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부터 실을 만지면 참 행복함을 느끼곤 했습니다.
두텁고 따스해 보이는 털실들이 뭉개뭉게 감겨진 타래들,
만질때 마다 느껴지는 따스한 탄성력. 특히 부피감이 느껴지는 원단들,
벨벳의 보드라움, 까슬까슬한 모슬린, 실크의 조밀한 내음새,
마치 현무암의 다공질처럼, 한여름철 시원하게 우리를 지켜주는 모시의 이음새,
그 여백의 향을 좋아합니다.
촘촘하게 직조된 천은 추운 겨울,
내 영혼의 거푸집을 따스하게 안아줄 것 같아 좋고,
성글게 짜인 직물은 투명하고 환한 내 마음속 풍경을
비추어 주는 것 같아 좋습니다.
이렇게 섬유는 본유적인 따스함으로 우리들의
내면을 감싸안을수 있는 힘을 가진 것 같습니다.
작가 최소영의 작품은 실타래와 둥근털실의 기억을 가진 제게, 참 소중하게 다가옵니다.
그녀는 신인작가입니다. 아직 젊고 혈기도 왕성할 터이지만,
어찌된것이 그녀의 작품 속엔 다기하게 모여있는
집들의 풍경이 너무나도 살갑고 따뜻합니다.
아담한 산의 능선을 따라 집과 계단과 다른 도시의 내면을 드러낼때면,
도시 공간에서 자라와 지금까지 작업한 화가의 시선은 또 다시,
도시 속 자신의 내면을 향합니다. 도시 공간과 작가의 내면엔
이런 모종의 푸른빛 교감들이 살아 숨쉬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무엇보다도 이 집을 표현하는 재료가 청바지 데님이라는 점이 저를 사로잡아요.
그녀는 청바지 작가로 불립니다. 최소영의 작업에는 무엇보다도
작업의 주된 재료로 누군가 입다 버린듯한 청바지들이 사용되기 때문이지요.
데님의 거친 느낌의 질감이 그녀의 손을 거치면 마치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처럼
따스한 인간의 풍경으로 변해버려요. 그러니 신기할 밖에요.
작가는 자신이 살아가는 마을 ‘부산’을 이런 자신만의 시선으로 잡아냅니다.
사실 데님이란 소재를, 복식사적으로 살펴보면, 결국 노동자의 눅진한 생의 깊이가
베어있는 원단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거든요. 물론 그녀의 데님작업을 가지고
일종의 팝아트라고 하던데, 소재적 접근에서는
저는 오히려 눅진하게 베어든 삶의 정겨움이 느껴집니다.
청바지를 조각조각내어 작가의 시선에 포착된 풍경을
극 사실적으로 재구성하는 일은, 제겐 인간의 마을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 덩어리 하나하나를 조각내어 패치워크를 만들어
내는 것 같은 느낌을 부여합니다. 무언가를 직조한다는 것,
수직과 수평의 꿈이 그 곳에는 눅진하고 오롯하게 베어 있어야 제 맛인 법이지요.
겨울이 깊어갑니다. 올 겨울 아직은 따스한 세상이라고 믿고 싶은
이 소년의 마음속, 아프고, 추운이들 마음속, 따스한 털실뭉치 가득 채워넣어
따스하게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김애라의 해금소리가 좋습니다.
미드나잇.....마당에 비추인 달빛은 빗자루에 쓸리지 않습니다.
이 곱고 소중한 달빛처럼, 올 겨울 만큼은 소외되고 상처받는 사람이 없도록
고운 달빛 가득 구석구석, 청바지를 �어만든 저 인간의 마을을 감싸안고 돌아가길
바래고 또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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