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Healing/빛으로 그린 그림

마릴린 몬로는 독서광(?)

패션 큐레이터 2007. 3. 9. 19:19

 

 

따스한 겨울의 시간을 뒤로 하고, 이제 꽃샘추위의 질시를 온 몸으로 느꼈던 몇일 동안

응고된 시간들의 흔적을 찾아 서재에 꽂혀 있는 도록들과 사진집들을 꺼내봅니다.

오늘 소개할 사진 작가는 이브 아널드(Eve Arnold)라는 여성 사진작가입니다.

 

러시아계열의 유태인인 부모 아래, 필라델피아에서 태어난 작가는

세계 최초로 당시 최고의 명성을 날리고 있던 사진 에이전시인 매그넘의 전속작가가 됩니다.

 

 

이브 아널드

'율리시즈를 읽는 마릴린 몬로' 1954, 롱 아일랜드, 뉴욕

 

그녀의 사진을 무엇보다도 빛나게 하는 것은

바로 그녀가 평생을 바쳐, 찍어온 친구이자 모델인 배우 마릴린 몬로였지요.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마릴린 몬로는 화면 속의 이미지,

화려하고 섹시한 당대의 큐트걸과는 달리 매우 말수가 적고 낮가림이 심했다고 해요

 

사람들은 흔히 마릴린 몬로를 가리켜 육체파 배우, 섹스심벌

더 나아가 백치미의 상징으로 이야기 합니다.

 

 

지금 이브 아널드의 프레임 속에 잡힌 여배우 마릴린 몬로는

독서에 푹 빠져 있습니다. 작가는 실제로 배우와 아주 친밀한 사이를 유지했지요

그래서인지, 당대의 어떤 유명한 사진작가도 포착하지 못한 섬세한 친밀함이 그녀의 사진

속에서 조근조근 문장을 읽어가는....그것도 난해하기로 소문한 모더니즘 문학의 정수

'율리시즈'를 읽고 있는 마릴린 몬로를 찍어 내고 있는 것이죠.

 

 

<마릴린 몬로 : 여신 혹은 후기문화적 사이보그>란 책에서

영문학자 리차드 브라운은 "마릴린 몬로가 율리시즈를 읽는 것은 설정이 아닌 실제"

상황이라고 밝혔습니다. 물론 사진 속에선 율리시즈의 가장 마지막 장을 읽고있는 모습으로

찍혀 있지요. 이 사진을 찍은 이브 아널드 조차도 항상 마릴린이 이 책을 들고

다니며 읽었다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아마 페넬로페의 이야기를 읽고 있겠죠.

 

 

우리는 바로 마릴린 몬로의 이러한 모습에서

바로 이면에 가려진 배우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그녀의 초점없는 눈동자와 굴곡진 가슴선, 유려하게 떨어지는 둔부

항상 그녀를 이야기할땐 정치적인 무뇌아인양, 그냥 백치미로

평생을 살아간 것 같은 인간으로 말하기를 즐겨왔지요.

 

배우로서 사실 그녀는 단순하게 섹시미만을 이용하여

당대 최고의 배우가 된 사람은 아니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결코 연기를 못하는 배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녀는 젊은시절 말론 브란도와 함께

헐리우드 최고의 배우 교습소였던 엑터스 스튜디오를 다녔어요.

 

제가 연기를 좋아하고 공부했던 탓에

여기에서 나온 연기교재를 가지고 있는데요. 바로 이 액터스 스튜디오에서 연기를

가르쳤던 리 스트라스 버그란 전설적인 배우이자 인물이 쓴 책이에요.

 

 

 

이곳 엑터즈 스튜디오 출신 배우들 중엔 모든 유형의 연기를 잘하는

최고의 배우들이 포진되어 있었답니다. 바로 말론 브란도를 비롯하여 알 파치노, 폴 뉴먼

더스틴 호프만, 로버트 드 니로, 그리고 마릴린 몬로가 있었어요

 

리 스트라스 버그의 책을 보면 그는 연기를 일종의 <항해>에 비유합니다.

어찌보면 율리시즈의 이야기도 세 사람이 자신의 관점에서 풀어놓는

삶을 바라보는 시점일수도 있고, 항해일수도 있지 않았나 싶네요.

 

그래서였을까, 마릴린은 '율리시즈'를 꽤 오랜동안 끼고 다니며

읽고 또 읽고 그랬나 봅니다.

 

 

아....그리고 한가지 더, 사람들이 마릴린 몬로를 이야기할때

금발의 백치미라고 하는것은, 사실 틀린 말입니다. 그녀는 원래 블론디가 아니라

갈색머리였어요. 염색을 하고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낸 것일 뿐이라는 것이죠.

 

이브 아널드의 사진 속 마릴린의 모습은

참 우리가 생각해왔던 그녀의 모습과는 참 판이하게 다른거 같아요

특히 롱아일랜드 공원에서 햇살아래, 책의 마지막 장을, 그 결미의 장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숙독하는 그녀의 모습 속에서......

 

다가오는 봄의 시간엔 왠지 오랜동안 서재 속 묻어두었던

몇권의 책, 먼지 털어낸 후 고풍스럽게 읽어보고 싶게끔 하는 욕망이 생기네요.

 

어느 조그만 산골로 들어가
나는 이름없는 여인이 되고 싶소

초가 지붕에 박넝쿨 올리고
삼밭에 오이랑 호박을 놓고

들장미로 울타리를 엮어
마당엔 하늘을 욕심껏 들여놓고

 밤이면 실컷 별을 안고
부엉이가 우는밤도
내사 외롭지 않겠오


기차가 지나가 버리는 마을
놋양푼의 수수엿을 녹여먹으며


내좋은 사람과 밤이 늦도록
여우 나는 산골 얘기를 하면


삽삽개는 달을 짖고
나는 여왕보다 더 행복하리오

 

노천명의 '이름없는 여인이 되어' 전편

 

오늘은 이루마의 연주로 듣는 I'm Just a...를 올립니다.

아마 그녀도 이렇게 말하고 싶었을 겁니다. 나도 그냥 배우이고 싶었을 뿐이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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