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 Travel/해를 등지고 놀다

사랑해 조앤!-빛의 아이들과 함께 보낸 시간들

패션 큐레이터 2007. 8. 19. 03:48

 

우리들의 여정도 막바지에 접어든다.

여행 초기 많은 것을 줄수 있으리라는 기대로 왔지만, 오히려 많은 것을 받았고

남새스런 내 자신의 내면을 발견하고선, 이런 기회를 얻은 것에 대해 감사할 수 밖에 없었다.

 

 

우리가 머물고 있는 Grace College에서 버스를 타고 남동향으로 50분 정도를 가니

 동양적인 배산임수의 지형이 아름다운 나이로비의 외곽지역이 나온다.

오늘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곳에 설립된 호스피스 시설을 위해 새로 가구를 들여놓고

환우들을 받기 위해 설비들을 청소하고 마무리 하는 일이다.

 

 

최근 한국에서도 정신과 의사인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가 쓴 <인생수업>이

오랜동안 서점가에서 베스트셀러를 차지했었다. 그녀는 죽음을 앞둔 환자들을 바라보면서

그들의 심리상태를 5단계로 연구하고 이를 이론화 시킨 사람이다. 물론 그녀는 지금 보시는 호스피스 사역의

선구이기도 하다. 지금와서 하는 이야기지만 이 책이 발간될 당시 원서를 들고 출판사에 찾아가서

번역을 하게 해달라고 많이 우겼었다. 물론 시인 류시화 선생님이 더 멋진 번역으로

우리들을 감동시켰으니 더 이상 아쉬움은 없지만......

 

 

각설하고 가구들을 들여놓고 침대를 조립했다.

여자분들은 바닥을 물청소하고 가구들을 정성스레 닦아서 윤을 내주었고.....

 

 

호스피스 제도의 유래를 보면, 큰 맥락은 여행자가 쉬어가던 휴식처라는 의미에서 유래한다. 아픈사람과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한 숙박소를 제공해 주고, 필요한 간호를 베풀어 주면서 시작되었다.
우리의 목적 또한 이런 연장선상에 있다. 특히 에이즈에 걸린채 마지막 생의 나날을 보내는

아이들을 위한 설비라서, 더욱 신경이 쓰였다. 나이로비 중심부가 아니여서 공기도 좋고

좋은 환경에서 더 나은 치료와 관심을 받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집기들을 들여놓고 청소를 마무리 한후, 배산임수의 아름다운 자연을 배경으로

집 뒤편에서 케냐산 수박을 먹었다. 형태와 빛깔이 달라서 사진에 담아본다. 당도가 아주 높았다.

달콤한 수액이 지친몸을 행복하게 풀어주었다.

 

 

다음날 그레이스 칼리지에 부설된 고아원을 방문했다.

이곳의 아이들 대부분이 에이즈에 걸려있다. 죽음을 앞두고 있고, 투병을 하고 있지만

사실상 아이들의 미소 어디에서도 그런 어두움을 찾아보기 어렵다.

 

 

개구진 느낌의 쥬니어.....전통 캐냐복장을 입고 우리를 맞아준

아이들의 환한 웃음 속에 캐냐의 따스한 초겨울 햇살이 아스라히 퍼진다.

 

 

내게는 3명의 딸이 있다. 내 블로그에 유명세를 가져다 준 <딸에게 들려주는 미술사 이야기>의 주인공

첫째딸 솔현이는 이제 대학생이 되었고, 둘째딸 수빈이는 현재 고등학교 1학년이다.

세째딸로 임명한 우리 조앤은 7살이다. 얼굴을 약간 가리긴 하지만, 새침떼기는 아니다.

후배와 함께 아이들과 설정샷을 만들었다. 일명 <청혼놀이> 설정이다. 조앤이 꽃을 받아주었다.....아 기쁘다

 

 

여자후배도 꽃을 주며 청혼을 했건만, 스티브는 두손을 들며

글쎄요....하는 다소 재미있는 설정샷을 찍었다. 재미있죠?

 

 

그날따라 가져간 쿠키가 아이들한테 인기가 많았다.....

내가 쿠키를 먹는 모습을 적들에게 알리지마라....고 말하는 것 같지 않은가? *^^* 

 

 

이번 여행에는 전문 의료진과 아동교육 전문가 분들이 많이 동참해주셨다.

그저 감사하다는 말 밖에는 안 나온다. 한 선생님이 조앤을 위해 멋진 토끼를 풍선으로 만들어주셨다.

어찌나 잘 만들었던지, 솔직히 현대미술의 거장 제프 쿤스의 '토끼'에 결코 뒤지지 않는 것 같다.

 

 

우리 조앤은 처음엔 마음을 열지 않는 것 같다가 시간이 조금씩 지나면서

특유의 환한 미소랄까....애교띤 모습들을 내게 그대로 발산했다. 밝은 빛깔의 의상만큼이나 우리 조앤의

서글서글한 눈동자가 나를 웃음짓게 한다. 가슴 속 깊이 환하게......

 

 

살아가면서 내가 남에게 준 것이 그래도 꽤 된다는 자고심에 젖어 있었다.

하지만 이번 여행은 참 많은 걸 변화시켰다. 죽음을 앞둔 아이들, 에이즈에 걸려 고통을 받는 아이들의 미소가

아니었다. 환한 미소의 근거는 무엇일까? 이 세상에서 참 버겹고 힘들었을텐데, 내 눈 앞에서

활짝 웃는 사람의 꽃들 곁에서 나는 멈칫 거릴 수 밖에 없었다.

 

이번 여행의 마지막 대미를 장식하는 설정샷이 기다리고 있다.

앤드류.....개구장이지만, 가장 많은 재능과 끼를 가진 아이다. 원장님의 말에 따르면

케냐에서 열린 장기자랑 대회에서 4개 분야중 2개를 석권한 엔터테이너란다.

가만히 있을 수 없지 않은가. 개그맨 붐의 흉내를 내보았다. '붐이에요~~' 어떤가? 멋지지 않은가?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향기롭게 스러지기 위해서,

떠나는 자들은 고요히 떠난다. 그 고요는 웅변보다 훨씬 더 많은 말을 남긴다.

생의 이편에 남아서, 떠나는 자들을 배웅하는 자들은 그들의 고요한 뒷모습에서

새벽안개 냄새를 맡는다. 그들도 언젠가는 그렇게 새벽길을 떠날 것이다. 믿거니와, 우리는 어두움을 향해

길을 떠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우리는, 살아서 너무나 어두웠던 우리는, 사는 것으로 어두움에서

진 빚을 다 갚는 것이다. 삶 아닌 다른 지옥이 또 있을 것이라고 나는 믿지 않는다.

우리는 빛을 향해 간다. 우리는 빛의 아이들이다.

 

김정란의 <귀환, 멈칫거림, 몇잎의 꽃이파리> 중에서

 

우리 딸 조앤.....다음에도 또 볼수 있겠지. 아니 볼수 없다 하더라도

이미 내 영혼의 거푸집엔 너의 모습이 가득차 버렸는걸.....조앤, 행복해야해

우리 곧 만나게 될거야......우리는 빛의 아이들이니까.

조앤....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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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으시는 곡은 IL DIVO가 부르는 When a Child is Born 입니다.
너무나도 많은 것 얻어 왔습니다. 부끄럽습니다.....죄송합니다.....꽃으로도 아이들을 때리지 말라는
말의 의미, 이제서야 조금씩 알것 같습니다. 하지만 희망합니다. 우리 딸 조앤을 만나는 그날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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