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Healing/내 영혼의 갤러리

어느 가을날 창덕궁에서-내게 일어난 행복한 일

패션 큐레이터 2007. 10. 1. 02:27

 

지난 토요일 구본주 선생님의 전시를 보고 난 후

가을 하늘이 너무 좋더군요. 오랜만에 창덕궁에 가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표를 사고 매 시간 15분과 45분 두번의 관람 시간을 기다렸지요.

 

 

솔직히 창덕궁은 실제로는 두번째 와 보는 것이더군요.

서울 촌놈이 별거아니더라구요. 사실 여러 서울 내 궁을 가지만, 건축물의 역사와 의미에 대해선

사실 잘 모르는게 사실이니까요. 가이드 분의 친절한 설명을 들으며 가을 하늘 아래 산책을 했습니다.

 

 

고적한 하늘 아래, 소나무들이 자신의 손들을 뻣은 그 자태가 도도하면서도

곱습니다. 송연해지는 그 형상으로 인해 나태해진 제 자신을 다시 바라보기도 하지요.

 

 

문제는 이번 투어에 외국에서 온 노 부부분이 계셨습니다.

뉴욕에서 오셨다는데, 영어 투어 시간이 끝나서 할수 없이  들어오셨다더군요.

내 나라 궁정의 모습들을 영어로 제가 설명해 드렸습니다.

뭐 제가 알아서는 아니고, 가이드가 설명을 끝내면 축약해서 번역해 드렸죠.

 

 

 품계에 따라  질서있게 짜여진

선들의 잔치를 따라 웅장하게 놓여진 건축물들

 

 

각각의 문들을 구성하는 섬세한 무늬들, 열림과 닫힘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오방색의 빛깔들....모든게 단아하고 곱습니다.

 

 

기단위에 놓여진 동물들의 형상들, 수호신의 자격으로 서 있다고 하죠

 

 

창덕궁의 유일한 청기와 건물이더군요.

 

 

저는 한국의 전통 건축들을 볼때

구성요소들이 서로를 껴안듯, 포개어진 채 질서정연한 선의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것을 보면서 가슴 한 구석이 송연해집니다.

 

 

연초록빛 문과 그 자물쇠.....

열쇠를 둘러싼 장식과 문양들의 담백함과 소소함이 우리 내 정서를 담아내지요.

 

 

건축물 하나하나에도 의미가 담겨 있는 창덕궁의 모든 면모들이

눈에 들어올때쯤...... 

 

 

가을의 시간, 그 고혹의 절정을 맞이하는 비원의 풍경 속에

작은 비늘 하나 눈망울에서 떼어내고 맙니다.

 

 

진초록물이 베어나오는 연못 위에 고요하게 떠있는 정자

뜻과 역사들을 설명해 드리자 너무 좋아하셨답니다. Secret Garden을 너무나도 보고 싶으셨다고 하셨어요

배경으로 사진도 찍어 드리고, 대화도 나누고......

 

 

 구름만 끼지 않았다면

푸른 가을 하늘 아래 초록물감을 풀어놓은 듯한 비원의 풍광들이 더욱

빛이 날텐데 아쉽더군요.

 

 

찰스 할아버지와 바바라 할머니께서 직업이 뭐냐고 물으셔서

미술 컨설팅을 취미로 한다고 말씀드렸더니. 한국의 고미술에 대해 관심이 많으시다고 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뉴욕에서 사시는데 미술품 컬렉팅이 취미라고 하시더라구요.

 

 

리츠 칼튼에 머무시는데, 한국지리를 너무 모르셔서

계속 택시만 타고 이동하셨다고 해요. 더구나 공항에서 호텔까지 택시로 18만원을

냈다는 이야기를 듣고 어찌나 죄송하던지......관광 한국은 아직까지 멀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제가 대신 사과드렸습니다. 돌아가시는 길에는 셔틀버스를 타고 가시라고 말씀드렸구요.

호텔 Concierge 에 부탁하면 알아서 챙겨드릴거라고 했지요.

