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열_The Family_천에 먹과 아크릴채색_200×405cm_2006
예전 읽었던 소설가 김형경의 심리여행 에세이 <사람풍경>을
다시 한번 읽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 계절의 시간성이 이 텍스트를 다시 한번
음미해보라고, 아니 그 속의 내용들을 곰삭이며 내 안의 상처를 보듬어 보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왕열_동행_천에 먹과 아크릴채색_45.5×53cm_2006
사람이 있는 풍경만큼 아름다운 것이 없더군요.
물론 자연은 이 자연을 먹이고 살린 주체가 되지만, 인간은 결코 자연을 대상화 해서
그릴수 없다라는 동양적 화두의 뜻을 요즘들어서야 조금 알것 같습니다.
자연 속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 나는 나를 잊고 자연속에 하나가 되는것
꼭 물아일체니 하는 식의 한자투의 표현보다는
나와 너, 우리가 기실 하나에서 분리되어 끊임없이 그리워 하는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르고 마는 것입니다.
왕열_동행_천에 먹과 아크릴채색_45.5×53cm_2006
흔히 한국화를 이야기할때 화가가 보여주는 먹에 대한 태도를
이야기 할때가 많습니다. 용묵이라 해서 묵을 다루는 태토와 용색이라 하여
붓질의 기술적 방식을 설명하는 다양한 언어가 한국화에는 존재합니다.
오늘 소개하는 작가 왕열은 먹을 다루는 태도에 있어서 전통의 의미를 연마하여
살리되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가장 깊숙한 소통을 끌어내기 위하여
널찍한 화면속에 소중한 가치인 가족을 대입합니다.
왕열_동행_천에 먹, 아크릴채색_112×145cm_2005
서양의 풍경화는 자연에 대한 정복의 욕구가 만들어낸 산물이지만
동양의 풍경화는 자연을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
그 정신의 풍경을 그린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일까 그 자연을 재현하는 먹과 붓의 다룸과 태도를 소중하게 여긴것도
나 자신의 정신의 풍경을 가다듬고 그려가는 과정의 일부로 본 것이겠지요.
왕열_동행_천에 먹, 아크릴채색_80×117cm_2005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회사의 이사님이 한분 계십니다.
오랜 동안 엔지니어로 살아오신 분인데, 제가 매맞을 각오를 하고 이분에게
한번 사서 읽어보시라 권했던 책이 바로 <혼자 밥먹지 마라>는 제목의 책이었습니다.
물론 이 책은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인맥의 중요성이나 휴먼 네트워크와 같은 관념들에
메인 책이긴 하지만, 제목이 좋았던 탓인지 고르게 되더군요.
밥을 같이 먹는 다는 것은 다른 행위보다도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기(氣)운을 차리기 위해 밥을 먹지요. 그래서 그 한자 안에 아예 쌀의 뜻이
포함되어 있나 봅니다. 자연은 우리로 하여금 먹임으로써
생명의 확장과 연결을 위한 소통의 길을 뚫어주는 것이죠.
왕열_동행_천에 먹, 아크릴 채색_80×117cm_2005
소중한 후배들을 만나고
그들과 밥을 먹고 이야기를 하고 때로는 질책도 받고
그러나 그것이 따스한 충고이기에 이제 깊어가는 가을, 그런 만남들이
소중한 함께 걸어가는 이 길이 소중함을 느낍니다. 참 늦게서야 배우는 것 같습니다.
왕열_동행_천에 먹, 아크릴 채색_80×117cm_2005
새들이 함께 나는 이유는 먼 거리를 날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에너지를 아끼고 장거리를 안전하게 날아 목적지까지
귀착할 수 있다고 하더군요. 인간의 삶도 그러할 것 같습니다.
혼자서도 목적을 성취할 수는 있겠지만
나를 아끼고 소중하게 여겨주는 이들과 황홀한 삶의 목적에 이끌려
걸어가는 그 길이 얼마나 멋지고 아름다울까요
꼭 사회학적인 의미에서의 인간의 연대라든가
링크와 같은 개념 보다는 그냥 함께 있음, 그래서 나는 지금 참 좋다고
그렇게 단순하게 나 자신에게 말을 걸어보게 됩니다. 그렇게 목적을 향해 가는 길이
바로 우리들이 찾는 작은 행복의 무릉도원이 되겠지요. 서양인에게 그것이 천국이었듯 말입니다.
왕열_가을날의 여행_천에 먹, 아크릴 채색_72×100cm_2005
왕열의 그림 속에 녹아있는 저 동행이라는 화두
함께 가는 길이라는 정신의 풍경화가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은 다름아닌
한국의 정서로 승화시킨 온유한 마음의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시원한 공간감 속에
널브러진 부감으로 그려진 그의 풍경화는 서구의 추상성을 넘어
우리에게 행복의 조건으로서의 만남과 함께함에 대한 진지한 사의를 던지는 것이죠.
그리움이 커지는 시간입니다. 가을이란 계절은요.
빛도 그리움에 쩔었는지 그 여린 속살을 열어 어둠이란 친구를 맞이하듯
우리도 누군가를 소중하게 그리워하고 찾아가 작은 손 잡아주어야 할때인가 봅니다.
물같이 살았으면 해서
험준하다는 미시령 넘어갔지요
속초, 그 푸른 바다를 밟는데 발 아래
물고기들 나를 덥석 물고 물속으로 끌고 갔어요
물의 언덕을 구비구비 돌면서 물꽃 핀 것도 보고
물밥도 한 끼 얻어먹다가 물 같은 세상에 내렸는데
나보다 먼저 와 계신 당신 한꺼번에 달려든 물에 빠져버린 당신
물에 흠뻑 젖어 물빛으로 길들여진 당신 물속에도 길이 있고 문이 있으니
물처럼 흘러가다가 하룻밤 살 섞을 물집도 있겠지요
새벽 달빛에 고여있는 물만 먹고 살자고 했지요
물 같은 아이만 몇 낳자고 했어요 축축한 당신 손 잡고
몇 백 년을 살았는지 죽었는지 내 앉아 있는 곳이 불같이 뜨거워서
당신이 건네준 물 한 그릇을 숨도 안 쉬고 마시는데
둥실둥실 물바깥으로 떠올랐지요 물처럼 살자고 했더니
물에 젖은 몸을 내게 주었어요
김종제의 <동행> 전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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