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샤넬-미술관에 가다

패션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이 그린 "짱구는 못말려"

패션 큐레이터 2007. 3. 6. 00:46

 

 

오늘은 아주 흥미롭고 발칙한 한편의 만화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예전에도 만화나 애니메이션에 대한 리뷰를 썼었는데요. 대부분 '문화의 제국'

코너에 기고를 했었지요. 하지만 오늘은 <패션, 미술의 옷을 벗기다>란 폴더에

작성을 하고 있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거기엔 우리가 생각치 못했던 이유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바로 오늘 소개할 만화를 그린 사람이

바로 세계적인 패션의 거장 이브 생 로랑(Yves Saint Laurent)이기 때문이지요.

 

만화의 제목은 '발칙한 루루' 입니다.

말 그대로 만화 속 루루의 모습은 발칙하다 못해 엽기적이고 재기발랄함 그 자체를 보여줍니다

그녀의 행각은 마치 우리가 예전 즐겨보았던 "짱구는 못말려"의 프랑스 여성판을

보여주는 듯한 느낌까지 주지요.

 

 

 

 

패션의 천재 이브 생 로랑이 크리스챤 디올 사에 입사했던 것이 그의 나이

약관 20세였습니다. 그는 사실 복식사에서 보면 굉장히 파격적인 성향을 가진 디자이너 였죠

여성정장에 바지를 도입했던 당시로서는 '너무 앞서가서 문제인' 디자이너였습니다.

 

그런 그가 책을 냈는데, 이게 흔히 말하는 거창한 비망록이나

자서전 뭐 이런 것이 아니라 검정색 빨강색, 두개의 색상이 가득하게 메워진

'만화책'이라니.......만화 '발칙한 루루'는 이브 생 로랑이 이야기를 짓고

그림도 직접 그렸고 자신의 캐릭터를 완성했던 그의 유일한 책이었지요.

 

 

짱구는 못말려.....의 주인공과 비교해서 어떤 느낌이 다른가요?

만화를 보면 하는짓은 거의 동률에 가깝습니다. 결코 뒤지지 않지요. 아니 오히려

더 잔혹하고 까칠하고 길들여지지 않은 여인의 모습을 볼수 있어요.

 

빨강 망사 속치마와 검정색 긴 양말, 곤돌라를 운전하는 사공의 모자

이것이 프랑스판 <짱구는 못말려>의 주인공이 주로 입는 옷입니다.....

 

짱구의 푸른색 의상과 루루의 붉은색 의상이 묘한 조화를 이루네요

 

만화 속 루루는 어린 소녀가 해서는 안되는 사회적인 금기들을

마음껏 깨뜨리고 온갖 놀라운 행동을 서슴지 않고 저지릅니다. 그것도 일말의 죄의식 같은건

찾아볼래야 볼수도 없지요.

 

심심하시다구요?

그럼 친구들을 불태워 버리세요

짜증이 난다고요?

옆 사람의 뺨을 찰싹 때려요

나요?

난 발칙한 루루랍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부르죠

난 내가 너무너무 좋아요!

 

-발칙한 루루- 중에서

 

이 만화를 구상했던 것이 이브 생 로랑의 20세 때였음을 감안한다면

만화 속 루루의 어린 시절, 길들여 지지 않은 무모함과 엉뚱함은 그의 천재성에서 기인한

또 하나의 작가의 분신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아니나 다를까

이를 걱정했는지 이브 생 로랑은 아예 책 첫페이지에 이 책으로 자신의 정신세계를

파악하려는 일체의 시도를 그만두라고 했더군요.....나 원참)

 

사실 이 만화를 읽으면서 시종 일관 제 자신을 사로잡은 것은

루루의 거침없는 일탈행동이나 기묘한 짓거리만은 아니었습니다.

만화 속 루루에겐, 디자이너로서 당대와 화해하지 못했던, 너무 앞서 나가서 항상 매질을

당해야 했던 디자이너의 울분 이랄까 혹은 시대에 대한 비판정신 같은 것들이

상당히 교묘하게 녹아 있음을 발견하게 되는 거였어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예술에 대한 관심이

녹아 있는 이 루루란 캐릭터에 아주 빠져버렸습니다.

만화 속 루루는 빨강머리 앤이 되기도 하고, 베트맨이 되거나, 플레이보이 잡지의 토끼

의상을 입은 야한(?) 소녀가 되기도 하죠. 이 뿐만이 아니죠.

롤리타가 되어 나이든 남자를 유혹하기도 하고, 뽀족코 구두를 신고 사람들을

괴롭히기도 하고 커다란 흰쥐를 들고 다니며 선생님을 괴롭히죠.

 

루루의 캐릭터 작업이 매력있는 이유는

예술에 대한 조예가 깊었던 디자이너 답게 그의 성격화 작업에는

항상 미술가들의 작품을 패러디 하거나 빌려온 이미지들이 많이 있더라구요.

위에 보시는 생팔의 루루는 프랑스의 현대 작가 니키 드 생팔의

<나나>를 빌려 그린 것 같습니다. 니키 드 생팔의 삶도 어찌 보면 만화 속 루루처럼

파란만장했지요. 생명력과 구속되지 않는 삶을 꿈꾸었던 작가의 상상 속 나나는

이브 생 로랑을 통해 어린 시절, 우리가 간직하고 있는 자유로운 루루로 다시 태어납니다.

 

 

니키 드 생팔

'행복한 나나' 1921, 니스 근현대 미술관 소장

 

 이 캐릭터가 만들어 진 이후 50년이 지나서야 다시 만화가 출시되었지만

시대의 풍경과는 상관없이, 거침없이 자신을 쏘아 부치는

이 루루의 모습은 소시민인 제게 약간의 대리만족이랄까

잃어버린 유년시절의 기억과 몽환을 살려주는 그런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루루 처럼 발레도 하고 싶고

 

 

 커다란 흰쥐도 키우고 싶을때가 있습니다.......

그의 만화를 보면서 이런 생각에 빠져 봅니다. 마치 <천국이 어린아이들의 것>이라고

선포한 그 예전의 예수라는 사내처럼, 항상 내 안에서 꺽이지 않는

생의 불꽃을 들고 들판을 달리는 야생마를 꺼내는 일

 

그것이 시대를 이기는 천재들의 방법이라고요.....

 

 리사 오노가 부르는 Pretty World를 골랐습니다

루루의 마음 속 발칙한 도전정신으로 멋진 하루를 시작하세요

 

 

 

22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