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Healing/내 영혼의 갤러리

서울에서 차이코프스키를 만나는 방법

패션 큐레이터 2007. 12. 7. 02:54

 

 

일요일날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을 들렀습니다.

<칸딘스키와 러시아 거장전>을 하더군요.

내년 1월 중순에 러시아 횡단열차 여행을 합니다. 그때 트레티야코프 미술관과 에르미타슈

모스크바 미술관 등을 다 돌아보려고 하는데요. 다행히 이번 전시에는 트레티야코프와

러시아 미술관의 주요 작품 91점이 전시되어 미리 공부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일리야 레핀

<작가 투르게네프의 초상> 1874년, 캔버스에 유채, 116*89cm

트레티야코프 미술관, 모스크바

 

이번 전시는 주로 19세기 사실주의 작품에서 20세기 아방가르드 시기를

아우르는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칸딘스키와 샤갈과 같은 거장이 있는 근대보다

저는 오히려 19세기 사실주의 작품들이 저를 사로잡더군요. 특히 19세기엔 초상화와 풍경화가

그 주를 이룹니다. 삶의 진실이 곧 예술이었던 시대의 초상이 잘 드러나 있지요

 

위의 그림 속 주인공은 소설가이자 시인이 투르게네프입니다. <첫사랑>이란 소설을

읽으신 분이 있다면 바로 떠올리실 수 있을 거에요.

 

 

일리야 레핀

<숲에서 쉬고 있는 톨스토이> 1891년, 캔버스에 유채, 60*50cm

트레티야코프 미술관, 모스크바

 

이 그림 앞에서 한동안을 서 있었습니다.

19세기의 위대한 작가 레핀과 톨스토이가 30년 지기 친구였다는 사실을

이 작품의 해설을 읽으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이곳은 톨스토이가 머무는 영지 야스니아 폴랴나

란 곳입니다. 레핀은 이곳에 초대를 받고 17일간 머물며 쉬었는데요

그 당시 그린 그림이라고 하네요. <숲에서 쉬고 있는 톨스토이>를 보면

나무 그늘 아래 누워 손에 책을 들고 푸른색 가운을 깔고

흰색으로 몸을 감싼 대문호 톨스토이의 모습이 보입니다.

한없이 편해 보이지 않으세요? 저도 따라서 눕고 싶었습니다.

 

 

니콜라이 쿠츠네초프

<작곡가 차이코프스키의 초상> 1893년, 캔버스에 유채, 96*74cm

트레티야코프 미술관, 모스크바

 

드디어 차이코프스키가 나왔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차이코프스키를 자주 듣기에 이 초상화도 유념해서 보았습니다.

이 초상화가 그려진 시기는 작곡가가 임종 하기 몇달 전

우리에게 잘 알려진 6번 교향곡을 막 완성한 때였다고 하죠.

실제 그림 속 이미지는 칠흙같이 검은 수트에 눈동자만이 강하게 드러납니다.

 

뭐랄까 꼭 폭발할 것 같은 강인한 느낌이 그림 곳곳에 배어있어요.

그림의 구도와 색채 모두, 작곡가로 살아온 한 인간의 내면적인 고통이랄까

아픔과 기억들을 동시에 담아내는 것 같습니다.

 

 

그레고리 마소도예프

<지방자치회의 점심식사> 1872년, 캔버스에 유채, 74*125cm

트레티야코프 미술관, 모스크바

 

개인적으로 이 그림 정말 좋았습니다.

말씀드렸듯 19세기의 러시아 회화는 화가 마소도예프의 걸작 중 하나라고 합니다.

19세기 사실주의 회화는 삶의 불평등, 민중과 가진자들의 모습과 그 차별에 대해

분노하며 가난한 자들을 감싸안는 화가의 시선이 절대적이었습니다.

 

이 작품의 제목을 보니 <지방자치회의 점심식사>라고 되어 있지요

말 그대로 지역의 관리를 담당하는 기관이지요. 1860년대 러시아에서 조직되었다고 합니다.

