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Holic/영화에 홀리다

내 추억속의 영화-8월의 크리스마스

패션 큐레이터 2007. 12. 21. 01:24

 

 

세월이 흘렀다는 것. 그렇게 나이를 한살 한살 먹어갈수록 꼭 기억에 남는 한편의 영화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제겐 잊을 수 없는 영화가 있습니다. 바로 오늘 소개하는 <8월의 크리스마스>입니다.

이 영화에 대한 기억이 남다른 것은 제작과정 내내 이 영화사에서 일을 했고,

저 또한 그 과정속에 열심히 땀을 흘렸기 때문이지요.

 

1997년 학기가 시작되고 영화미학론 수업에 들어갔습니다.

당시 유지나 교수님은 우리들에게 현장에서 영화를 배우라는 뜬금없는

이야기를 하셨지요. 앙드레 바쟁이니 타르코프스키니 떠드는 것 보다 그저 영화 한편 실제로

만드는 곳에서 일하고 와서 이야기 하자.....그러셨거든요. 그러면서 실제로 인턴쉽을 하고

 그 결과를 가지고 학점을 주시겠다고 공표를 하셨습니다. 부랴부랴 영화사를 수배해 찾아간 곳이 바로

사이더스란 영화사의 전신이었던 <우노필름>이었습니다. 신사동에 하명중씨가 하던 영화관 뤼미에르가 있었고 그 옆이였죠.

still #1

처음 들어가니, 어디에서 왔느냐고 하더군요.

이곳에서 인턴쉽 할수 있느냐고 하니까, 당시 프로듀서 분이

그런 전례가 없다고 가라고 하시더라구요. 그래도 저는 꼭 학점을 따야 한다며

일하게 해달라고 했죠. 뭐든 하겠다고 이야기 했던 것 같습니다.

 

다음날 다시 오라고 해서 면접을 보고 그때 처음으로

차승재 대표를 만났습니다. 귀 생김새를 보니 돈을 잘 버시게 생겼다.....뭐 이런 생각이

어린 나이에도 들더군요. 여차저차 들어오게 된 영화사 생활은 참 즐거움의 연속이었습니다.

물론 호랑이 같은 홍보팀 선배도 있었고, 이현순이라고 기억나는 사람이 있어요.

참 좋은 누나 였는데, 영화 정말 좋아하고, 예술 영화 꼭 보고 글쓰고 꿈을 키우던

사람이었거든요. 요즘은 어디에 있는지 연락을 못한지 꽤 되었습니다.

 

영화사에 들어가서 처음 일을 배운 곳이 홍보팀이다 보니

기자들을 만나거나 혹은 영화 시사회 이후 선물을 준비하거나 자리를 마련해서

작은 간담회를 하거나 하는 일들을 옆에서 보며 도왔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수많은 기자들이 있었지만

웃기지도 않은 삼류 기자들도 많았고, 특히 잡지사 여기자들의 무개념은 생각하고 싶지 않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기자는 지금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계신 안정숙 대기자입니다.

아마 당시 한겨례 신문에서 영화 평론을 쓰셨던걸로 기억하고 있어요.

왠만한 평론가들 보다 더 좋은 질문, 날카로운 질문을 하셨던 분으로 기억합니다.

다음에 혹시라도 기회가 된다면 참 뵙고 싶은 분이죠.

still #3

당시 막 영화사에 들어갔을때 <모텔 선인장>이란 영화가 편집중이었죠. 이 영화는 비록 흥행에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당시로선 왕가위 감독과 호흡을 맞춘 크리스토퍼 도일의 촬영으로 상당히

특이한 영상언어와 전개방식을 보여주었던 영화였습니다. 이 영화를 충무로에 있는 기자용 리뷰실에서

본 직후 투입된 영화가 바로 이 8월의 크리스마스였습니다. 8월의 크리스마스였지만

실제로 촬영이 시작된 것은 늦가을이었고요. 군산 촬영지엔 2번 내려갔네요.

still #4

지금과 달리 한석규 선배는 당시 최고의 배우였습니다.

