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여름, 프랑스에 다녀오자 마자 올렸던 글이
영화 <마리 앙트와네트>였습니다. 물론 마리 앙트와네트의 패션을 주로 분석했던
글이었지요. 로코코 시대의 가장 여성적인 감성미가 드레스의 옷깃 하나하나에
뚝뚝 뭍어나는 그 패션에 반해, 어렵게 구해 본 DVD를 수차례 연구를 보곤 했지요.
자 이제 서양복식사를 넘어 조선여인의 향기를 찾을 때입니다.
송도삼절, 늦은 세상, 너무나도 이르게 왔던 우리들의 예인, 황진이.
그러나 그녀는 세상에 주인으로 우뚝 섰고 21세기에 들어서도, 그녀는 영원한
우리들의 아이콘으로 부활합니다. 북한에서 먼저 상영도 한다는데
한편의 영화 속 우아함에 취해, 남과 북의 얼음장 같은 입장들도 녹아버렸으면 하는 마음 가득합니다.
단소화 된 저고리는 그 길이가 치마 허리를 가릴 수 없을 정도로 짧고
소매통은 매우 좁아서 어깨와 팔에 꼭 끼는 직배래의 통소매의 형태를 띱니다.
반면 치마는 그 길이가 땅에 끌릴 정도로 길었으며 7~8겹으로 겹쳐 입은 속옷으로 인해
둔부를 부풀리는 풍부한 양감의 미를 보여주고 있지요. 조선여인의
감추어진 에로티시즘은 이렇게 한복 끝단의 처리로도 충분히 드러납니다.
프란스시코 호세 드 고야
<안토니아 자라테의 초상>, 캔버스에 유채, 아일랜드 국립 미술관
위의 스틸 사진에서 보이는 패션에는 하늘색과 보라, 베이지가
배색처리 되어 있는 모던한 느낌이 가득하죠.
마치 21세기를 살아가는 황진이를 보는 것만 같습니다
그녀가 쓰고 있는 머리 쓰개는 블랙의 반투명 천으로 처리 되어 더욱
에로틱하게 보이지요. 이걸 흔히 너울이라 하는데요
고려시대의 몽수(蒙首)에서 연유한 것으로. 조선시대 여성의 관모 중 국초부터 국말까지
궁중양식 또는 양반가양식으로 주로 상류계급에서 존속해 왔습니다.
외출용으로 주로 많이 쓰였지요. 저는 이것이 마치 유럽에서 사용된 검정색 베일
<만틸라>와 비슷하면서도 더욱 고혹적으로 느껴집니다. 고야의 그림 속 여인이
황금빛 소파 위에서 블랙의 매력을 토해내듯, 우리 내 조선여인들은
이 나라 산하의 천연색이 베어있는 옷과 쓰개로 자신만의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있지요
저고리의 길이가 짧아지면서 저고리와 치마 사이의
겨드랑이 밑을 가릴 수 없게 되면서 그 가리개 역할을 하기 위해 생겨난 것이 허리띠입니다
이것은 일본의 기모노에서 허리춤에 하는 오비와는 전혀 다른 속성을 띠죠.
이 가리개용 허리띠의 사용의 특징은 보통 허리띠는 치마의 위에 매게 되어 있으나
이것은 옷을 입기 전 맨살에 겨드랑이 밑으로 바짝 치켜서
가슴을 납작하게 졸라매어 살을 보이지 않게 하였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짧고 착수인 저고리 아래의 가슴을 칭칭 동여매어 압박시킴으로써
세류흉당이라는 표현이 가능하였고 상하의 부피감에 대한 대비 효과는 키우게 되죠
키가 작은 조선여인이라고, 복숭아처럼 부풀어오르는 여체의 미를 은은하게
드러내는 법을 몰랐으리라 생각하지 마세요.
저는 조선 후기 기녀들의 복식을 보면서, 저번 마리 앙트와네트의
복식에서 본 전반적인 실루엣의 동일성을 많이 발견합니다.
가령 조선후기 기녀복식의 가장 큰 특징을 <상박하후>라 해서 상의는 타이트하게 입되
치마단은 풍성하게 하여 그 우아함을 더하는 모습은 로코코 시대의 크리놀린 드레스와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어느 시대나 패션에도 오피니언 리더는 존재해왔습니다.