이 지방자치회의 의장은 토지를 소유한 부자에서 도시 부동산 소유주, 농민등

다양한 계층 출신에게 주어질 수 있었다고 해요.

 

하지만 실제론 농민들은 형식적인 선거권만 있을 뿐 어떤 권리도 갖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림을 자세히 보시면 아래 층에 벽에 기대어 시골음식을 나누어 먹는 농민들과

윗층에 그릇을 닦는 하녀의 모습과 포도주가 묘한 대조를 이루지요.

결코 하나가 되기엔 무리인 두 계층간의 현실이 드러납니다.

 

 

바실리 그레고리예비치 페로프

<익사한 여인> 1867년, 캔버스에 유채, 68*106cm

트레티야코프 미술관, 모스크바

 

페로프란 작가를 찾아보니 한 마디로 1860-70년대 러시아 회화의 거장이다.

뭐 이런 설명이 나옵니다. 어쩐지 그림에서 눈을 못 떼겠더군요. 강한 느낌이 발산되는 것이

처음에 이 그림을 볼 때 떠올랐던 것은 빅토리아 시대의 라파엘 전파 그림 중

익사한 여인의 테마를 그린 그림이었습니다.

 

페로프는 러시아 사람들의 슬픔과 삶의 고통을 날카롭게 그려낸 작가라고 해요.

상처받은 사람들의 모습이 주를 이룹니다. 그림 속에서도 여인은

삶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자살을 했고, 이것은 우리들의 자연스런 일상에서

발생한 일이기에 그 슬픔이 더하지요. 문제는 그녀를 보고 있는 경찰의 풍모입니다.

그저 이런 상황이 별 대수롭지 않다는 듯 담배불을 붙이는 경찰의

모습에서, 현실의 고통 속에 살아간 민중들의 모습이 더욱 강렬하게 드러납니다.

 

뒤로 보이는 모스크바의 성벽도 바로 이런 소외감을 더욱 강하게 만드는

장치가 아닐까 싶네요. 이러니 혁명이 났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레고리 마소예도프

<농번기> 1887년, 캔버스에 유채, 179*275cm

러시아 미술관, 상트페테르부르크

 

이번에도 마소예도프의 작품입니다.

전시회 가시거든 이 작품 앞에선 꼭 서서 오랜동안 지켜보세요.

일단 가운데 딱 놓였고 그림도 큽니다. 시원해요. 눈부신 햇살이 가득 수직으로 떨어지는

계절, 풀숲의 느낌도 좋고 강인하고, 황토빛과 황색 하늘의 구름이 너무나도 잘 조화되어 있죠.

 

물론 이 그림을 보는 우리들은 그런 생각들을 하겠죠.

농번기의 농부들, 선두에서 풀을 베는 농부와 그 뒤의 사람들에게선

리듬감이 느껴집니다. 노동의 힘, 그 신성함을 표현하는 그림이지만

결국 이 그림의 배후엔 여전히 농민의 신성한 노동을 짓�고 그 위에 군림하는 귀족들과

유산자계급의 시선이 놓여 있지요.

 

 

일리야 레핀

<볼가 강의 배 끄는 인부들> 1870년, 보드지에 유채, 23.5*50cm

트레티야코프 미술관, 모스크바

 

흔히 일리야 레핀을 이동파 화가 중 한 사람이다 라고 설명합니다.

도록에도 그렇게 나와 있는데 문제는 도록에 이동파가 무엇인지 설명을 안하고 있습니다

찾아보니 1871년 결성된 러시아 사실주의 화가의 모임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50여년동안 활동하면서 미술을 통한 민중의 계도라고 하는 사명을 지켜낸 작가들이죠.

이동파란 애칭이 붙은 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당시의 주요 도시인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벗어나 소외된 도시에서 주로 다니면서

이동하면 전시를 열었기 때문에 붙인 별명이라고 하네요.

