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 참가자들을 향해 벽돌을 집어던지는 전경들
비폭력의 영혼을 가슴에 담고 저항하기엔, 그들의 저항이 너무 작고
미약합니다. 정부는 참 이상합니다. 보수단체 세력이 가스통에 불을 붙여 협박하고
갖은 쇠파이프와 각목을 실은 차를 동원해 다니는 것을 육안으로 보고도
그 어떤 처벌도 하지 않습니다. 오늘 조선일보는 또 우리를 가리켜 '무법천지'라 폄하했습니다.
과연 누가 무법입니까? 국민들의 압도적인 숫자가 반대하는
졸속외교를 했던 이가 누구였습니까. 국민에게 사과한다 반성문을 쓰겠다면서
이틀이 지나 말을 바꾸고, 폭력시위 엄단이란 소통불능의 말을 내뱉은 이가 누구입니까?
시민들의 손가락을 입으로 물어뜯고, 방패로 찍어 절단시킨 이는 누구입니까.
지금보면 비폭력이란 말보다 우리 시민들에겐 자위권 발동이란 표현이
오히려 더 적절하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정당방위를 위한
수단을 찾는 일이겠지요. 연합뉴스의 수장도 자신의 예스맨으로 앉혀
고작 내놓는 기사가 이렇습니다. 인용합니다.
25일 밤 집회의 경우 초반엔 정부의 고시 결정에 반발해 자발적으로 참여한
시민들의 모습이 많이 목격됐으나 집회가 밤늦게까지 이어지면서
보통 시민들보다는 대학생, 저소득층 자영업자 또는 노숙자 등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눈길을 끌었다
<6월 26일자 연합뉴스>
대통령과 어청수 경찰청장에게 묻습니다. 이 기사를 쓴 기자에게도
질문합니다. 당신들에겐 저소득층 자영업자와 노숙자는 시민이 아닙니까?
중소업체 대표는, 88만원 세대를 살아가며 취업을 걱정하는 이 땅의 대학생은 시민이 아닙니까?
기사를 보십시요. 대학생은 시민이 아닌걸로 되어 있습니다.
비 오는 날, 광화문에 나갔습니다.
아름다운 사람들, 빗물이 고인 거리에서 서로를 얼싸안고
한끼의 밥을 나누고, 남녀노소 할것없이, 바른 목소리와 영혼을 갖고 이 거리에
나와 있는 이들은 왜 시민이라는 말을 들어서는 안된다고 이야기합니까?
당신들이 분류하는 시민은 과연 어떤 자격을 가진 이들입니까.
답답합니다. 기준을 이야기하자고 과학적 기준과 검증을 이야기 하자면서
결국 그 기준의 유무와 방식을 물을 때면 항상 답이 없는 당신들을
언제까지 믿으며 지켜보라고 하시는지요. 기자가 쓴 기사 속, 시민들의 분류법 속에
이미 이 정권이 이 땅의 국민들을 바라보는 시선과 그 방식이
다 담겨 있음을 또 느끼고 배울 수 밖에 없습니다.
가지 않을 수 있는 고난의 길은 없습니다.
돌이켜보면 지난 날의 고난의 길이 있기에 여기에 온 것이지요.
이 정권이 만든 시대의 상처, 어깨에 얹었던 무거움을 떨어내고 이제 나머지 희망을
그나마 주섬주섬 챙겨 돌아오기 위해서 우리를 거리에 나갑니다.
조중동이란 너무나도 막강한 힘을 가진 우군을 가진 당신들
그들은 우리를 범죄자로 낙인찍지 못해 안달을 하지요.
더 이상 우리 안에서 아무것도 할수 없었던 한올의 실이 피륙이 되어
본질적 진노의 자식들인 당신들을 사랑으로 안아드리겠습니다.
28일 2시 광화문에서
우리 만납시다. 이제 포기하지 않습니다.
웃으며 환하게 만납시다.
우리 안에 있는 분노, 우리 안에 있는 정의,
내가 나를 먼저 포기하지 않기에
이 나라를 포기하지 않기에
어느 곳에서나 함께 하는 것들이 있음을 믿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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