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Healing/내 영혼의 갤러리

레고블록으로 그린 인왕제색도

패션 큐레이터 2007. 11. 30. 13:05

 

배병우 선생님 전시 오프닝을 가기 위해

일찌감치 북촌동으로 갔습니다. 안국역에서 내려 갤러리로 걸어가는 길에

보이는 교회종탑이 눈길을 끕니다. 예전부터 한컷 꼭 찍어서 올려봐야지 했는데 오늘에서야 올리네요.

청회색벽돌과 색감의 대칭을 이루는 짙은 고동색 목조가 건물의 균형을 이룹니다.

종루 위에 나무 십자가와 수직으로 낙하하는 초겨울의 신산한 청록빛 햇살

그 정경이 고즈넉한 시간의 여백을 메웁니다.

 

 

본 전시를 보기 전, 옆에 있는 갤러리 인에 들러 황인기 선생님의 개인전에

잠시 들렀습니다. 길가에 놓여진 나무들이 겨울을 맞아

잔가지들만 호흡을 위해 여린 살들을 노출시키고 있네요. 그 위에 가지런히 달린

초롱등이 발산하는 오렌지빛깔의 미감이 저녁시간을 향해 가는

하루의 시간을 곱단하게 갈무리 합니다.

  

 

벽면 설치 전면

 

개인적으로 작가 황인기 선생님의 작품을 좋아합니다. 무엇보다도 그의 작품들은

디지털 시대의 미학을 한국적 산수를 통해 표현하는 것들이 많습니다.

특히 그는 다양한 매체들과 기법을 통해 산수화의 지평을 다양하게 넓히고 있지요.

 

 

몽유-세월, 합판에 혼합매체, 244 x 732cm, 2007

 

<몽유-세월> 이 작품은 합판에 굵은 대못을 일일이 박아서 만들어낸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조선시대의 화가 안견이 그린 <몽유도원도>를 모사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소재의 특이성이랄까요. 굵은 대못을 합판에 정성스레 촘촘하게 박아넣어

그 풍경의 정점을 구성하고 맙니다.

 

 

안견 <몽유도원도> 비단에 채색, 1447년, 일본 덴리 대학 도서관 소장

 

세종의 세째아들이었던 안평대군이 꿈에서 거닐었다던 도원을 보고

궁정화가였던 안견에게 부탁하여 완성한 작품. 몽유도원도는 사실 매우 정치색이 짙은 그림입니다.

이전 시대정신이었던 불교와의 결별을 선언하고 조선왕조의 국시인

유교를 받아들였음을 선포하는 그림이었죠. 원래 산과 심산유곡을 표현할땐

사찰풍경을 집어넣는 것이 일종의 관행이었지만, 안견의 그림엔 그런 불교적인 요소들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몽유-몽유, 플라스틱 블럭, 288 x 815cm, 2007

 

이와 같이 작가 황인기가 제작한 몽유도에는

이 시대의 정신이랄까, 우리 내 일상을 조직하는 디지털 기술을 통해

디지털화된 무릉도원의 풍경을 보여주는 것이죠. 마치 대못으로 꾸욱 눌러 박아넣은듯한

작가의 손길에는 이전 아날로그 풍경과 단절되는 시대의 차가움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나아가

레고블럭을 통해 하나하나 몽유 도원도의 풍경을 재구성함으로써

언제든 새로운 매체를 통해 우리의 정신성을 새로 그려낼수 있음을 보여주는 듯 합니다.

 

 

몽유도 부분확대-블럭 부분을 확대했습니다.

 

그림에 가까이 가서 표면을 찍어보았습니다. 이렇게 촘촘하게 레고블럭을 하나하나

조성하여 그린 <몽유도원도> 그림의 큰 규모를 생각할때,

얼마나 긴 제작시간이 걸렸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하긴 2004년 개인전 이후

3년의 세월이 걸린 셈이겠군요. 작가의 노역에 경의를 표합니다.

 

 

플라 인왕, 플라스틱 블럭, 144 x 240cm, 2007

 

원래 물리학도 였는 작가는 미술이 좋아 삶의 방향을 선회합니다.

그래서였을까,  이분의 작품은 자연과 인공을 교묘하게 결합합니다. 당대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경계

위에서 새로운 생각의 방식과 균형이 필요한 우리 시대의 모습을 담아내는 것이죠.

 

 

겸재 정선 <인왕제색도> 지본수묵,1751년,79.2 X 138.2cm, 호암미술관 소장

 

겸재정선이 1751년 비온 후의 인왕산의 풍경을 그렸던 <인왕제색도>입니다.

한국적 산수의 대표적인 작품이지요. 흔히 교과서에서 진경산수라는 말을 배우셨을 겁니다.

정신성을 강조하며 내면의 풍경이 곧 풍경이라는 식의 사고를 했던 당시

비온 후 눅진하게 빗물이 젖어들어간 바위와 산의 인상들을 정확하게 포착하여

그린 실제 정경을 그린 그림이라 바로 진경 산수라 합니다.

 

 

오래된 바람 07-대나무 숲, 실리콘, 캔버스에 아크릴 122 x 122cm, 2007

 

금이 갈망정 꺽이지 않는 그 곧은  성정을  두고
사람들은 그를 지절자에 비유한다
세상 살다 보면 휘일 때도 있고
꺾일 떼도 있고 더러는 뽑힐 때도 있다

능소능대 살아남기 위한 싸움
진흙탕 삶이 어찌 하랴 때묻기 싫고
타협하기 싫고 굴복하기 싫다면
아예 꼿꼿이 꺽일 일인가!

오늘도 대나무
는 옆에도 아래도 보지 않고
꼿꼿이  꼿꼿이 하늘만 향해 그 머리를 높이 쳐든다.

 

 

 플라 고풍 붉은색 블럭, 144 x 144cm, 2007

 

황인기 선생님의 작품을 보면서 내내 떠올린 단어는 바로 장자편에 읽은

<소요유>란 단어입니다.  자유롭게 노니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아무런 생각없이

걷거나 노니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일체의 관습과 관행, 우리를 무의식적으로 규정하고,

우리의 행동에 지침이라며 힘을 행사하는 모든 것들로 부터의 자유겠지요.

황인기의 작품 속 붉은 레고블럭으로 만든 오래된 산수의 풍경에도

바로 레드가 주는 강렬함,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형태의 풍경이 숨어 있습니다.

오늘은 바로 이러한 풍경 속으로 걸어 들어가 내 자신을 잊고 산책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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