 

이 그림은 트레티야코프 미술관에 걸린 레핀의 <볼가강의 배 끄는 인부들>이란

작품입니다. 한국 전시에는 그 초벌 스케치 작품이 걸려있고요.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을 수 없어 이것으로 대체합니다.

1870년 여름 볼가강으로 스케치 여행을 떠난 레핀은 최하층 계급 사람들의

모습을 자주 담았고, 당시 짐배를 끄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평탄치 않았던 삶의 굴레와 무게를 감내하며

살아가는 민중의 모습을 담아냅니다.

 

 

일리야 레핀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 1883-1898년,

캔버스에 유채, 44.5*37cm, 트레티야코프 미술관, 모스크바

 

드디어 트레티야코프 미술관의

가장 주요한 걸작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가 나옵니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첫번째 버전이 걸렸습니다.

아마 전시회에서 보시는 그림엔 여자가 집에 들어오는 모습으로 되어 있을 거에요.

이 그림이 인터넷에 없더라구요. 하여튼.....이 그림은 1870-90년까지 러시아 혁명과

이로 인한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의 변화, 유형지에서 돌아온 여인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지금 상황은 그리 썩 유쾌한 상황이 아닙니다.

이 그림이 유명하게 된 이유는 바로 그림 속 사람들의 심리가 아주

적절하게 표현되어 있어서지요. 유형지로 부터 돌아온 여동생

그녀를 바라보는 집에 있는 사람들의 표정

결코 반갑지 않습니다. 왜냐면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할지도 모르기

때문이죠. 그만큼 피하고 싶은 겁니다.

 

 

 

나탈리아 곤차로바

<흰 서리> 1910-11년, 캔버스에 유채, 101*132cm

러시아 미술관, 상트페테르부르크

 

이제 20세기 아방가르드로 갑니다.

이번 그림은 광선주의라 불리는 화파의 화가였던 나탈리아 곤차로바가

그린 <흰 서리>란 작품이에요. 작가는 아이들의 그림이 가장 순수하고 풍부하다고 믿었답니다.

그래서일까 자연을 묘사하되 자신의 의지로 풍성한 흑과 백의 조화가

돋보입니다. 그의 그림이 좋은 것은 무엇보다도 절제된 아름다움이

느껴지기 때문인데요. 광선주의 답게 빛의 알갱이들이 사물의 표면위에

덧입혀져 토해내는 사물의 윤곽선들이 곱습니다.

 

 

카시미르 말레비치

<소와 바이올린> 1913년 목판에 유채 48.7*25.7cm

러시아 미술관, 상트페테르부르크

 

흔히 미술사에는 <절대주의>란 작은 움직임이 있습니다.

러시아를 중심으로 일어난 운동인데요. 사물의 형태를 가장 극소화 시켜

몇가지 사각형이나 원형 원추의 형태로 환원해서 다시 그려내는 것이죠.

 

말레비치는 그 절대주의 화풍의 주요한 인물이었고요

그의 그림은 흔히 무논리주의라고 불립니다. 그만큼 변혁과 실험이

왕성하던 러시아 미술의 한 단면을 보여주기도 하고

그만큼 순수의 시대를 다시 한번 살아가려는

작가의 영혼이 느껴지는 그림이기도 합니다.

 

 

 

겨울 햇살아래 차 한잔 마시러 옥외로 나왔습니다.

나무에 걸린 붉은색 별장식이

곱더라구요......

 

이제 곧 크리스마스가 오나요?

그렇게 한해가 또 가는군요.

연말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그립습니다.

차이코프스키의 6번 교향곡도 듣고 싶구요......

오늘은 You raise me up으로 시작합니다. 매일 매일 다시 일어나는 마음으로

올 한해 잘 버티며, 감내하며 살아온 여러분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끝 모를 삶의 심연속에서 정금으로 단련된 육체를 만들어가며

가슴 한 구석, 아름다운 석양빛을 안고가는 여러분을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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