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Healing/내 영혼의 갤러리

기억되는 것은 사라지지 않는다-대장장이의 꿈

패션 큐레이터 2007. 9. 30. 00:15

 

 

가을 햇살 아래 사간동에서 강의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친구와 함께 창덕궁이 바로 보이는 조그마한 갤러리에 갔습니다.

2003년 타계하신 조각가 구본주 선생님의 기념 전시회 오프닝이었습니다.

 

 

공식 오프닝 행사는 6시였지만 2시쯤 너무 빨리 도착한 탓에 갤러리 안은

행사 준비와 작품 진열로 부산했습니다. 들어가는 길목에 보이는 잊혀 지지 않는 문구

<기억되는 것은 사라지지 않는다>. 오랜동안 이 문구에서 시선을 땔 수가 없었습니다.

 

 

조각가 구본주의 생은 무엇보다도 이 땅에서의 예술가들의 삶이

얼마나 척박한 현실속에 놓여 있는 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이었고 사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에게 있어 철이란 매체는 조각을 위한 매체를 넘어 <상황> 속에 놓여진

인간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그려냅니다. 현실을 반영하는 육체를 가진

우리들의 모습이 선연하게 드러나는 것이죠.

 

 

옥외에 설치된 그의 작품 몇가지를 봅니다.

그는 포천에 있던 그의 작업실에서 텔레비젼을 통해 보는 이 땅의 샐러리맨들의 비애를

그 현실적인 상황 속의 모습을, 한손에는 청동과 철을 들고 그것을 벼리워 나타냅니다.

 

 

이번 전시회에도 그의 다양한 작품들과 함께 구본주 선생님을 기억하는

많은 분들의 작품이 함께 전시되었습니다.

 

 

민중미술의 계보를 이어가며, 청동과 철을 녹여내

열정의 화로 속, 아직 태우지 못한 우리 내 영혼의 다비식을 연출했던 작가의

어이없는 죽음과 그를 둘러싼 사회의 냉대, 몰인정, 무엇보다도 예술가의 사회적 지위에 대한

무지에 대해서 울분을 삼켜야 했던 2003년을 기억합니다. 예술가들의 일인시위가 끊임없이 계속되었고

삼성생명의 터무니 없는 발뺌과 해석에 대해 예술가들은 저항했지만 무참하게 무너지고 말았죠.

 

 

항상 그의 조각 작품 속에는

말못하고 끙끙거리며, 안으로 삼키는 상처들을 만들어 내며

내 스스로를 괴롭하는 나 자신의 초상이 숨겨 있습니다.

 

 

삶이 여전히 우리에게 무겁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만이 희망이다라는 메세지를

그는 자신의 작품을 통해 전달하려고 부단히 애썼답니다.

 

 

중산층이라고 믿고싶은 소시민들에게

너무나도 힘든 이 한국이란 사회는, 여전히 버겨운 꿈을 견뎌내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생각해 봅니다.

 

 

삶에서의 혁명을 꿈꾸기엔 우리는 너무나도 소시민이며

그것을 위해 칼을 가는 것 조차도 이제는 허용이 되지 않는 것 같은 이 사회.

 

 

실제 회사에 다니던 대리시절, 이분의 작품을 볼때마다

월급쟁이의 비애를 생각했고, 목까지 차오르는 말할 수 없이 설명할 수 없는

서러운 감정에 사로잡히곤 했습니다.

 

 

후배 조각가 분이 만든 구본주 선생님의 손이라고 하네요

그 형태의 정확성을 넘어, 조각가의 손을 통해 벼리워진 청동의 시간은

잊혀지거나 기억되지 않은채 망각되는 인간의 노동을 다시 한번 조형해냅니다

 

 

구본주 선생님의 사모님과 함께 한컷 찍었습니다.

환하게 웃으시며 반겨주시는 모습이 어찌나 감사하던지요.

 

 

희망찬 사람은 그 자신이 희망이다
길 찾는 사람은 그 자신이 새 길이다
참 좋은 사람은 그 자신이 이미 좋은 세상이다
사람 속에 들어 있다사람에서 시작된다
다시 사람만이 희망이다

 

박노해의 <사람만이 희망이다> 전편

 

이 전시는 아쉽게도 토요일과 일요일 양일에 걸쳐서 진행됩니다.

너무나도 가보시라고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서둘러서

가보시는 건 어떨까요. 갤러리 눈은 창덕궁 맞은편에 있습니다. 안국동 4번출구에서 내리셔서 5분 거리에요.

조각을 통해 만들어진 우리들 샐러리맨들의 모습, 우리들의 비루하지만 희망을

버리지 않는 그 모습, 다시 한번 보시고 가을 하늘 아래 웃어보시길 바램합니다.

 

오늘은 송창식의 노래로 듣는 <푸르른 날> 입니다

서정주의 가사도 좋고, 가수 특유의 맑음과 소박함이 더욱 귀합니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엔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 해야 하는 법입니다. 그럼요....

기억되는 것은 사라지지 않는 것이니까요....가을날씨가 참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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