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Healing/빛으로 그린 그림

가끔은 주목받는 생이고 싶다

패션 큐레이터 2007. 2. 25. 13:18

선언 또는 광고 문안
단조로운 것은 生의 노래를 잠들게 한다.
머무르는 것은 生의 언어를 침묵하게 한다.
人生이란 그저 살아가는 짧은 무엇이 아닌 것.
문득──스쳐 지나가는 눈길에도 기쁨이 넘쳐나니
가끔은 주목받는 生이고 싶다──CHEVALIER

―「가끔은 주목받는 生이고 싶다」

 

 

12시 23분 그녀의 사진을 바라보다

 

 

주말의 정오, 아침에 일어나 때 이른 겨울 속 미만하게 피어나는

봄의 정취가 살갖에 와닿습니다. 산책길을 따라 걸다보면 어느새인가

주변부의 무늬들을 따라 시야가 움직이고, 누군가를 힐끗힐끗 바라보게 되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되죠. 타인의 삶을 엿본다거나 혹은 바라보는 일은

어찌 보면 내 자신의 존재를 확장하기 위한 노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타인을 바라보는 일. 어린 시절 아버지는 타인을 대할때

철저한 긍정의 시선으로 바라보라 말하셨지만, 언제부터인가 사람을 평가하고

바라볼때, 외양과 조건, 경제적 부가급부가 그의 프로필을 둘러싼 환영을 만드는 요소가 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되고, 그런 나 자신을 끊임없이 속물이라 외치면서도, 이건 세월이 주는 현명함이라고

애써 지긋이 눈을 감으며 자위하는 나를 바라보게 됩니다.

 

 

오늘은 아주 오랜만에 사진작가 한명을 소개할까 합니다.

대학시절 다큐멘타리 영화들을 좋아했던 제게는, 특히 다큐멘타리 사진들,

혹은 포토 저널리즘이라 불리는 장르의 사진들은 큰 매력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래서인지 사실 사진읽어주는 남자를

통해 많은 다큐사진작가들을 다루어 왔지요.

 

다큐멘터리 사진이 주는 매력은 무엇보다도 '타인의 삶을 바라보게 하는'

능력에 있지 않나 싶습니다. 나와는 다른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타인의 모습.

오늘 소개할 메리 엘렌 마크(Mary Ellen Mark)는 미국이 자랑하는 사진작가입니다.

 

 

그녀의 사진은 타인의 삶 속에 베어잇는 존재의 은유랄까

특징적인 순간들을 찾아내 포착하는 뛰어남을 보여줍니다. 픽션 속의 진실이랄까요

제가 이 분의 사진을 좋아하는 이유는 사회 변두리에서 사는 사람들의

극적인 이미지들을 많이 찍기 때문인데요. 주변부에 대한 애정이 많은 분답게

사회라는 거대한 무대의 이면에 자리하는 인간의 얼굴을 많이 담았습니다.

 

 

서커스 단원이나 어른이 되고자 하는 소녀의 모습들을 많이 담았습니다.

두번째 사진 속, 장난감 자동차 위에서 치마를 들어올리는 소녀의 모습과

화면 앞 남자와 함께 누워있는 여자의 모습이 병치되고 있는 사진 속에서 빨리  어른이 되고자

하는 소녀의 열망이 사실은 여인의 얼굴속 다소 우울한 모습으로 변질할 수 있음을

은연중에 말해주는 것이죠.

 

 

그는 또한 많은 사회명사들의 인물 사진을 찍었습니다.

위에 보시는 사진은 바로 세계적인 명감독 페데리코 펠리니의 모습입니다.

마치 춤을 추기 위한 예비동작에 들어가는 감독의 모습이

그려져 있지요. 영화상의 대비가 강한 조명으로 인해 우리는 감독의 배후를

통해 그의 개성을, 혹은 그의 이면을 살펴보게 됩니다.

 

 

1990년 작가는 라이프 매거진으로 부터

루이지애나에 있는 나병센타의 모습을 찍도록 요청을 받습니다.

위의 사진은 당시의 한 장면을 포착한 것이에요. 육중한 몸매의 간호사와

나병으로 인해 시각을 잃은 환자의 모습이 왠지 희화화된 형태로 다가옵니다.

 

 

살아가면서, 사람과의 관계는 두가지의 일정한 무늬를 생성합니다.

첫번째는 내 자신에게 집중하는 일이고 두번째는 나를 둘러싼 풍경과 타인들의 생에

관여하고 일종의 입장을 표명하는 식이 되지요.

 

저로서는 두번째의 삶을 이미 결정했고 그렇게 살아오고 있지만

타인의 삶에 대해 일종의 입장을 발표한다는 것은 그들을 어떻게 규정하고 바라보는가의 문제를

포함하기 때문에 쉬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장애우의 문제도 그렇고

경제적으로 박탈당한 사회적 집단이나 성적 소수자의 문제도 그렇고요.

 

 

그녀는 항상 사회적인 주변부에 대한 시선을 따스하게 응시하는

사진을 만들어 왔습니다. 남미의 서커스단을 찍었던 연작 사진에도

신체적인 불구와 일반인의 관점과는 다른 외양이 넘쳐나는

이미지들이 가득하지만, 그 속에는 여전히 인간의 마을에 한 구석을 차지하며

우리와 공존하는 사람의 모습을 담아내지요

 

 

타인들이 무어라 해도, 여전히 바로 지금 이곳에서도

우리의 삶을 유효하게 하는 것은 타자를 따스하게 응시하고

그 속에 존경과 긍정의 빛깔을 담아내는 일이라고 믿어봅니다.

 

 

다양한 인간의 얼굴에서, 마치 모자이크 같은 한조각의 얼굴들이 모여

내가 살아가는 이 아름다운 세상의 부분으로 용해되어 가는 것임을 또 다시 배워봅니다.

 

삶을 하나의 무늬로 바라보라.
행복과 고통은 다른 세세한 사건들과 섞여들어 정교한 무늬를 이루고
시련도 그 무늬를 더해주는 재료가 된다.
그리하여 최후가 다가왔을 때
우리는 그 무늬의 완성을 기뻐하게 되는 것이다

 

영화 <아메리칸 퀼트> 중에서


 

제가 제일 좋아하는 사진이에요

제목은 '연기하는 강아지들'이랍니다.

이 사진만 보면 유쾌해 집니다. 훈련을 빙자한 학대가 아니냐구요? 글쎄요^^;;

 

이 세상 어느 누구든 때로는 주목받고 싶은 생을 꿈꾸니까요

사회적 약자이건 강자이건, 배제되는 자이건 혹은 욕심을 내는 자이건

그들 속 숨겨진 상처를 껴안고 함께 걸어갈수 있는 용기가 우리에겐 필요하겠지요

 

주말의 오후가 깊어갑니다.

올 한해는 더욱 낮아졌으면 좋겠습니다. 긍정항을 찾아가는

여행자의 모습으로. 세상의 이미지 속에 담겨진 폭력과 마주하며

그 속에 함께 놓여진 긍정의 열쇠를 열어가는 그런 글들을 쓰고 싶어지네요.

 

행복한 주말 되세요.

헤이의 주템므를 올립니다. 홍기는 여러분이 어떤 얼굴을 가지고 있든간에

사랑할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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