서양에서는 절대주의 시대엔 거의 궁정을 중심으로 한 왕족들이 그 예였고
빅토리아 시대로 오면서, 코코트라 불리는 고급창녀들이 패션을 주도하는
형태가 되지요. 물론 당시, 신흥 부르주아 가문의 여성들은 그런 매춘부들의 복식을
따라 하느라 갖은 신경을 다 쓰고 다녔습니다.
이런 서양의 현실은 사실 조선 후기 우리내 모습과 그리 다르지 않지요
원래 조선 전기의 패션리더들은 왕실을 비롯한 양반의 부녀자들이었습니다.
조선 후기로 접어들면서 그 중심 세력이 기녀들로 옮아가게 되지요.
당시 천민계급에 속하는 기녀의 복식을 모방하는 경향은 사회적으로도 큰 논란거리였는데
이덕무는 저서<청장관전서>에서 기녀의 아양떠는 자태를 세속의 남자들이
자신의 처첩에게 본받게 함으로써 생겨난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빅토리아 시대, 많은 모럴리스트들이 종모양의 풍성한 드레스를 가리켜
겉으로는 여성의 우아함과 단정함을 강조하면서, 뒤로는 부풀어 오른 여인의 둔부를 강조하는
이중적 시선이 담긴 옷이라고 빈정대는데요. 이런 이중적인 남자들의 모습은
황진이가 활동했던 시대의 패션에도 그대로 녹아 있나 봅니다.
디자이너 정구호의 손길로 태어난 현대판 황진이의 패션을 살펴봅니다.
하지원의 연기로 보여준 TV판 <황진이>와의 차이는 무엇보다도 한복의 색상에서
그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납니다. 하지원이 분한 황진이에서
매우 화려하고 유혹적인 빛깔들, 가령 레드와 실버가 주로 사용되었다면
이번에는 현대적인 감성을 복원시킨 느낌이 드는 한복이 주를 이룹니다.
무엇보다도 검정색과 초록색과 같은 안온한 톤의 색상을 사용하여, 의연하면서도
검정의 힘 속에 감추인 여인의 억눌린 매력을 토해내는 황진이의 힘을
그녀의 패션을 통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번 황진이가 입은 의상중에서 가장 에로틱한 느낌이 강한
한복이지요. 서양적이 개념을 빌어, 시스루(See Through) 스타일의 상의라 하는데
저는 조금 생각은 다릅니다. 실제로 조선 후기로 가면서
세미한 반투명의 실크와 면을 소재로한 복식이 기녀방을 중심으로
일종의 패션처럼 굳어져 가게 되죠.
특히나 화면에서처럼, 레이스형태로 자수 처리된 반투명의 상의는
백색의 단정하게 입은 이중 배색의 안감으로 인해 더욱 블랙의 유혹적인 매력은
커가기만 합니다.....거기에 눈꼬리를 자연스레 처리한 스모키 화장법은
이 영화를 위시로 곧 유행을 탈 준비를 하고 있다네요
한복을 재단하다 보면 배우게 되는 첫번째 사실
한복은 서양의 복식과 달리 평면 재단으로 구성됩니다.
그만큼 평면의 미를 강조하지만, 결코 입체적인 미에 눌린다거나 하는 것은 아닙니다.
평면의 소재를, 특히 화면에서 처럼 군청색과 밝은 하늘색 여기에
연보라 색 색동댕기로 가체를 장식한 색감에선 허를 내두르고 말지요.
평면이지만, 마치 레이어드룩을 입듯, 여러색상을 온 몸에 걸쳐 입음으로써
숨김 속에 감추어진, 열망을 토해내기엔 아주 안성맞춤인 복식의 형태
그것이 우리 조선 여인들의 숨겨진 에로스고 매력입니다.
솔직히 노출하고 벗는다고 다 아름다운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영화 속 패션은 정말이지 눈부시게 아름답습니다.
아직 영화를 보지 않았기에 영화의 내용과 전개방식, 혹은 그 미학적인 성취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못합니다. 개봉한다면 일단을 지긋이 앉아 볼 생각이죠.
시대와 맞서 싸울수 있었던 여인들, 사실 빅토리아 시대의
고급창녀라 불리는 사람들은 실제로 많은 화가들, 특히 인상주의 미술의 주인공으로
자주 등장하곤 합니다. 어느 시대나, 예인의 매력을 가진 이들은
예술가들의 뮤즈로서 다시 태어나는 운명을 가졌나 봅니다.
http://blog.daum.net/film-art/8786237
우선 마리 앙트와네트의 패션과 함께 비교해보시는 것도 재미있을거 같아서
예전에 써놓은 글 주소 남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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