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Education/딸을 위한 미술 이야기

아빠는 세상을 이렇게 본다

패션 큐레이터 2007. 2. 22. 12:53

 

아주 오랜만에 글을 쓴다

사실 딸에게 들려주는 미술사 이야기가 책으로 간행될 계획을 하면서

사실 이 폴더의 내용을 상당히 오랜동안 소홀해온 아빠의 탓도 있고

이젠 이런 내용들이 거의 필요없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

 

다영아, 이제 대학에 들어간 네게 무슨 말을 할까

(딸에게 들려주는 미술사 이야기의 실제 주인공이 이제 대학생이 되었어요....축하축하)

아빠는 내게 Art of Seeing 이란 말을 자주했다.

말 그대로 우리 눈에 비친 대상을 바라보는 방법과 기술에 대한 내용들이 많았지

 

 

자 너도 잘아는 언어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의 책을 통해 잘 알려진

이중그림이다. 너는 이 그림이 무엇을 그린 것으로 보이니? 토끼 혹은 오리?

어떤 사람들은 토끼라 말하고 어떤 사람은 오리라고 말한다.

양쪽의 말이 다 맞다. 어떻게 보느냐에 달렸고, 내가 무엇을 보려고 하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학문을 익히고 사회를 보고 해석하는 것도 똑 같다.

내가 어떻게 어떤 각도로 접근하고 해석하려하는가의 욕망에 따라 그 값은 현저하게 다르다

너는 어떤 쪽을 택할까, 사실 많이 궁금도 하다. 그의 길을 난 모르고

알고 싶지 않다. 이것은 무관심이 아니라, 네가 가야 할 길을 옆에서 지켜보겠다는 말이다

 

어떤 것이 절대적으로 옳고 절대적으로 틀린것이라고

말할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 적어도 나는 네게 그렇게 가르쳤다.

 

 

노먼 록웰, <감사기도> 1951

캔버스에 유채,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 표지

 

대학1학년때였나, 학생대표랍시고 흔히 말하는 공식석상에서

발표 비스무레한 걸 한 적이 있다. 문제는 이 자리가 끝나고, 총학생회장인가 하는 사람이 오더니

학생회에서 일할 생각이 없느냐고 물었다. 난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내가 꿈꾸는 운동은 사회에서 성원권을 획득하고 내 노동으로 경제적인 댓가를 얻고

그것으로 세금을 내는 시점에서 하겠다고 했다.

 

90년대초입이었다. 지금과는 또 다른 상황들이, 외부적인 환경속에 놓여 있었던

내 모습이고, 다영이에겐 꽤 오래된 선배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아빠는 아날로그세대였다. 적어도 대학에서는, 물론 컴퓨터 통신이란 디지털문화의

초엽, 그 영향을 받고 자랐지만, 여전히 도서관에서 듀이십진법에 의해

묵지향 가득한 고서가와 자료실을 찾아야 했던 세대다.

 

지식을 찾기가 용이해지고 접근하기가 쉽다고

지성인이 되기 쉬운 것이라고 아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네게 Art of Seeing이란 말의

힘을 가르치려 한 것은 바로 여기에서 그 힘을 발휘한다. 요즘 네티즌들이 흔히 쓰는 말중에

낚시질이란 표현이 있더군요. 혹은 낚였다라고 하기도 하고......

 

아빠는 솔직이 이 세상의 모든 이념, 거대담론을 포함한 이데올로기는

이런 낚시질의 가장 오래된 형태라 생각한다. 마르크스도 그랬고 페미니즘도 그랬던 것 같다

솔직히, 입으로 내뱉은 말은 참 거창한데, 결국은 낚시질로 낚은 사람들을 이용해

정치권력화를 꿈꾸고, 권력을 갖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이 대부분이 아니었나 하는 후회를 한다.

 

 

리차드 해밀턴

<오늘날의 가족을 그렇게 다르게 매력적으로 만드는 것은 도대체 뭔가?> 1956

콜라주, 26*25cm

 

사회학자 안토니 기든스의 말마따나 참 위험사회를 살아가는 지금

Art of Seeing의 기술은 중요하다. 여기에 하나를 이제 더 배워야 할 때가 왔다.

가치를 평가하는 기술이다. 이 평가의 척도에는 항상 치우침이 있어서는 안되니까

 

예전 페미니즘을 정말 좋아했던 적이 있었다. 오죽하면 여성단체에서

일하는 사람들보다 독서량이 많다고 핀잔을 들었으니 말이다. 요즘 여성단체들이

하는 모습이 바로 '낚시질'이다. 한 개인의 인권을 유린하고, 역풍을 맞으니

아니면 말고, 그래서요 깔깔!, 우리는 여전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라는 말을 내뱉고 있다.

 

초기엔 썩어빠진 남성사회의 역기능을 고발하며 나왔던 그들이

그냥 권력집단화 되고 있다는 것이지

이것은 여성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의 속성이 인간을 그렇게 만든다.

그리고 그 대상은 남성과 여성 양쪽에게 아주 평등하다.

