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 Travel/해를 등지고 놀다

케냐 나쿠루 공원에서-플라밍고와 함께 춤을 추다

패션 큐레이터 2007. 8. 13. 22:36

 

요 며칠 본의 아니게, 논쟁에 휘말릴 만한 글을 썼다.

그리고 깨닫는다. 나는 좋은 '논객감'이 못된다는 거다.

지난 10년의 블로그 세월동안 내가 써온 것들은 지극히 개인의 사유와 삶의 모습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것. 사실 이것이 이 문화의 제국을 포지셔닝 해왔던 요소고 힘이었다.

 

다시 아프리카 여행의 기록으로 다시 들어간다. 사실 연속해서 올리려 했던

글들이 본의 아닌 논쟁으로 인해 뒤로 밀린 느낌이다. 이번 10일동안의 케냐 여행 중 가장 인상에 남는 곳

중의 하나가 바로 오늘 소개할 '나쿠루 국립공원'이다.

 

 

나쿠루로 가는 길에 잠시 들러 휴식을 취하는 리스트 밸리

목조가옥 몇채가 소담하게 고원지대의 땅끝무늬위에 박혀 있다. 대부분 기념품 가게들인데

여기서 사면 바가지가 심하다고 해서 물건을 사지 않았는데, 공항이 더 비쌌다.

 

 

나쿠루 국립공원에 접어들었다. 입구에서 내려 상당한 시간을 기다렸다.

내국인과 외국인에 대한 입장료가 천차만별이란다. 10배를 내야 한다고 들었다.

기다리는 동안 주변의 숲들을 거닐었다. 초록빛을 머금은 물빛 이끼들이 숲의 섭생과 맞물려 들어가며

고적한 느낌을 토해낸다. 오는 도중 비가 계속 왔었는데, 겨우 그친후라 잔뜩 끼어있는 구름 아래

숲의 형태가 눈에 익숙하게 들어온다.

 

 

 원숭이들은 잘 훈련된 모사꾼들이다.

이들은 사람들을 호객하고, 그들의 베낭을 털기도 하고(우리가 탄 차에도 간식이 있었는데)

살짝 열린 틈을 타고 훔쳐가다가 레인저에게 딱 걸려버렸다.

 

 

나쿠루는 케냐의 리프트 밸리(Rift Valley)에 자리잡은 주도시다. 30만명 정도의 거주민들이 있다.

이 나쿠루는 지금 보시고 있는 나쿠루 호수의 발원지며 생태 사파리로 유명한 곳이다.

특히 수만마리의 플라밍고, 홍학이 무리를 집어 물 위에 집주하는 풍경을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나쿠루는 천혜의 자연으로 이름이 높다. 이번 여행에서 아쉬운 것은

개인의 행장이 가능하지 않아서, 비행기를 타고 주변을 돌아보는 에어 크루즈를 하지 못한 점이다

사실 나쿠루는 인접한 호수의 풍광과 더불어 세계에서 두번째로 큰 휴화산인 메넹가이 분화구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나쿠루 레이크에 접어든다. 레이크 루이즈의 인공미와는 다른 아름다움이 나를 사로잡는다.

 

 

내 눈앞에 펼쳐진 플라밍고를 보고 사실 어떤 서술어도 찾기가 쉽질 않았다.

고요하고 한없이 나른한, 오후의 햇살이 점점 갈빛으로 타들어가는

내 손등위로 쏟아질때, 핑크빛 속살을 마치 겉으로 다 드러내는듯한 플라밍고 무리들이

내 눈앞에 펼쳐진다. 족히 몇킬로미터에 이르는듯, 군학의 수평선이 망막의 소실점을 헤메게 만드는 곳.

 

 

플라밍고와 함께 무리를 지은 펠리칸들이 보인다.

겨울 케냐의 풍광 속에, 새들이 비상하는 모습에서, 나는 발견한다.