 

 

 나름대로 한국의 정원 양식과 기단, 단청무늬

오방색들 다양한 의미들을 설명해 보려고 노력했지만 부족한 영어실력으로 인해

많은 것 말씀드리지 못해 아쉬웠습니다.

 

 

원래는 창덕궁 투어만 도와 드리고 교회에 갔어야 했는데

할아버지랑 할머니가 너무 지리를 모르셔서, 토요일 저녁 시간에 택시를 타고 리츠칼튼까지

가실거라고 해서, 제가 대신 지하철로 모실테니까 이야기 나누면서 가시자고 했습니다.

저는 처음에 그냥 노년에 여행을 다니는 분들인가 보다 했지요.

비용도 아끼시라고 했고, 지금 시간엔 택시보다 그저 지하철이 좋다고 말씀드렸어요

 

그랬더니 길눈이 어두워서 지하철을 경험해 보고 싶었는데 길을 물어도 대답을 해 주는 사람이 없어서

못했다고 하시더군요. 한국 지하철 타시더니 너무 깨끗하고 좋다고 하시던데요.

한국사람들이 대부분 너무나도 친절한데 아마 아직까지도 언어때문에 다가가지 못하는 거니까

이해하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리츠 칼튼에서 식사를 같이 하시자고 하셨는데

호텔식 보다 한국에 오셨으니까 좀 더 독특한 식사 한번 해보시라고 권해드렸습니다.

저도 해외 마케팅쪽 일하면서 맨날 출장가면 호텔에서 밥을 먹기가 일쑤여서

오늘은 서울의 다른 멋을 한번 느껴보라고 제가 말씀드렸죠.

 

강남쪽에서 식사를 했기 때문에 고풍스런 한옥집과 같은 곳에서

한정식을 대접하진 못했습니다. 도가니탕은 할머니가 알레르기가 있어서 못드시구요

매운거 너무 어렵다고 하셔서 제가 담백하고 순한 요리로만 셋트로 골랐어요

아쉽게 사진에는 초기에 찍은 것이라 요리가 많이 안올랐네요.

 

 

 

탕평채랑 신선한 해물과 국수 샐러드,궁중 떡갈비랑, 스시롤이랑 회랑, 오이냉채,

다양한 부침개, 디저트로는 얼린 홍시와 신선한 제철과일들,

한국의 전통차를 내었고요, 할아버지는 코카콜라에 레몬 띄워 달라고 하셔서 그렇게 드셨어요.

 

식사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나누었습니다. 알고보니....이 두분

뉴욕에서 굉장히 큰 부동산 개발/건설회사를 하시는 분이셨어요. 사시는 동네 물어보고

놀랐습니다. 굉장히 부자 동네였거든요. 어찌나 두분이 검소하신지 놀랐습니다.

뉴욕의 집이 엄청커서 방이 남아돈다고 출장오면 호텔가지 말고 집으로 오라 하시네요.

 

월요일 아침에 베트남 여행을 떠났다가 10월 초순넘어 다시 한국으로

와서 4일간 깊은 여행을 하고 싶다고 하셔서, 서울대신 경주나 소쇄원같은 곳을 소개해 드렸어요

주말을 끼면 제가 모시고 가도 좋을듯 하더라구요.

 

할머니가 오늘 너무 고맙다고 하시면서 소원을 말해보라길래

그냥 한국에 대한 좋은 기억들만 가지고 가시고, 정 고맙다고 느껴지면 좋은 단체에 기부하라고

말씀드렸거든요. 할머니가 제 이름으로 4만불 내주겠다고 하시는데 원.......믿어야할지

주신 명함대로 찾아보니 굉장히 큰 회사의 프레지던트 시더군요......

 

그냥 하신 말이어도 좋습니다.

한국에 대한 좋은 기억만 가지고 떠나시길 바람합니다.

그리고......피크시즌때 혹시라도 제가 뉴욕에서 호텔을 잡기 어려울때 하루만 재워주시면 될거 같은데요.

가을 하늘이 곱습니다. 고운 두분도 좋고....작은 친절 하나 멋진 답 받은 것 같아서요

이제 10월이네요.....행복한 한주 되시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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