 

아빠는 네가 총여학생회니 이런데서 일을 하는 문제를 거론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러나 알아두거라. 세월이 갈수록 노파심이 커지는 것은 젊은 네가 보지 못했던

(이건 꼭 네가 부족하거나 역량이 없어서가 아니란다) 어떤 것들을 체감하거나 보게 되기 때문이다

 

문화연구란 분과를 공부하기 전에

난 이데올로기가 가지고 있는 위험에 대해서 잘 몰랐다.

그리고 지금, 바로 이자리, 내게 중요한 것은 사실 내가 살아가며 돌보고 지켜야 하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한 체제도 아니고 이념도 아니고, 내 가족과 그냥 행복하게 사는 거였다.

 

아빠는 큰 꿈을 잃고 사는게 아니냐고 묻는다면

난 이렇게 답하겠다. 대학시절 나는 세상을 바꿀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회사를 다닐때, 나는 내가 다니는 이 10대 기업을 바꿀수 있으리라 생각했으며

해외를 다닐때는, 땅을 밟으며 또 세상을 바꾸겠다 마음먹었으나

지금의 나는 옹졸한 나 하나를 바꾸지 못하고 있는 원죄적 인간으로서의 나를 볼 뿐이다

 

 

2004년 홍콩에서

 

이념을 공부할때는 그 생성배경을 명확히 알고

그 이념을 퍼뜨리고 낚시질 하려 하는 사람들의 실제 의도가 무엇인지를 간파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게 익혀가며 너도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는 것인지, 아니면 기만하는 자가 될지를

평가할수 있게 될거다.

 

어떤 이념을 만들고 퍼뜨릴때 아빠는 이것인 너의 상처로 부터 시작한 것인지

희망으로 부터 시작한 것인지를 물어보라고 말하고 싶다.

자신의 컴플렉스, 욕망, 상처들, 사람들에게 입은 마음의 상처들

이걸 감추기 위해 화려한 정치적인 수사학과 언설로 이데올로기를 만들고 포장하는

사람들이 숫하게 많음을 기억하거라.

 

한겨레신문만 읽는다고 비판적 지식인이 아니다. 때로는 보수꼴똥이라 불리는

자들의 글도 함게 읽고 병기하고 사유해야만, 네가 앞에서 본 토끼/오리의 모습은 자신의 시각

속에서 읽혀지게 된다. 페미니즘과 그 반대의견도 함께 공부하고, 이 과정속에서 언어의 결을

거슬러 읽어야 할때도 있고 숲을 보느라 작은 관목을 보지 못하는 자들의 견해도 볼것이고

또 관목만 보느라 숲을 보지 못하는 자들도 만나게 될 것이며

 

개별 나무의 쓰임새로 자라남만 고려한채 숲 전체의 섭생은 보지 못하는

자들의 의견도 발견하게 될 것이다.

 

 

2004년 홍콩에서

 

원래 오늘은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 시작했는데 엉뚱한 방향으로

글이 틀어진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2004년인가 홍콩에 갔다가  전시회에서

중국 현대작가 쟝 쌰오강의 작품들을 보았다. < 내 가족의 탯줄> 연작들이

눈앞에 펼져졌다. 그의 그림은 근대화 과정 속에서 사라져가는 중국인들의 정체성을 다룬 것

으로 유명하지만, 사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그의 가족 시리즈를 통해 우리에게 건내는

뿌리에 대한 사유이다.

 

앞에서 노먼 록웰과 리차드 해밀턴의 그림을 제대로 읽지 않고 와서 조금 글이 틀어지는 것

같기는 한데, 해밀턴의 그림은 당시로서는 충격이었지만 지금 되돌아 보면 매우 예언적인

작품이기도 했어. 우리를 편하게 해주는 수많은 문명의 이기와 편이들 속에서

우리들의 가족구조는 어떻게 될 것인가를 묻고 있기도 하지.

수많은 독신을 선택한 사람들이 등장하게 된 이유를 말하는 한편의 은유이기도 해

 

 

평생 그림만 그리는 엄마와 만나서 많은 고생을 했지만

난 흔히 페미니스트들이 해체하길 꿈꾸는 집단을 이루고 있고

지금까지의 경과에 대해 기뻐하고 있다. 너와 나 그리고 내 옆에 있는 사람을 통해

교감하고 공감하고 있음을 믿기에, 이 힘 앞에서 화려한 수사학과 낚시질은

의미를 점점더 잃어간다. 내가 가족이란 단어에 천착하는 이유이기도 해

노먼 록웰의 작품 <감사기도>를 보며 행복한 이유는 너의 성장 과정 속에서

이 아빠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너에 대한 나의 기도였음을 말하고 싶다.

 

너를 생각하면 항상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 행복했다.

이것만 알아주었으면 하는 작은 소망이 있네.......OT가서 잘 하고 오길

 

김애라의 Midnight 연주를 들어보거라

그리고 생각하거라. 여름날 시골대청마루에 쏟아지는 달빛이

빗자루에 쓸리지않는 다는 것을. 너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먼지와 같은 이론과

이념과 이데올로기에 매이는 일이 없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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