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Holic/일상의 황홀

한국의 타샤튜더-효재 아줌마네 집에서

패션 큐레이터 2008. 4. 8. 23:14

 

볕이 좋은 봄날입니다.

지난 일요일 삼청동에 나갔다가, 제가 좋아하는 한복 디자이너

이효재 선생님 댁에 들렀습니다.

 

 

이번에 두번째 책을 출간하신 탓에 인터뷰 하러 온 기자들이 많은 모양입니다.

조용히 사진이나 찍고 눈 인사나 하고 돌아가야지

할 생각으로 들어갔더랬지요.

 

 

피아니스트 남편을 위해 싱싱한 고추만 따다

햇살 좋은 볕에 말리고 있는 것 같네요. 재즈 피아니스트 임동창 선생님은

이효재 선생님의 사랑하는 남편입니다. 발그랗게 익은 고추를 보니, 한웅큼 따다 장을 담구어도 좋고

요리재료로 사용해도 그지 없겠다 싶네요.

 

 

 

마당 깊은 집 마당에 환한 빛깔의 우산을 말려놓으니

그 풍경이 아주 곱습니다. 효재 선생님 집에 가면, 꼭 사진을 찍고 싶게끔 만드는

소품들과 배경이 눈길을 끌지요. 가지런히 접어 정리한 피륙들을 보면

마음도 곱게 접어야만 할 것 같습니다.

 

 

바느질에 필요한 도구들과 반짓고리함이

나전칠기 도자상 위에 예쁘게 엊어져 있습니다.

 

 

 

한국의 타샤튜더라고 말하는 데는 이유가 있지요.

타샤튜더를 모르는 분들을 위해 예전 이분에 대한 글을 쓴 것을 링크시켜 놓겠습니다.

19세기 빅토리아 풍의 패션을 고수하며 30만평이 넘는 정원을 가꾸며 사는

고운 할머니, 세계적인 동화작가이자 삽화가인 타샤튜더 할머니는

최근 한국에서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아기가 없어서 선생님의 집에는 대신

실물 아기 인형들이 종종 놓여있어요. 선생님은 보자기를 참 좋아하시죠.

연두빛, 분홍빛 고운 겹보자기로 싼 도시락. 먹지 않아도

보고만 있어도 배가 부르지요. 보자기는 선물을 할때, 우리의 마음을 겹쳐

소중하게 덮어내는 우리 고유의 아름다운 문화의 아이콘입니다.

 

 

효재 선생님의 라이프 스타일도 타샤튜더 할머니랑

많이 닮아있지요. 서울의 번잡함을 떠나, 용인 산골에 건축 디자이너 친구가

지어준 예쁜 집에서, 장도 담그고, 야채도 키우고 그렇게 유유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언론에 자주 비추어졌죠.

 

 

님비 곰비 차곡차곡 정리해 놓은

천연염색 천들이며, 색들과 방석이 짙은 밤색 오크마루를 배경으로

곱게 놓여 있습니다. 볼때마다 정리벽과 그 기술에 놀라지요.

한때 나도 이 사람을 따라해야지......살림의 달인이 되어보리라

블로그를 통해 말한적도 있고, 훈련도 해 보았으나 여전히 미숙한 제 자신만 찾아봅니다.

 

 

기회가 되면 한복 디자인을 제대로 배워보고 싶습니다.

양장과는 다른 평면재단으로만 만들지만, 한복에는 항상 뭐라 말할수 없는

정갈함이 배어나옵니다. 만드는 이의 품새도 그렇고요.

다음....이라는 부사를 썩 좋아하진 않지만, 효재 선생님이 지어주신 한복을 입고 싶습니다.

 

 

선생님 집에 갈때마다 항상 보는 재봉틀

Singer라고 쓰여있지요? 아이작 메릿 싱어는 세계 최초로 재봉틀을 만든 사람입니다.

1882년산은 아니지만, 꽤 오래된 디자인이죠.

 

 

사진 앞에 놓여진 예쁜 꼬까신......

누가 신을 것인지 참 귀엽네요. 선생님을 가리켜 살림의 대가다

마샤 스튜어트다....등등 별별 말들이 돌지만 사실 타자의 눈에 보이기 위해서일지라도

이렇게 정갈하게 정리해놓고 사는 일이 녹록치 않다는 것은

살림을 해본 사람은 다 알겁니다.

 

 

올 봄엔 꽃집으로 시집가서
꽃살림 차려놓고 꽃처럼 살다가
꽃벌에 쐬서 오이꼭지로 문지르며 한여름 살아야지

 

이생진의 <꽃살림> 전편

 

봄이 깊어갑니다. 장가가고 싶은 계절이기도 하지요.

다른 건 몰라도, 집안일 나몰라라 하는 남자는 안될 생각입니다.

선생님 집 정도는 아니더라도, 예쁘게 가꾸고 살림도 잘하는 남자가 되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이 집을 다녀오는 날엔 꼭 하게 되거든요.

 예쁜 꽃베게 베고 꽃잠이나 실컷 자봤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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