충무로에서 그를 만난다는 것은, 혹은 작업을 한다는 것은 흥행을 보증한다는 이야기였으니까요.

군산 촬영 첫날, 세팅 마치고 아침에 촬영시작 하기 전에 밥 먹으면서 한석규씨 막 훔쳐보고

했던 기억이 나네요. 물론 후반부 촬영을 위해 종로 구청 식당에서 로케이션 했던 것도 기억나고요.

제 기억에 심은하씨가 연기를 잘 했던 배우라곤 생각하지 않습니다. 정말 많은 엔지를 냈고

촬영은 하루 종일 걸려야 했죠. 하루 분량의 필름 스톡을 넘겨서 제작부장은 혼이났고요.

그래도 오케이 사인 받고서 열심히 떡을 돌렸던 기억이 납니다.

still #5

군산촬영도 기억에 남고, 영화의 끝부분 눈이 오는 부분을 촬영하기 위해

3톤이 넘는 소금을 뿌려야 했던 연출부와 스테프들은 참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물론 저는 서울에서 열심히 영화글 쓰고, 지금은 없어진, 접이식 영화 소개서라고 해야 하나요?

여기에 들어갈 문구랑 글들이랑 막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영화 포스터 비주얼 작업할때 투표도 했고요

물론 저도 첫번째 사진의 포스터를 골랐지요. 아마 시안이 5가지 였나 그럴거에요. 기억이 가물가물 하네요.

still #6

위의 스틸 사진이 기억나는 것은 어느 늦 가을, 예전 서울예술대학 가는 남산길

에서의 촬영이 기억에서 잊혀지지 않아서입니다. 그때 열심히 낙엽을 모아다 거리에 뿌리고 했던

기억이 나네요. 그때 한석규씨랑 같이 분식집에서 라면 먹었던 기억도 나고

아마 같이 먹었던 사람이 <인어공주><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최근 <경의선>을

연출했던 박흥식 감독님이었나 그럴거에요. '너 뭐하는 넘이냐' 물어보시는데 라면먹다가 놀라서

체할뻔 했던 기억도 납니다. 그때는 그분들이 어쩜 그리 높아 보이시던지요.

 

가장 기억나는 분은 그래도 허진호 감독님과 촬영을 맡으셨던

유영길 감독님이 아닐까 합니다. 허감독님의 영화는 그 후로도 다 봤지요. 참 좋아해요

이분의 따스한 시선과 영상언어, 실제 모습이나 이미지도 그렇죠. 차분하고 조용하신 분이니까요.

함께 작업했던 유영길 감독님은 이 영화를 끝으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가장 가슴아픈 사건이었죠.

영화 아카데미에서 강의하시면서 가장 아꼈던 제자의 영화라며 몸을 아끼지 않고

혼신을 다해 현장에서 일해주셨던 고 유영길 감독님이 보고 싶습니다.

still #8

추억은 방울 방울 머리 속을 스치고 지나갑니다.

오래된 영화였지만, 98년 1월 이 영화가 개봉되던 날, 어머니랑 누나에게 초대티켓을

드렸지요. 아마 시사회날이었을겁니다. 수고했다고 등 두드려 주시던 어머니를 본 것도 이제

10년의 세월이 흘렀네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정녕 기억속에 각인된 따스한 한편의 영화

올해가 가기 전, 오래된 예전 기억을 되살리며 그저 살포시 웃어봅니다.

아직도 제 방 서재에 꽂혀있는 8월의 크리스마스 초판 시나리오, 연두색 겉지를 해서

곱게 곱게 먼지 묻을까 항상 만져보는 소중한 책이기도 하죠.

 

올 연말에 한번 이 영화 해주면 좋겠다 싶기도 하구요.

여러분은 어떠세요? 이제 정말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네요.....8월의 크리스마스

내 영혼에 작은 선물로 기억되는 영화. 그러고 보면 참 고맙습니다. 그런 경험들을 할수 있어서요

8월의 크리스마스 러브 테마 올립니다. 행복한 주말 맞이하시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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