이번 여행을 통해 내가 얻고자 했던 두번째 삶의 방향성과 그 방점의 무늬들이, 또한 어떠한 빛깔을 띄어야 하는지를.

마치 낮선 시간 속으로 던져 진듯한 시공간에 서있는듯 했다. 그러나 난 그 순간

살고 싶다는 생의 욕구와 그 극치를 맛보는 것 같았다.

 

 

  그 새는 자기 몸을 쳐서 건너간다. 자기를 매질하여 일생일대의 물 위를 날아가는 그 새는 이 바다와 닿은,

보이지 않는, 그러나 있는, 다만 머언, 또 다른 연안(沿岸)으로 가고 있다.

황지우의 <오늘날 잠언의 바다 위를 나는> 중에서

 

 

내가 만난 모든 세상은 아름다왔다. 풍경과 풍경 사이에선 고운 음률이 쏟아져나오고

인간과 인간 사이에선 꽃이 피었다. 그 경계를 넘기 위해 나를 체휼하고 생의 마디마디 퇴적층이 되어버린

상처의 무늬들을 바라보는 일, 결국 세상의 경계선에서 만난 모든 풍경은 내 안의 풍경이었다.

그 풍경은 나를 통해 해석되고, 세상과 발화한다는 것을 그렇게 또 배운다.

 

 

 

플라밍고 새떼에게로 나 자신을 망명시키는 이 시간.

또한 깨닫게 된다. 사실 이 새들을 보고, 속으로 끊임없이 나를 저 자유롭게 보이는 새들에게

투영하고 싶어하는 내가 있다는 걸 말이다. 하늘과 맞닿은 호수의 물빛을 핑크빛 수평선을 그려내는

플라밍고가 방점을 찍는다. 연초록과 회색,분홍색이 마치 맞물려 있는 듯한 느낌.  그 거품 아래로 깊이 하강하는

�광 앞에서 진저리 치고 몸을 떤다.

 

 

거친 겨울 바다의 풍속을 헤치고 온 몸으로 나는 새들의 운명은

마치 자신의 삶을 버린 출가승의 뒤태를 닮았다.

 

자기 몸을 쳐서 날아가는 새, 자기를 매질하는 새, 그렇게 잠언의 바다를 난다고 말한

시인 황지우의 묵상이 떠올랐다. 그의 말처럼 나를 쳐서 하늘을 날 용기가

없는 것일까 아니면 생의 마디마디 대못처럼 박혀 있는 상처를 더욱 매질할 마음이 없는 걸까.

 

 

 

자기를 쳐서 날아야만 하는 플라맹고의 운명은 숙연하지만

날개짓 순간의 그들은 남새스럽다. 핑크빛 드레스를 입은 여인들 처럼 수줍게 수면위에서

그렇게 자신에게 주어진 숙명을 안고 간다.

 

플라밍고떼는 스페인 무도장에서 만난 여인들을 떠올리게 한다.

가슴이 깊게 패인 실루엣 아래, 끓어오르는 뜨거운 열정이 마음의 벽을 깨뜨리는 그

플라밍고 춤을 닮았다......아름다운 자연 아래

내가 놓여있다는 것. 모든 것이 주어진 것이지, 내가 만든 것이 아니라는 것.

그 아래서 행복한 생의 춤을 추면 될 일이다......

쉘위 댄스?

 

 

28630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 삽입된 모짜르트 클라리넷 협주곡 2악장

아다지오 부분을 들으시겠습니다. 어제 포스트를 올렸는데 이 영화를 생각하시는 분이

너무 많은 것 같아서 선곡을 바꾸어 봅니다. 마사이족에 관한 글을 올린 것이 베스트에 올라서

다음캐쉬가 풍족하게 생겼습니다. 좋은 곡들 많이 선곡해서 올려보도록 할께요

이와 더불어 시드니 폴락 감독의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를 띄웁니다.

그러고 보니 이 영화의 주 촬영지가 케냐였네요. 이 나쿠루 호수의 플라밍고도 영화에 나오구요.

참 새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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