 재단한 후 판매되었다고 하지요

 

 

도나 카렌

기모노를 변형한 현대수트 2006

 

기모노가 현대 패션에 끼친 가장 큰 영향을 들라면 무엇보다 의복 구성의 철학을 변화시킨 점을 들 수 있습니다. 당시 서구패션은 옷에 신체를 맞추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즉 코르셋과 바디스(상부), 크리놀린을 이용하여 여성의 몸을 상체, 허리, 하체로 철저하게 나누어 조이고 구속하는 형태를 취한 것이죠.

 

이에 반해 텍스타일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진 일본인들은 천을 몸에 맞추어 재단하기 보다 신체 위에 걸치는 형태로서 처리합니다. 옷과 신체 사이의 여백이 발생합니다. 이 여백의 미는 옷과 착용자의 독특한 신체상의 개성과 맞물려 매력을 발산하지요. 신체를 규정하고 바라보는 방식이 동양과 서양이 매우 다름을 의상 제조 방식을 통해 이해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이후로도 계속해서 기모노는 복식사에 영향을 끼쳤습니다. 1차 세계 대전 직전까지 당시 불어 닥친 오리엔탈리즘의 영향으로 터키 패션과 더불어 서구 유럽 여성들의 코르셋을 폐기하는데 큰 몫을 하게 되지요.

 

1953년 프랑스의 패션 디자이너 크리스챤 디오르은 일본의 다이마루 백화점과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본격적으로 일본에 진출합니다. 서구유럽이 동양의 보석 일본에서 수입했던 기모노가 본격적으로 서구인의 손에 의해 재 탄생하고 다시 역수출되는 상황이 발생하지요. 이후 디오르는 백화점에 자신의 살롱을 개점한 후 현지 일본인들의 구미에 맞는 디자인을 전개합니다. 금실과 은실로 일본의 전통적인 배나무 무늬를 자수로 처리하여 그 매력을 더했습니다. 볼레로 상의와 함께 착용하는 오렌지색 볼레로 상의가 눈길을 끌지요. 디오르는 전통 일본 실크를 이용한 상품을 디자인함으로써 일본인들의 호감을 자아냅니다. 도나카렌의 작품은 바로 서구 디자이너들이 여전히 기모노에서 아이디어를 얻고 있음을 반증하는 작품이지요.

 

 

 

              이세이 미야케의 1995S/S                                                  요지 야마모토의 1995S/S

 

이후 이세이 미야케와 요지 야마모토와 같은 일본 출신 디자이너들이 대거 파리 패션계로 진출합니다. 그들은 기모노의 전통을 새롭게 부활하여 파리 패션계를 강타합니다. 그들에게 있어 기모노의 부활은 단순하게 기모노의 전통적인 미학, 한 장의 천으로 그려낸 그림이라는 뜻에 서구의 구성주의를 덧붙여 새로운 패션을 창조합니다. 1976년 미야케는 일본의 전통극인 노의 의상을 현대적으로 변용한 의상을 선보였습니다. 반면 요지 야마모토는 기모노의 전통적인 특징 중 하나인 오비(허리띠)를 십자 모양으로 교차시켜 매는 형태의 디자인을 선보입니다. 그는 기모노와 오비의 관계를 새롭게 검토하면서 현대적인 의상으로 적용하는데 성공합니다. 검정색 저지 소재의 상의, 강렬한 레드 바탕에 황금빛 국화 자수 무늬가 새롭게 피어난 기모노의 미를 아련하게 드러냅니다. 기모노는 일본과 서구의 디자이너들을 통해 변화와 변화를 거쳐 일본을 새롭게 규정하는 복식의 언어로 발전하지요. 전통을 고수하되, 전통의 기저에 흐르는 특성들을 현대적인 감성으로 부활시키는 일. 그것이 디자이너의 몫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번 7월달 <행복이 가득한 집>에 기고하려고 썼습니다. 물론 잡지에 실리는 내용은 다릅니다. 현대적인 내용을 더 담아달라고 해서 변형을 해서 썼지요. 초기 원고인데 <샤넬 미술관에 가다>에서 미처 하지 못했던 말들 하고 싶어서 올렸습니다.

 

 

책이 반응이 좋습니다. 여러분 모두의 성원 덕분이지요.

교보 5월 마지막 주 베스트 8위에 올랐고 인터파크에선 4위에 들었습니다.

이번주 북 데일리와 인터뷰를 했고, 내일은 <출판저널>과 미술관에서 인터뷰가 있습니다.

더욱 열심히 성장하는 문화의 제국이 되었으면 하네요.

 

힘내서 한발자욱 한발자욱.....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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