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퇴근길에 영화 <아이언맨>을 봤다. 1963년에 태어난
만화의 주인공 아이언맨은 사실 <스파이더맨>과는 경쟁관계를 이루면서
미국의 영웅주의 만화 시장을 잠식했던 영웅적인 존재이기도 하다. 최신의 컴퓨터 그래픽
기술로 새롭게 탄생한 현대판 아이언맨은 볼거리부터가 확연하게 다르다.
화려하다 못해, 가상 현실같은 느낌도 든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 느낀건, 미국은 참 머리가 좋다라는 것이다.
어떤 점에서? 마케팅에 관점에서 그렇다. 사람들은 그저 이 영화에 대해 코믹스의 주인공이었던
슈퍼맨이나 스파이더맨과 달리 스스로 영웅이 되길 꿈꾼 한 인간의 이야기인양
포장한다. 그러나 오산이다. 이 영화에는 2008년 10월부터 시장에 출시될 파워 갑옷 Hal 5의
철저한 사전 마케팅용 영화라고 볼수 있다.
영화의 줄거리는 솔직히 간단하다. 억만장자이자 바람둥이에
천재과학자인 토니 스타크가 테러리스트의 공격으로 그들의 요새에 잡히게
되고 강력한 전투용 갑옷을 만들어 이곳을 탈출한다. 그후 그는 무기를 만드는 일에 회의를
느끼고, 선한 일에 자신의 무기가 사용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테러리스트와의 싸움, 나아가 내부의 적들과 싸우는 전사로 돌변한다.
그는 테러리스트의 공격으로 인해 이미 심장을 잃은 셈이다.
원자로의 힘으로 자신의 성장동력을 얻는 그는 자신이 개발한 수트 마크1을
계속해서 업그레이드 한다. 결국 음속의 속도로 나르는 파워 수트를 입고
수퍼 히어로 아이언맨이 되는 것이다.
잘 나가다, 사고 한번에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고(정신차리고)
개과천선한 과학자의 이야기 정도로 치부해도 좋다. 솔직히 이 영화의 줄거리는
여기에서 더이상 나가지도 줄어들지도 않는다.
오히려 내게 흥미롭게 다가오는 것은
영화 속에서 보여주는 외골격 전투갑옷(Exoskeleton Fighting Suit)가
실제 전투에 곧 사용될 무기란 점이다. 원래는 츠쿠바 대학의 HAL5 프로젝트에서
시작한 이 수트는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장애인들을 위해
만든 제품이었다. 이 수트를 입기만 하면 체네에 내장된 컴퓨터 칩과
갑옷이 서로 호응하며 무거운 물건도 거뜬히 들어올리는 능력을 보여준다.
HAL은 Hybrid Asistive Limb의 약자로 쉽게 풀이하면 디지털 판 인공수족 정도라고 해석하면 좋을듯 하다.
아이언맨을 보고 나서 기분이 좋지 않은건
그 속에서 할리우드와 펜타곤의 밀월관계를 넘어 이제는
사이버 다인(HAL5의 실 제조사)의 무기 마케팅 기술이 너무 확연하게
드러나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더 재미난건, 사이버다인사는 이미 영화 <터미네이터>에서
인간을 지배하는 로봇을 만드는 회사로 등장한다는 점.
할리우드는 항상 세계의 경찰, 혹은 세상의 질서를
바로잡는 이는 미국이라는 식의 사고를 영화를 통해 사람들의 머리속에 주형시켜왔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런 류의 이데올로기와 더불어 영화 속 다양한 무기들과
첨단 기술을 맛보게 하고, 다양한 국가의 영화 채널을 통해
무기마케팅까지 효과적으로 벌인다.
반전 영화로 점철된 1980년대 중반, 미국의 정서를
<탑건>이라는 영화 한편으로 깡그리 지워버렸고, 또한 영화의 성공과 더불어
F14 톰켓은 최고의 무기 아이템이 되었다. 이 뿐만이랴, 영화 <아파치>를 보면 아파치 헬기가
주인공이고 실제 영화 속 주인공들은 이 무기를 위한 부속물 정도로 밖엔 보여지지 않는다.
전투용 갑옷의 등장은 사실 1959년 SF 드라마 스타트랙에서
이미 예견되었고, 이후 만화 <아이언맨>에선 만화의 이미지를 빌어 그 모습을
재현한 것이었다. 그리고 2008년 드디어 시판을 앞두고 있는 사이버 다인사의 제품을
효과적으로 마케팅 하기 위한 포석으로 우리는 영화 <아이언맨>을 만난다.
이 영화를 보면서 궁금한 것은
테러리스트는 철저하게 테러리스트여야만 한다는 점.
왜 그들이 미국에 저항하는지에 대해서는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영화가 가져야할 매력 중에 흔히 핍진성이란 것이 있다.
한 마디로 영화 속 이미지가 너무나도 현실같아서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의심을 잠시 접어두고 영화에 빠져드는 것을 말한다. 흔히 18세기 낭만주의 시인들은 이러한 특성을
'불신의 의지적 보류'란 참 까다로운 용어를 써가며 설명을 했다. 예술작품의
특성으로서, 그려낸 현실이 너무 사실같아서 무조건적으로 빠져드는 것. 그런 기능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 영화엔 낭만주의 시대 작품 마냥
주인공의 개과천선 과정이 아주 가볍게 윤색되어 있고, 이 또한 낭만적으로
처리되어 있다. 그리고 관객들은 그 낭만을 진실로 받아들인다.
더 재미있는 건, 이 과정에서 꼭 새로운 사랑을 만나는 미국식 낭만주의의 극치를 보여준다
(이건 영화를 보면 알게 된다)
영웅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라는
영화적 명제를 이 영화는 갖은 화려한 CG 기술을 통해 보여준다.
결국 미국의 자본력과 과학의 힘이 영웅을 꿈꾸는 미국 사회의 집단적인 욕망을
그대로 드러내는 매개가 되는 영화를 통해, 관객들은 자연스레 미국의 주장에
온건한 동의를 표하게 된다.
이번 영화를 보니 속편도 모자라 4편까지는 충분히 만들 각오를 하고
소품을 준비한 영화 같다. 보는 동안 즐겁게 봤다. ILM사의 가공할 그래픽 기술을 통해
재현된 인간 영웅의 세계를 보며, 예전 아이작 아시모프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미래에 인간은 점점 더 로보트가 되어갈 것이고
로보트는 점점 더 인간에 가까와 지게 될 거라는 말.
기계와 인간의 공진화(함께 진화함) 현상을 지칭한 말이기도 했지만
이 현상이 왠지 그리 반갑지만은 않다. 새로운 무기를 통해
평화를 가져오겠다고 이야기하는 아이언맨의 환상이
그저 무기상들의 변론으로 들려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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